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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씨실과 날실로 직조한 사회문화사

등록 :2020-02-14 06:00수정 :2020-02-14 09:42

복식사 전공자가 밝힌 가늘고 부드럽고 끈질긴 힘의 역사
여성의 노동사 촘촘히 복원 “언어와 직물은 원래 친한 사이”

총보다 강한 실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윌북·1만7800원

‘롱패딩’이 겨울철 국민 유니폼이 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오리나 거위 깃털을 통기성과 방수성이 뛰어난 두 겹의 고운 합성섬유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워 넣은 ‘깃털 단열재’ 방식의 방한 의류는 영하 40도의 혹한을 견디며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탐험대를 위해 처음 고안됐다.

털 없는 원숭이인 우리가 전 지구적인 서식지를 갖게 된 것은 다른 동물과 식물, 광물로부터 얻은 ‘실’ 덕분이다. 실이 없었다면 인류는 사시사철 온화한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정에는 반드시 실이 함께했다. 바이킹은 옛 노르웨이 양털에서 뽑은 실로 직조한 거대한 모직 돛을 달고 폭풍우 치는 바다로 나갔다. 노르웨이 양털은 리놀륨 함량이 많아 물이 잘 스미지 않는 특성이 있었다. 인류가 지구 밖 우주로 갈 때도 실은 함께였다. 닐 암스트롱이 달 탐사를 할 때 입은 우주복 ‘A7-L’은 여성용 속옷 생산업체 플레이텍스가 섬유업체 듀폰이 막 개발한 여러 합성섬유를 이용해 만들었다.

1912년 세계 최초로 남극 원정에 나선 영국 테라노바 원정대는 혹한을 견디기 위해 영국 모직물 제조업체 울시가 특허를 낸 “빨아도 줄지 않는” 모직 내의와 양말을 착용했다. 사진은 테라노바 원정대의 마지막 모습. 출처 <역사의 색>(2019) 윌북 제공
1912년 세계 최초로 남극 원정에 나선 영국 테라노바 원정대는 혹한을 견디기 위해 영국 모직물 제조업체 울시가 특허를 낸 “빨아도 줄지 않는” 모직 내의와 양말을 착용했다. 사진은 테라노바 원정대의 마지막 모습. 출처 <역사의 색>(2019) 윌북 제공

<총보다 강한 실>은 인류를 더 큰 세상으로 이끈 가늘고 부드러우며 끈질긴 힘에 관한 이야기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복식사를 전공한 저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는 구석기 동굴에서 발견된 실의 흔적부터 구글과 리바이스가 함께 만든 스마트폰 연동 청재킷까지, 사회와 문화를 바꾼 실의 자취를 따라간다.

니콜라 드 라르므생의 판화 &lt;리넨 상인의 옷&gt;(1965). 여성 리넨 상인의 드레스 윗부분에 달린 서랍에 당시 유행하던 여러 레이스의 이름이 붙어 있고, 몸통 수납장에는 더 많은 레이스가 보관돼 있다. 윌북 제공
니콜라 드 라르므생의 판화 <리넨 상인의 옷>(1965). 여성 리넨 상인의 드레스 윗부분에 달린 서랍에 당시 유행하던 여러 레이스의 이름이 붙어 있고, 몸통 수납장에는 더 많은 레이스가 보관돼 있다. 윌북 제공

실은 돈이 되고 네트워크가 됐다. 중국은 누에나방에서 명주실을 뽑아 비단을 만드는 기술을 무려 5천년 동안이나 외부로 유출하지 않고 비단생산을 독점했다. 날아갈 듯 부드러운 보드라운 비단이 유럽까지 매혹시키자, 한나라 수도 장안에서 지중해 해변을 잇는 실크로드가 닦이고 거점 도시마다 ‘비단 비즈니스’가 성행했다. 인도의 무굴제국은 면직물의 일종인 옥양목을 미국, 아프리카, 유럽으로 수출하며 융성했다. 바스쿠 다가마가 개척한 항로를 따라 인도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목화 씨앗은 노예무역과 만나 초대형 목화농장을 형성했다. 1873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미국의 값싼 면사로 거칠고 질긴 ‘데님’이라는 직물을 직조해 특허를 내고 데님 작업복(오버올)을 만들어 팔았다. 그가 설립한 회사 ‘리바이스’는 청바지의 대명사가 됐다.

실을 잣고 옷감을 만드는 것은 몹시 오래고 고된 일이다. 그리고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여성의 일’로 간주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뽕잎을 따서 누에를 먹이고 손으로 직접 실을 뽑고 베틀 앞에 앉아 손톱 빠지도록 옷감을 짰다. 방직공장이 생기자 먼지와 소음에 시달리며 주 60시간씩 일했다. 실의 역사는 여성의 생활사이자 노동사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lt;레이스 뜨는 여인&gt;(1699). 레이스는 17세기 유럽 왕실과 귀족사회에서 사치품으로 크게 유행했고, 수많은 여성이 레이스 뜨기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다. 윌북 제공.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레이스 뜨는 여인>(1699). 레이스는 17세기 유럽 왕실과 귀족사회에서 사치품으로 크게 유행했고, 수많은 여성이 레이스 뜨기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다. 윌북 제공.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이메이르가 1669년에 그린 <레이스를 뜨는 여인>은 “소박한 재료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인간 능력에 대한 묵상”으로 해석되는 걸작이다. 레이스는 17세기 유럽 왕실과 귀족사회를 뒤흔든 사치품이었고, 수많은 여성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짠 레이스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 반복되는 고되고 오랜 노동의 친구는 ‘이야기’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가 실을 잣고 베틀 질을 하고 레이스를 뜨는 동안 생겨났다. ‘텍스트(text)’와 ‘텍스타일(textile)’의 어원이 같은 이유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