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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시시포스와 희망이란 고문

등록 :2020-08-07 13:25수정 :2020-08-07 14:11

김태권의 지옥여행
김태권 그림
김태권 그림

‘지옥 여행’이라는 이름을 걸고 사실은 유쾌한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이 칼럼의 목표였다. 그런데 우울한 글을 쓰고야 말았다.

시시포스가 벌 받은 언덕은 그리스 신화 지옥 투어에서 가장 유명한 코스다.(지옥 여행자들이 다들 여기서 셀카를 찍는다나.) 시지프스라는 이름이 귀에 익다. 카뮈가 쓴 책은 원래 <시지프의 신화>였다. 옛날 그리스 발음에는 시시포스가 가까울 것이다. 아무튼 이 사람이 비탈길에서 바위를 굴려 올리지만, 바위는 번번이 굴러 내려온다. 잘 알려진 이야기다. 우리는 이 벌을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옥에는 이보다 더 못된 벌도 많다. 시시포스는 찔리지도 얻어맞지도 않는다. 어째서 시시포스는 고통스러운가? 어쩌면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풀면 판도라 이야기도 달리 보인다. 남자 사람들한테 화가 난 신들이 판도라에게 온갖 선물을 들려 보냈다. 그 가운데 “절대로 열지 말라”는 상자가 있다. 열지 말라고 하면 반드시 여는 게 신화다. 그리스 원전에는 상자가 아니라 항아리였다고 하는데, 상자이든 항아리이든 간에 거기서 인간 세상의 온갖 불행이 쏟아져 나오고, 밑바닥에 ‘희망’이 남았다고 했다. 훈훈한 결말일까? 희망이 인간을 고문한다면 이야기의 의미는 뒤집힌다. 불행이 이제 끝난 줄 알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고통인 희망이 남아있었다는 뜻이 된다. 역시나 사람 괴롭히는 법을 잘 아는, 그리스의 잔인한 신들답다.

시시포스 이야기를 뒤집어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긴 하다. 이집트 신화에 케프리라는 신이 있다. 얼굴이 쇠똥구리 모양이다. 쇠똥구리는 모양이 똥 덩어리와 비슷한 둥근 태양을 굴리는 신성한 존재였다고 한다. 제 몸보다 큰 덩어리를 힘들게 굴려 올라가는 모습이 영락없이 시시포스다. 의미는 정반대다. 밤이 길어도 해는 다시 떠오르며, 비탈을 미끄러졌다가도 다시 오르는 것이 우리 삶이라는, 이런 훈훈한 글을 나는 쓸 수도 있었다. 아니다. 나는 우울한 글을 쓴다. 비 때문일까, 집값이 오르고 교육 격차가 벌어진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일까. 내 집 마련이건 대학입시건, 한국사회에서는 ‘지옥’이라 불리는 영역이 있다.

이런 주장을 가끔 듣는다. “공급 확대라는 명분으로 강남에 오십층씩 아파트 재건축하는 것도, 기부금 내고 대학 가는 것도, 막지 말고 그냥 풀어주자.” 어차피 특권층이란 존재하게 마련이니 인정을 해버리자는 논리다. 조직폭력배를 뿌리 뽑기는 어려우니 대신에 관리를 잘하자는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나는 이해한다. 자기들끼리 먹고 먹히라고 강남 재건축 시장을 풀어주고, 실력은 안 돼도 학벌을 원한다는 분들께 경매하듯 학위를 팔고, 우리끼리는 ‘인간처럼’ 살자는 이야기다. 신이 아닌 시시한 인간으로서 말이다.

특권층 없는 민주공화국은 언제나 희망의 영역이었다. 현실에서 실현되어본 적 없다. 반면 시장은 현실을 인정하고 희망을 버리라고 한다. 시시포스여, 그만 쉬시라. 귀족이건 지주건 공화국을 파괴하게 놓아두라.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살길을 찾으면 된다. 귀족의 집사를 하건 지주의 마름을 하건 재벌의 나팔수를 하건, 요즘 같은 세상에 먹고 살면 다행 아닌가. 나쁘게 말하면 체념이지만 좋게 말하면 실속을 챙기자는 이야기다.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 기분이 나쁠까. 왜 또 다른 지옥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까.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