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 전공자가 밝힌 가늘고 부드럽고 끈질긴 힘의 역사
여성의 노동사 촘촘히 복원 “언어와 직물은 원래 친한 사이”
여성의 노동사 촘촘히 복원 “언어와 직물은 원래 친한 사이”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윌북·1만7800원 ‘롱패딩’이 겨울철 국민 유니폼이 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오리나 거위 깃털을 통기성과 방수성이 뛰어난 두 겹의 고운 합성섬유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워 넣은 ‘깃털 단열재’ 방식의 방한 의류는 영하 40도의 혹한을 견디며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탐험대를 위해 처음 고안됐다. 털 없는 원숭이인 우리가 전 지구적인 서식지를 갖게 된 것은 다른 동물과 식물, 광물로부터 얻은 ‘실’ 덕분이다. 실이 없었다면 인류는 사시사철 온화한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정에는 반드시 실이 함께했다. 바이킹은 옛 노르웨이 양털에서 뽑은 실로 직조한 거대한 모직 돛을 달고 폭풍우 치는 바다로 나갔다. 노르웨이 양털은 리놀륨 함량이 많아 물이 잘 스미지 않는 특성이 있었다. 인류가 지구 밖 우주로 갈 때도 실은 함께였다. 닐 암스트롱이 달 탐사를 할 때 입은 우주복 ‘A7-L’은 여성용 속옷 생산업체 플레이텍스가 섬유업체 듀폰이 막 개발한 여러 합성섬유를 이용해 만들었다.
1912년 세계 최초로 남극 원정에 나선 영국 테라노바 원정대는 혹한을 견디기 위해 영국 모직물 제조업체 울시가 특허를 낸 “빨아도 줄지 않는” 모직 내의와 양말을 착용했다. 사진은 테라노바 원정대의 마지막 모습. 출처 <역사의 색>(2019) 윌북 제공
니콜라 드 라르므생의 판화 <리넨 상인의 옷>(1965). 여성 리넨 상인의 드레스 윗부분에 달린 서랍에 당시 유행하던 여러 레이스의 이름이 붙어 있고, 몸통 수납장에는 더 많은 레이스가 보관돼 있다. 윌북 제공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레이스 뜨는 여인>(1699). 레이스는 17세기 유럽 왕실과 귀족사회에서 사치품으로 크게 유행했고, 수많은 여성이 레이스 뜨기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다. 윌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