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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권·복지

총 대신 ‘세탁’…양심적 병역거부 첫 대체복무 이야기

등록 :2020-11-21 09:39수정 :2020-11-21 16:52

[토요판] 커버스토리
대체복무교육 1기 마지막 날

‘다나까’는 없고 부동자세는 있고
아직은 ‘복무와 수감 사이’ 대체복무
11월 11일 대체복무 교육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저녁, 강의실에서는 종교행사가 열렸다. 36개월 대체복무 과정 중 일과시간 이외의 종교활동은 법령으로 보장된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1월 11일 대체복무 교육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저녁, 강의실에서는 종교행사가 열렸다. 36개월 대체복무 과정 중 일과시간 이외의 종교활동은 법령으로 보장된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1939년 조선총독부 고등법원검사국 비밀문서에는 조선인 여호와의증인 30명의 수감 기록이 남아 있다. 2000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병역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매년 수백명씩 감옥에 가는 나라는 유엔 회원국 중 한국뿐이었다.

2018년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기까지, 징역형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세월이 80년이다. 대체복무제도가 시작됐지만, 대체할 복무의 범위와 기간을 두고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놓고 ‘양심’이 무엇인지, 병역거부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에 대한 날 선 질문들도 여전하다.

지난 11일 <한겨레>가 만난 대체복무교육 1기생들은 대체복무의 첫발을 뗀 자신들을 둘러싼 논란을 잘 알고 있었다. 3주 교육의 마지막 일정을 함께하며 그들이 겪어온 지난 시간, 사상 첫 교육의 내용과 진행, 차근차근 넘어가야 할 고민들을 보고 들었다. 지난 10월26일 대체복무교육이 시작된 이래 내부의 모습이 공개되긴 처음이다.

대체복무교육이 3주차에 이르는 사이, 교육동 앞 플라타너스는 푸르던 잎을 누렇게 물들였다. 잎은 떨어져 흩어졌고, 어쩌다 운 좋은 놈은 바람 덕에 문턱까지 날아들었다. 법무부 산하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교육센터(센터)를 찾은 것은 지난 11일. 10월26일 1기생 63명으로 출발한 대체복무교육의 마지막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대원들’의 시선은 수시로 플라타너스 너머 퇴색한 대전교도소 담벼락에 한참 동안 머물렀다. 이들은 모두 재판에서 병역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은 뒤 대체복무를 시작한 ‘여호와의 증인’이다. 입을 모아 “교육 시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생활실의 빨래 냄새도 제법 익숙해졌고, 행정실, 교수실, 컴퓨터실, 생활동 곳곳이 이젠 자기 집 같다. 100걸음이 채 되지 않는 생활동 건너 교육동에서 먹은 밥과 들은 강의도 몸에 새겨진 듯 생생하다. 다들 적응할 만하니 이제 끝이다.

지난 10월26일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로 대체복무 대원 1기생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26일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로 대체복무 대원 1기생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십니까!”

8시30분. 교육 전 대체복무교육센터 2층 8개 생활실은 이날도 예외 없이 야단법석이었다. 기자와 동행한 오병각 교육센터장과 마주친 대원의 인사가 복도를 울린다. 그 와중에 한 대원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지나친다. 센터장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네?” 쓱 돌아선다.

대체복무 교육규칙안(교육안)대로라면 ‘관등성명’(계급과 성, 이름을 아울러 이르는 말) “교육생 ○○○”으로 답해야 했다. 그런데 센터장이 건네는 눈인사에 그가 씩 웃고 만다(그날 하루 센터 어디서도 관등성명은 듣지 못했다).

한 생활실로 들어섰다. 센터장은 군으로 치면 신병교육대장인 셈이다. 하지만 반갑게 인사하는 두 명을 빼면, 나머지 여섯은 무심하게 하던 일을 한다. “동작 그만” “모두 주목” 그런 것도 없다. 병영에서 흔한 ‘다나까’ 투도 없다. 교육을 받기 위해 나서는 한 대원의 정복 오른쪽 가슴에는 자신의 이름이, 왼쪽 가슴에는 ’대체복무’가 오버로크(휘갑치기)돼 있다.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할 예정입니다. 연수원에서 공무원들이 지내는 모습이랑 다를 바 없이요.”

센터장의 말은 “대체복무의 대체업무 수행은 공무수행으로 본다”는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대체역법) 제16조 3항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센터는 교도소에 속해 있는 합숙 시설이면서도 수용자 시설과는 분리돼 있다. 이는 일과 시간에는 복무규율을 준수하도록 하면서도 그 외에는 자율성을 보장하려는 대체역법의 취지에 따라서다. 여기에 현역병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교정시설에서의 합숙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의식하면서도 수용자 시설과 합숙 시설을 따로 둬 징역(징벌)과의 차이를 분명히 했다. 

대체복무 교육 1기 일정 마치는 날
센터는 교도소 안이자 수용시설 밖
오전 9시~오후 5시 빡빡한 3주 일정
세탁·시설관리 등 대체복무 실무 배워

심사위 신청부터 결정까지 240일
670여명 대기, 모두 ‘여호와의 증인’
법무부 1600여명 순차 배치 예정
접수 뒤 1년 넘게 기다려야 할 수도

전원 합숙 원칙, 종교활동 등 보장
점호 아닌 점검, 부동자세는 군대처럼
종료 뒤 63명 대전·목포교도소 배치
23일부터 43명 대상 2기 교육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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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스물넷, 서른일곱 늦깎이도

“오전 교육시간 10분 전입니다.”

학생장의 외침이 들린다. 기자도 서둘러 강의실에 앉았다. 이미 절반이 넘는 대원이 ‘열공’ 중이다. 모두 마스크를 단단히 썼다. 3주 동안 외부 일정이 없었다. 대원들만 있다면 걱정할 일 없었을 것이다. 외부인들이 문제다. 기자도 마스크를 고쳐 썼다.

앞줄 한 대원의 공책에 3색 볼펜으로 쓴 글들이 빼곡하다. “(다들 열심인 건) 내일 종합평가 때문일 거예요.” 평가점수는 첫 복무지 배치의 근거가 된다. 대체복무는 전국 34곳 구치소·교도소에서 이뤄진다. 6개월 단위로 순환배치된다. 각자 고향 근처에서 복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며칠간 밤 10시(취침 시각)까지 강의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대체복무 수업을 듣는 대원들의 모습.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동안 진행됐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대체복무 수업을 듣는 대원들의 모습.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동안 진행됐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오전 9시. 시작 종이 울렸다. 교육의 첫 과목은 3시간짜리 ‘대체업무 실무(세탁)’ 수업이다. 교육은 3주 동안 크게 기본교육과 직무교육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기본교육은 △(교정)기관 배치 가이드 △교정의 이념과 가치 △장애인 인권감수성 향상 △양성평등 및 성인지감수성 향상 등 17개 과목이다.

63개의 직무교육은 다시 두가지로 갈린다. 총론적인 성격의 △교정행정의 이해 △대체업무 이해 등과 함께 각론이랄 수 있는 △대체업무 실무 △화재·재난 대응 등과 실무 중심의 △구매·영치·세탁 △시설관리 △교정교화(도서·신문 분류 및 배부, 도서관 관리 등) △보건위생(중환자·장애인 이동 및 생활보조 등) △급식 등이다.

이는 2019년 12월 제정된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대체역법)과 대체역법이 위임한 사항을 담은 시행령 등에 따른 것이다. 복무 분야는 복무 기간과 함께 대체복무 도입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다. 이를 두고 법 제정 직전까지 교정·소방뿐만 아니라 돌봄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 가야 한다는 쪽과 군의 비전투분야(부대 내 시설 관리, 지뢰 제거, 공동 유해발굴 등)에 복무를 시켜야 한다는 쪽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모두 만족할 만한 타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국회는 ‘교정시설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체복무기관’이라고 규정해 다양성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일단 ‘개문발차’하는 쪽을 택했다.

“우리가 수용자의 옷, 침구를 왜 빨아야 할까요? 형집행법 제30조 위생·의료 조치 의무 때문이죠. 교도소 안의 24시간은 모두 ‘법대로’입니다잉. 이 대목 중요하죠잉. 오죽하면 빨간색이겠슴까아.”

마지막 줄 대원 하나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받아적는다. 세탁이나 세탁물 분류 등 실무와는 별개로, ‘범치기’(물물교환) ‘비둘기’(교도소 내 서신왕래) 등 교도소 안에서의 은어가 주의사항과 함께 나열된다. 대원들이 교도소에 배치됐을 때 수용자와의 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금지된 일들이다.

‘띵동.’ 1교시가 끝나며 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은 10분. 하지만 일과시간에 개인행동은 금지된다. 강의실 앞 난간에 서 있거나 복도를 서성인다.

“담배는 안 피워요?” 강사가 과자를 입에 넣는 대원에게 묻는다. “네. 술은 하기도 하지만요.” 금연은 휴대전화 사용 금지와 함께 교육안에 담겨 있다. 그게 아니라도 이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흡연을 하지 않는다.

그때 게시판 앞이 떠들썩해진다. 체육행사 일정표가 붙었다. 내일 예정돼 있던 가족행사(면회)를 대신한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이었지만, 취소 통보는 갑작스러웠다. 실무를 맡고 있는 오관석 교육운영관은 “(면회행사 취소 통보가) 3주 동안 가장 미안했던 순간”이라고 했다. 이어 “가족들이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다. 곧바로 수용자와 접촉해야 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군 신병교육대 등 여러 기관의 조치를 참고했다”고 했다.

하지만 대원들의 아쉬움은 여전해 보였다. 10여명을 빼면 모두 20대 후반을 넘는 ‘복무 늦깎이들’이다(가장 어린 나이가 스물넷이다). 그중에서도 기혼자가 다섯명. 오 센터장은 “앞으로 휴가자는 전체 인원의 20% 정도, 외박은 10%, 외출은 50% 정도를 생각 중이다. 휴가는 두달이 지난 다음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1~2교시와 달리 3교시는 실무 중심으로 이뤄졌다. 식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진작부터 음식 냄새가 강의실에 흘러들었다.

낮 12시. 점심 메뉴는 칼국수였다. 대원들의 끼니당 식자재 가격은 2830원이다. 교도관이 2831원이니 1원의 차이를 둔 “공무원에 준한 대우”인 셈이다. 대원들은 칼국수가 아닌 탕수육 앞에서 머뭇거렸다(배식하던 대원은 “두번 등장한 함박스테이크가 가장 인기가 좋았다”고 했다). 눅눅한 탕수육의 인기보다 더 인상적인 건 그들 사이의 존댓말이었다.

대원들은 늘 마스크를 쓴다. 각자 칸막이 아래서 비닐장갑을 낀 채 밥을 먹었다. 식당은 조용했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대원들은 늘 마스크를 쓴다. 각자 칸막이 아래서 비닐장갑을 낀 채 밥을 먹었다. 식당은 조용했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더 있나요?”

“더 드셔도 됩니다.”

처음에는 일부의 습관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존댓말은 생활실, 강의실, 식당 등 때와 장소 불문이었다. 많게는 열두살 띠동갑인데도 모두 “형제님”으로 부르며 예의를 갖췄다. 규정은 있다. 대체역 복무관리규칙안(관리안)을 보면 “대원 상호 간에는 “○○○ 대체복무 요원(또는 대원)으로 호칭한다. 상호 인격을 존중하고 예절을 지켜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서로 간의 존대는 대체복무 규정 준수보다는 교인 사이의 예의 같은 것이었다.

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제각각이다. 그사이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네명이 교육동 앞 농구장에 선다. 등에는 ‘alternative service’(대체 복무)라고 써 있다. 입교한 지 나흘 만에 농구공이 지급된 이후로 네명은 점심식사 뒤 하루도 빠짐없이 농구를 했다. 이들 말고도 밀린 잠을 청하는 사람, 산책을 하는 사람, 밀린 빨래를 하는 사람, 다음 날 있을 평가를 대비하는 사람 등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인다. 자율성이 보장된 것에 비해 매점, 휴게실 등 쉼을 위한 시설은 아직은 부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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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대신 세탁·시설관리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법률 대리 중인 대전교도소 수감자를 접견 온 백종건 변호사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는 2011년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법조인으로는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 1년여 복역(변호사 자격 박탈)했다. (▶관련기사 : ‘감옥’이란 ‘숙제’를 끝낸 남자…“나를 마지막 사례로 만들어달라”).

그가 다시 변호사 자격을 회복한 건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거부의) ‘정당한 이유’로 본 201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고 나서다. 이 판결 뒤로 병역법 위반 혐의로 수감돼 있던 70명은 순차적으로 가석방(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교도소에 수감된 이는 공식적으로는 없다)됐다.

당시 판결의 주인공인 오승헌씨의 변호인도 원래는 백 변호사였다. 오씨는 1기생이 돼 교육센터에 있다. 오씨만 아니라 사법연수생 시절부터 백 변호사가 병역 거부를 이유로 수감되기 전까지 무료변론을 맡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200명이 넘는다.

그렇게 집총 대신 징역을 택한 이들이 한해 평균 600명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9년 33명의 수감 기록이 있은 뒤로 지금까지 최소 1만8700명에 이른다. 이들이 감옥에서 보낸 시간은 모두 합하면 최소 3만5800년이다. 백 변호사가 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한 대체복무교육센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우연이었을까. 마침 산책하던 오 대원과 먼발치에서 눈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교육생의 외부인 면회는 금지돼 있다).

오후 1시10분. 다시 수업이 시작됐다. 대체업무 중 시설관리를 위한 것이다.

“작업 중 다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작업장에 떨어진 못 하나 바늘 하나까지 다 수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강사는 교도소 기동순찰팀(CPRT) 출신답게 “수용자가 반출한 물품이 흉기가 되기도 한다”며 실제 사례를 들어 가며 설명했다. 해가 서편으로 기울고, 마지막 수업인 ‘양성평등 및 성인지감수성 향상’의 끝 종이 울렸다. 63명 중 흐트러지거나 이탈하는 이는 없었다. 이들은 3주차에 이르는 동안 외출·외박 없이 오전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매일 7시간의 교육을 쉼없이 달려왔다. 이들은 이튿날인 12일 종합평가와 체육행사에 이어 13일 복무지에 배치됐다. 대전교도소에는 9명만 남았고, 나머지 대원들은 목포교도소로 이동했다. 대체복무교육센터는 23일부터 2기 43명을 맞이한다(이들은 대전 및 의정부 교도소에 배치된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대체복무 대원 1기 63명이 모였다. 이들은 지난 13일 대전교도소와 목포교도소로 배치됐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대체복무 대원 1기 63명이 모였다. 이들은 지난 13일 대전교도소와 목포교도소로 배치됐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현재 1기를 제외하고 대체복무가 결정돼 교육대기 중인 인원은 670여명이다(11월18일 기준). 이들도 모두 여호와의 증인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대체역심사위원회에서 대체복무 심사 접수부터 대체역 여부 결정까지는 최대 240일이 걸린다. 하지만 심사를 통과한다고 해도 1기(63명)를 기준으로 60명이 3주 교육을 받는다고 할 때, 670명 중 후순위는 1년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 현재 대체역심사위에 대체복무를 신청하고 처분을 기다리는 1000명에 가까운 접수자까지 고려하면, 대기는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복무 다양화나 복무기간 조정을 통해서라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체복무 찬반 여론에 더해 해당 부처의 준비 정도 및 예산까지 살펴야 한다. 쉬운 과정은 아니다. 법무부는 우선 3년 동안 1600여명을 차질없이 순차적으로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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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호와 같고도 다른 ‘점검’

저녁식사가 시작된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몇몇 대원이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나선다. 향한 곳은 컴퓨터실이다. 정작 대원들이 붐비는 건 한쪽 벽면으로 늘어선 화상전화기 부스다.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되는 교육생들에게 다섯개의 부스는 외부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거의 유일한 사적 공간이다. 물론 줄을 서다 보니 길어도 10분을 넘지 않는 게 예의다. 장경진 대원처럼 가족이 있는 경우 10분은 충분하지 않다. 특히 말을 배우기 시작한 3살짜리 막내에게 한마디라도 들으려면 애가 탄다. 게다가 영상통화는 1초에 1.4원, 싸지 않다.

저녁 7시. 63명 전원이 다시 강의실에 모였다. 이들은 수요일 저녁 평일 종교행사를 공식적으로 보장받고 있었다. 물론 이는 특정 종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교육안에는 “교육 운영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교육생의 종교활동을 보장”하도록 돼 있다. 오 운영관은 “100분의 종교행사는 일주일에 한번, 15분 정도는 약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매일 아침 할 수 있도록 해왔다”고 설명했다.

밤 9시. 청소가 시작됐다. 군대로 치면 ‘점호’ 준비다. 여기서는 ‘점검’ 준비라 부른다. 말이 다르다고 해서 내용까지 다른 건 아니다. 침대 상단에 베개를 놓고 그 위에 교정 마크가 보이도록 이불을 접어서 올려놓는다. 침대 아래 수납장에는 내의, 속옷, 양말 등이 자리해야 한다. 관물대 여닫이문을 열면 옷걸이 봉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셔츠, 활동복, 작업복, 근무복, 점퍼, 사복 등이 차례로 걸린다. 그 아래 관물대에는 휴지, 서적(성경책), 업무수첩 등이, 그 아래 첫째 서랍에는 필기도구, 가죽장갑, 목도리 등이 가지런하다. 세면도구와 기타 물품은 둘째 서랍에 들어간다. 물론 군 신병교육대나 내무반에서 흔한 의류나 침구의 ‘각 잡기’는 하지 않는다. 청소에 이어 정리를 마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30분이다.

“점검 5분 전입니다.”

밤 9시30분 ‘점검’이 시작된다. 군대로 치면 ‘점호’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밤 9시30분 ‘점검’이 시작된다. 군대로 치면 ‘점호’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밤 9시25분. 각 생활실마다 대원들이 각자의 침대 끝에 부동자세로 앉는다. 두 팔을 펴 손을 무릎에 올린다. 20년도 더 된 기자의 군대 시절이 떠오른 유일한 순간이었다. 바깥의 시선에서 보면 걱정스러운 부분이었다. 껍질만 대체복무이고 교육 내용이나 규율이 군대와 다를 바 없으면 원래 취지는 무색해질 것이다. 거부감이 없었을까.

대원 각자 생각의 차이는 있었다. 김수훈 대원은 “(점검을) 누구도 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센터 분들은 먼저 나서서 자연스럽게 하자고 하는데, 서 있어야 하는 건지, 숫자는 하나 둘인지 일 이 삼 사인지, 헷갈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며 “깔끔하게 정리하면 된다고 하는데도, 자세한 매뉴얼은 없다 보니까 초반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장경진 대원은 “아침, 저녁 점검은 규정(복무규칙 관리안)에 따른 것이고, 건강상태나 위생상태를 보는 게 주 목적이니 불편하거나 거부감을 느낄 만한 것은 아니었다”며 “점검이 낯설고 어렵긴 했지만 그 시간이 공식적으로 불편한 점이나 힘든 점을 얘기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고맙기도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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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침, 모든 등이 꺼졌다

밤 9시30분. 점검이 시작됐다. 학생장이 2층 복도 한 가운데 선다. 복무관리관이 생활실이 있는 2층에 올라섰다. 경례를 주고받았다.

“총 63명 점검 준비됐습니다.”

복무관리관이 생활실을 돌기 시작하자 “하나, 둘…, 여덟”까지 구령 소리가 복도까지 울린다. 관리관은 대원들의 건강상태 및 기타 건의사항을 묻는다. “제 3생활관 점호 준비됐습니다!” “제6생활관 현재인원 점검준비 끝!” 생활실장의 보고는 제각각이다(어미가 달라지는 게 중요치 않아 보이지만 군대의 보고는 부대별로 통일해 쓴다). 시간은 생활실별로 짧게는 30초를 넘기지 않는다. 관리관이 마지막 생활실을 나섰다.

“저녁 점호 완료됐습니다.”

학생장이 외치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교육 마지막 날이어서는 아니다. “(점검이 끝나면) 늘 비슷하다”고 했다. 점검 뒤 10시면 모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떠들썩한 한 생활실에 들어서니 소포로 전달된 과자 등 먹거리가 놓여 있다. 이날은 11월11일 빼빼로 데이였다. 환호성이 들려온 생활실에서는 이튿날 체육행사의 한 종목인 림보 연습이 한창이다.

밤 10시. 생활실이 있는 2층은 당직실로 향하는 불침번의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일부 대원으로부터 “내일 평가 대비를 하고 싶다. 강의실을 열어주면 안 되겠느냐”는 건의가 있었다. 센터는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불은 꺼졌다.

대전/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