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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 “관점을 바꿔보라”

등록 :2020-09-29 20:02수정 :2021-02-09 10:42

울산광역시 울주군 정토 수련원의 밭일을 하고있는 법륜 스님. 사진 정토회 제공
울산광역시 울주군 정토 수련원의 밭일을 하고있는 법륜 스님. 사진 정토회 제공

‘코로나’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코로나는 엎친데 덮친 충격이다. 이 충격은 일시적 재앙으로 그치지않을 수 있다. 코로나가 보다 근본적인 변화의 시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전환의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며,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선각자들의 혜안을 듣기위해 휴심정이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인생멘토에게 코로나 이후의 길을 묻다’ 시리즈를 진행한다. 4주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연재되는 시리즈의 첫 인터뷰는 즉문즉설의 멘토, 법륜 스님이다. -편집자주

법륜 스님은 수행 공동체 정토회의 지도법사이며, 국내외 곳곳에 달려가 무료강연을 해주는 스타강사이자,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물음에 응답해주는 치유상담가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보면 마치 ‘로봇 태권브이’ 같다. 그러나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평화재단에서 만난 그는 감기와 몸살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청중 앞의 환한 모습과 달리 그는 타고난 허약체질이다. ‘코로나’로 강단에 불려 다닐 일이 없으니 고단한 몸을 쉴 법도 한데, 울산 울주 산골 정토 수련원에서 농사를 짓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그는 몸이 찌뿌둥하다고 누워 있으나 들판에 나가 일을 하나 몇시간 뒤엔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아프고 피곤한 몸을 수세적으로 대하기보다는 과감히 일어나 땀 흘림으로써 활력을 되찾는 데서 한 가지 관점에 얽매이지 않는 그다운 자유가 엿보인다. 그러니 ‘코로나’에 대해서도 ‘이를 어쩌나’라는 당황이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산에 오르다가 ‘잘못 올라왔다’며 ‘되돌아가자’ 하게 되면, 되레 꼴찌가 유리해지기도 한다. 기존 질서에선 먼저 간 사람이 늘 더 앞서고, 뒤처진 자는 뒤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기존엔 어느 대학 나왔는지가 중요했지만, 변화된 질서에서 그런 건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기존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유리했지만 온라인 시대엔 게임이나 하던 아이들이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 와도 무조건 낙담만 할 필요는 없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정토 수련원의 밭일을 하던 중 땀을 닦고 있는 법륜 스님. 사진 정토회 제공
울산광역시 울주군 정토 수련원의 밭일을 하던 중 땀을 닦고 있는 법륜 스님. 사진 정토회 제공

그는 “호텔방 하나 없이 세계 최대 숙박업을 했던 에어비앤비가 순식간에 불리해진 것과 반대로 새로운 환경에 창조적으로 대응해 기회를 잡는 이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종교도 스마트폰만으로 대법당과 대성당을 대신할 수 있고, 사람을 대면하지 않으면 귀걸이나 좋은 향수도 필요 없듯 변화의 때엔 공룡기업도 사라질 수 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이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국가적으로도 기회가 왔다”며 “정치권만 서로 협력하고 난관을 함께 극복하면 기회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희망을 되살리는 그의 말을 ‘잘살아 보세’식 성장론으로 보면 오해다. 법륜 스님과 정토 공동체 사람들은 우리 사회 최하층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며 나눔을 실천한다. 인도 불가촉천민촌과 필리핀 민다나오,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봉사하고 지원해온 그들은 한국의 중간이 아닌, 지구인 가운데 평균 수준의 삶을 유지하는 ‘자발적 가난’을 선택해 살아간다. 평화재단 내에도 그의 접견실 한 칸이 없다. 빈민국 구호를 위해 다니면서도 가장 싼 게스트하우스에서만 묵고, 호텔 대신 공항 로비 의자에서 밤을 새울 때조차 “화장실 좋지, 물 잘 나오지, 궁전이 따로 없다”고 자족하는 그다. 그렇게 빈자·약자와 눈높이를 맞춘 삶을 함께해온 그이니만큼, 재앙이 오면 가장 먼저 고통을 당할 약자를 위한 정부 대책과 복지 확대를 강력히 요구한다. 이런 요구는 그만의 독특한 욕구단계론에 따른 것이다. 그는 욕구를 기본적 욕구, 상대적 욕구, 탐욕까지 셋으로 나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평화재단에서 만난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 스님.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 평화재단에서 만난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 스님.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배고프면 먹고, 배움에 목마르면 교육받고, 아프면 치료받는 기본적인 욕구는 정당한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보장받아야 한다. 기본적 욕구조차 충족 못하는 사람에 대해선 한국 정도의 수준이라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상대적인 욕구는 회사에서 벌어들인 총량이 같더라도 내가 남보다 좀 더 갖고 싶은 욕구이니, 이건 갈등을 두려워 말고 지속가능성을 위해 타협하며 분배하면 된다. 그러나 기본적인 욕구조차 못 채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 혼자 다 차지하겠다는 탐욕은 개인도 망치고 사회도 망치니, 개인은 절제해야 하고, 국가는 제도로써 이를 금지해야 한다.”

그의 욕구론을 들으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고,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진다. 그러나 그는 개인의 욕구를 모두 국가가 해결해줄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여름에 덥게 지내다 10도만 내려가도 춥다고 느낀다. 그런데 겨울을 지내다 봄엔 10도만 올라가면 따뜻하다고 한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보다 미국인이 훨씬 잘살면서도 더 힘들어하는 것도 상대적 심리다. 한국보다 못사는 베트남 청년들은 희망에 들떠 있는데, 한국 청년들이 위축돼 있는 것도 심리 때문이다.”

따라서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어 젊은이들이 취업이 힘들어지긴 했지만, 이런 심리상태를 이겨낼 자각과 노력은 필요하다는 것이 스님의 경책이다. 산업화 세대가 가난하다고 불평만 하지 않고 땀 흘려 일했고, 민주화 세대가 부정의를 불평만 하지 않고 피 흘려 투쟁했듯, 현재 젊은이들도 기본적 욕구를 쟁취하고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정치·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학교와 부모의 잘못된 교육방식이 자립심을 갖기 어렵게 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행복학교 참가자들과 온라인으로 즉문즉설하는 법륜 스님. 사진 정토회 제공
행복학교 참가자들과 온라인으로 즉문즉설하는 법륜 스님. 사진 정토회 제공

“‘우리 때는 어렵게 살아도 꿈이 있었고, 뭐든 스스로 해내려 했는데, 왜 요즘 아이들은 꿈도 없느냐’고 하지만,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고, 스스로 해내기보다는 생떼를 부려 어려움을 해결한 아이가 모든 걸 자발적으로 이겨내길 기대할 수는 없다. 영어를 한 번도 안 배운 아이가 스무 살이 돼 갑자기 영어를 잘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방 청소나 설거지조차 스스로 하게 만들지 않고, 성적 이야기만 하고 과보호만 한 과보는 부모와 사회가 받게 된다.”

즉문즉설의 달인인 그가 ‘인생의 모든 문제에 답을 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인생에는 답이 없다”며 “다만 다른 관점도 있음을 알려줄 뿐 즉답을 주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즉, 자신이 하는 건 질문자와의 대화인 즉문즉설이지 즉문즉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충고는 그의 방식이 아니다. 사안을 다르게 볼 수 있다고 알려줄 뿐, 탐욕을 달성하기 위해 갈등이나 고통의 길을 택하든, 아니면 타협이나 내려놓음을 택하든 자유라는 것이다.

“갈등이 곧 괴로움인 것은 아니다. 노력도 안 하고 뭐든 공짜로 받길 원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 괴롭다고 한다. 그러나 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최선도 아니다. 갈등이 생기면 타협도 하고, 조정도 하면서 대안을 찾아가며 해결하면 되지,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괴로움은 감정 낭비고 에너지 낭비라는 법륜 스님은 ‘코로나19 사태’에도 생각을 바꿀 자유가 있음을 마지막까지 깨우쳐준다.

“오물이라고 버리는 똥도 밭에 가면 귀한 거름이 될 수 있으니, 현실을 오물 같다고 비관할 필요가 없다. 물에 빠지면 내친김에 진주조개를 주울 수도 있지 않은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혁명가 법륜스님의 주장은

법륜 스님은 <인생수업>이나 <스님의 주례사>같은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자 즉문즉설가여서 치유자의 인상이 더 짙지만, 실제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면 오히려 혁명가에 가깝다. 30년 넘게 정토세상을 만들기 위해 1만일 결사를 밀고나가는 끈기뿐 아니라 정토회공동체멤버들과 함께하는 철저한 실천면에서 그렇다. 이들은 욕망의 자본주의에 온몸으로 맞서며, 난민 구호나 쓰레기 제로운동에서도 남들이 따라하기 어려울 정도의 실천력을 보이지만, ‘정신 승리법’을 세상 고통의 해법으로 제시하는건 아니다.

보통의 종교인들처럼 모든 것을 심리 문제로 치환하기보다는, 강력한 사회구조개혁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법륜 스님의 지론이 이를 말해준다.

“적어도 한국 정도의 경제수준이라면 젊은이들이 자기 소득의 10%만 들이면 조그만 주거공간이라도 마련할 수 있어야하고, 사교육비 부담 없이도 공교육만으로도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그러지않고 ‘제발 결혼하라’거나, ‘아이를 낳아라’는 말은 부질 없다.”

기본권마저 누리지 못하는 약자들을 돕기 위해 노심초사해온 법륜 스님은 “우리나라의 경우 기본권인 주거, 교육, 의료 가운데 의료는 이 정도면 괜찮으나 주거와 교육 문제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나가야할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자발적 실직을 택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은 아무데나 들어가서 일하라고 말하지만, 아무데나 들어가서는 주거비와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게 문제다.”

따라서 젊은이들에게 가장 부담스런 주거비와 교육비가 줄면, 꼭 월 300만원 이상을 받는 직장에 들어가지않고, 월 200만원만 받고도 생활을 감당할 수 있어서 직장 선택 폭도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생산활동은 기업이 하는 것이지 정부의 몫이 아니다”면서 “정부가 할 일은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기본소득제와 같은 양극화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