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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단독] 취준생의 쾌거…영국 사전서 ‘야스쿠니 안치’ 예문 날렸다

등록 :2020-06-30 11:31수정 :2020-06-30 21:01

케임브리지 사전 ‘enshrine’(신성한 장소에 간직하다)
예문으로 ‘야스쿠니 신사 안치’ 들어
한국 취준생 “예문 수정해달라” 문제 제기
주영대사관 “전범들 묻힌 곳 사용 부적절”
출판사 “지적 고맙다”며 흔쾌히 수정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고 표기된 공물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고 표기된 공물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한 취업준비생의 문제 제기로 전세계인이 이용하는 영국 케임브리지 사전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와 관련한 부적절한 예문이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케임브리지 사전은 우리말로 ‘(신성한 곳에) 봉안하다’, ‘소중히 간직하다’라는 뜻을 담은 단어 ‘enshrine’을 설명하면서 예문에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됐다’는 뜻의 문장을 사용해왔다.

주영 한국대사관은 <한겨레>에 “지난 5월 케임브리지 사전 출판사 쪽에 ‘enshrine’ 단어의 예문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해 지난 20일 다른 문장으로 수정됐다”고 30일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전자우편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난 4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제기된 문제를 출판사 쪽에 수정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전했다. 당초 케임브리지 사전은 영단어 ‘enshrine’의 예문으로 ‘거의 이백오십만 명의 망자가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돼 있다(Almost two and a half million dead are enshrined at Yasukuni)’는 문장을 사용해 왔으나 지금은 고쳐진 상태다.

케임브리지 사전 누리집 갈무리. 해당 예문은 30일 현재 다른 예문으로 수정된 상태다.
케임브리지 사전 누리집 갈무리. 해당 예문은 30일 현재 다른 예문으로 수정된 상태다.

케임브리지 사전 속 예문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한국의 한 취업준비생으로부터 시작됐다. 자신을 한국의 취업준비생이라고 소개한 ㄱ씨는 지난 4월 국민신문고 누리집에 쓴 글에서 이 예문에 대해 “‘enshrine’은 한국어로는 ‘소중히 간직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매우 신성한 장소에 간직한다는 의미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범 가해자들 즉, 조선,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며 대한민국 역사 이전 우리의 뿌리를 파탄내고 난도질을 한 사람들이 묻혀져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을 신성한 장소로 칭하며 단어를 설명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글을 받아든 주영 한국대사관 쪽의 대응은 민첩했다. 대사관은 곧바로 사전을 출판한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 쪽에 수정을 요청했다. 대사관은 출판사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19세기에 건립된 이후 수많은 일본인들의 영혼을 기리는 곳으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2차 세계대전 A(에이)급 전범들이 함께 묻혀있고,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를 미화하기 위한 상징으로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장소다. 다소 신성한 느낌을 주는 단어인 ‘enshrine'의 예문으로 야스쿠니 신사 관련 내용이 쓰이는 것은 부적절하고 둔감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주영 한국대사관의 요청으로 ‘enshrine’의 예문이 수정된 캠브리지 사전 누리집 갈무리.
주영 한국대사관의 요청으로 ‘enshrine’의 예문이 수정된 캠브리지 사전 누리집 갈무리.

이후 출판사 쪽은 “대사관의 지적과 주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간과했던 점을 지적해줘서 고맙다”면서 해당 예문을 지난 20일 수정했다. 현재 케임브리지 사전에는 이 예문이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무덤에 제단을 지어 그녀가 7월 그날에 입었던 옷과 신발을 안치할 계획이다(Her father plans to build an altar at her grave, enshrining the dress and shoes she wore that July day)’라는 문장으로 바뀌어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책이나 정부 공식문서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설명하는 문장에 이 단어(enshrine)가 여전히 자주 쓰이고 있다. 이번 케임브리지 사전의 수정 조처로 다른 문서들도 차차 수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주영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전세계의 수많은 영어 학습자들이 참고하는 영어사전에 역사적 몰이해에서 비롯된 예문이 이것 외에도 많이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이런 사례들을 꾸준히 찾아내서 출판사 등에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알리면서 왜곡되었거나 부적절한 문장들은 교체, 수정 요청하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