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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커피 한잔…코피루왁의 진실

등록 :2020-09-16 16:21수정 :2020-09-16 18:04

[애니멀피플] 페타, 사향고양이 사육장 잠입영상 공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라고 불리는 ‘코피루왁’은 야생 사향고양이를 포획해 생산된다. 페타 아시아 제공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라고 불리는 ‘코피루왁’은 야생 사향고양이를 포획해 생산된다. 페타 아시아 제공
고급 커피를 위해 야생에서 포획돼 좁은 철창에 갇히는 동물이 있다. 바로 사향고양이다.

‘코피루왁’은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을 채취해 만들어진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자바 지방에 사는 사향고양이 ‘루왁’은 커피 열매를 먹고 난 뒤 미처 소화하지 못한 원두를 배출한다. 이 원두를 볶아 만든 커피가 코피루왁이다. 독특한 향과 풍미가 특징이지만, 생산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도 불린다.

국제동물권단체 페타 아시아(PETA Asia)는 지난 8일 인도네시아 발리의 사향고양이 사육실태를 고발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들은 좁고 더러운 우리에 갇혀 정형행동을 보이는 사향고양이 모습을 공개하며 “코로나19 이후 다음 팬데믹은 루왁커피에서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야생에서 포획된 사향고양이는 좁은 철창에 갇혀 2~3년간 커피 열매를 먹으며 생활한다. 철창 안 고양이들은 갑자기 좁아진 공간에서 탈출하려는 듯 쉴 새 없이 우리 안을 맴돌거나, 스트레스로 자신의 꼬리를 물어뜯어 털이 듬성듬성했다. 야행성 동물이지만 햇볕이 내리쬐는 철창에 방치돼 숨을 헐떡이는 모습도 관찰됐다.

페타 아시아는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고의 코피루왁 생산지다. 조사관이 방문한 모든 농장에서 일반적으로 사향고양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됐다. 배설물, 먼지, 부패한 커피 열매가 잔뜩 쌓여있고, 거미줄로 뒤덮인 더러운 우리에 갇혀 있었다. 많은 고양이가 자해로 입한 상처를 갖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향고양이들은 보통 생후 6개월 정도에 야생에서 포획된다. 포획된 개체는 야생동물 시장에서 거래된다. 야생에서의 평균 수명은 10~15년이지만, 우리에 갇히면 불과 2~3년밖에 살지 못한다. 자연상태의 사향고양이는 커피 열매를 따기 위해 자주 나무를 타며 적당한 열매를 먹지만, 우리에 갇힌 뒤에는 훨씬 익은 상태의 열매를 먹게 돼 영양 결핍으로 이어진다.

좁은 철창에 갇힌 사향고양이는 탈출하려는 듯 쉴새없이 우리 안을 맴돌았다. 페타 아시아 제공
좁은 철창에 갇힌 사향고양이는 탈출하려는 듯 쉴새없이 우리 안을 맴돌았다. 페타 아시아 제공
스트레스로 꼬리를 물어뜯어 상처를 입고 있는 개체들도 눈에 띄었다. 페타 아시아 제공
스트레스로 꼬리를 물어뜯어 상처를 입고 있는 개체들도 눈에 띄었다. 페타 아시아 제공
페타 아시아는 “현지 농장주에 따르면 사향고양이가 우리에서 지내는 기간은 최대 3년 정도다. 그 기간이 지나면 영양부족과 스트레스로 건강이 크게 악화되기 때문에 루왁커피를 생산하지 못한다. 야생으로 다시 방사해도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농장주는 커피를 너무 많이 먹은 사향고양이의 상태를 인간의 흡연과 비교했다”고 전했다.

페타는 앞서 2013년에도 루왁커피의 생산과정을 폭로한 바 있다. 이들은 “무려 7년이 지났지만,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향고양이를 사육하며 학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한 잔에 4만9천원 짜리 ‘슬픈’ 커피의 탄생)

또한 이들은 사향고양이가 코로나 19와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의 중간 숙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페타 아시아는 “농장주들은 아프거나 더이상쓸모 없어진 사향고양이를 ‘폐기’한다. 다시 야생동물 시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픈 사향고양이들은 잠재적으로 다른 동물이나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야생동물 시장은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의 진원지로 꼽힌다. 지난 4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의장인 엘리자베스 마루마 음레마는 “야생동물 시장(wet market)에서 살아있는 동물의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중국도 코로나19가 우한 야생동물 시장에서 시작되었다는 보고 이후 중국 전역의 야생동물 소비와 사육을 엄격하게 금지했다.(▷관련기사/‘코로나 시대’에 야생동물 시장이 왜 위험할까요?)

사향고양이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바이러스 매개 동물로 거론되기도 했다. 2002년 중국 광둥성에서 처음 발병했던 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중간숙주로 지목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향고양이는 이미 2002년 발병한 사스의 중간숙주로 지목된 적이 있지만, 여전히 코피루왁은 전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페타 아시아 제공
사향고양이는 이미 2002년 발병한 사스의 중간숙주로 지목된 적이 있지만, 여전히 코피루왁은 전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페타 아시아 제공
페타 아시아는 “루왁커피는 사향고양이에게서 배설되는 원두를 수확해 만들어진다. 이미 사스 발병 때 WHO가 사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를 거치며 변이됐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커피는 전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이같은 매개동물이 코로나19 등 전염병의 또 다른 중간숙주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