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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숨을 곳은 없다, 리셋하자, 팬데믹에 강한 도시로

등록 :2021-01-07 04:59수정 :2021-01-07 07:36

[새해 연속기고] 2021, 11개의 질문
코로나 이후의 도시
최이규 계명대학교 교수·미국 도시계획기술사

권범철 kartoon@hani.co.kr
권범철 kartoon@hani.co.kr

코로나19의 짙은 그림자가 걷히지 않은 채 새해를 맞는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과 인식과 삶과 관계를 모두 바꿨다. 그동안 인류가 구축해온 유·무형의 자산과 가치와 체계와 질서를 코로나19는 하루아침에 허물어뜨렸다.

코로나19가 사라지더라도,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2021년 초두, <한겨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코로나19 이후의 전망을 담은 석학과 전문가들의 특별기고 ‘2021, 11개의 질문’을 마련했다.

최이규 계명대학교 교수·미국 도시계획기술사
최이규 계명대학교 교수·미국 도시계획기술사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탈도시화에 주목하게 됐다. 인류는 과거처럼 엑소더스를 시작했다. 이미 뉴욕 맨해튼 집값이 반토막 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가장 손쉬운 대책은 버리는 것이다. 뉴욕 주변의 광활한 교외지역 또한 100여년 전에 발생한 이질과 콜레라, 결핵의 대책으로 형성된 것이다. 도시 밖으로 도망가지 못할 경우엔 집 안에 숨었다. 유럽의 현대 건축은 1918년 대유행한 스페인 독감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건축 양식을 바꾸었다. 집은 사람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현관에서 담소를 나누던 포치(porch)를 없애고, 거리와 분리된 발코니를 만들고, 거리에 인접한 정원 대신 지붕을 없앤 자리에 가족만 접근 가능한 옥상정원을 만들었다. 도시의 핏줄인 교통도 마찬가지다. 자가용이 급속히 늘면서 도로는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재택근무, 원격교육, 배달음식, 이커머스 등 모든 것이 랜선을 통해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의 도시는 100년 전의 도피, 즉 밖으로 혹은 안으로 탈출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될 것인가?

도망갈 곳 없는 팬데믹 시대의 도시

지금 팬데믹의 특징은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아무리 처참한 전쟁이나 역병에도 피난처는 있었다. 상당수 전문가는 사람들이 도시를 버리고 외곽으로 이동하거나 이웃과의 접촉을 줄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글로벌화한 지구에서 숨을 곳은 없다. 우리는 100년 전, 공동체에 문을 잠근 건축과 도시가 한 세기 내내 사람들의 마음을 갉아먹어 왔음을 알고 있다. 분산에 중심을 두는 도시 전략은 틀렸다. 어떻게 하면 전염병에 강한 도시로 체질을 바꿀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의 생활 양태도 변하고 있다. 모빌리티의 증가, 즉 대중의 이동능력이 확대되었다. 사람들은 비자발적으로 실내에 갇히는 것에 거부감이 크다. 재택근무의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가 많은 것만을 봐도 알 수 있다. 여가와 여행의 패턴도 변하는 중이다. 최근 자전거와 캠핑용품 품절 사태가 이를 반영한다. 공원과 같은 도시 내 오픈스페이스도 면형보다는 선형 공간에 대한 필요가 급증할 것이다. 즉 한곳에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는 공간보다는, 이동 자체가 목적인 공간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캠핑카 타운이나 트레일러 빌리지의 출현 가능성도 크다. 거주의 간편성과 유연성이 높은 레지던스의 증가로 호텔과 주거의 구분이 모호해질 것이다.

온라인 환경도 변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쇼핑이 온라인 비대면으로 대체되면서 원거리 이동은 줄겠지만, 주거지 근처 근거리 이동은 늘어날 전망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동네가 중심인 온라인 플랫폼 당근마켓의 성공을 보라. 대형 쇼핑몰보다는 소형 코너스토어, 즉 점방의 부활이 점쳐진다. 편의점, 빨래방 등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휴먼스케일’ 고밀 도시가 답이다

코로나19로 발생한 고립과 단절은 소통의 부재라는 문제로 연결된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사람 간의 소통이 비대면화함에 따라 목적 지향적 의사 교환 외에 즉흥적이고 비공식적인 대화의 양이 줄어드는 현상이다. 창조적 업무를 주로 하는 조직에서 대화의 90%는 잡담이다. 쓸데없는 말, 농담과 반어적 표현이 난무할 때 아이디어가 샘솟는 법이다. 도시가 제공하는 핵심 가치인 우연적 만남과 비의도적 조우가 사라진 세상은 굳은살처럼 딱딱해질 것이며, 창조적 유연함을 잃게 될 것이다. 교류를 통한 사회적 건강함과 표현을 통한 문화적 건강함이 위축될 때, 우리의 정신은 무너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도시의 밀도가 주는 가치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고밀도 도시를 견지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환경이다. 도시를 포기하고 흩어져 살자는 건, 지구를 버리자는 말과 같다. 지금 80억명이 도시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기후변화 시대에는 에너지를 덜 쓰고,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다. 고밀 도시에 살면서 난방비를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야말로 환경주의자이다.

팬데믹에 강한 고밀 도시는 어떻게 만들까? 아이러니하게도 답은 전통적 도시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구글이 시도하는 미래형 초연결도시, ‘사이드워크 토론토’의 핵심은 보행자가 중심이 되는 휴먼스케일(인간의 몸 크기를 기준으로 정한 공간이나 척도) 도시다. 자동차 도로와 주차로 낭비되던 공간을 사람의 활동으로 채워 쾌적한 고밀 도시를 세우겠다는 발상이다. 보행과 자전거, 퍼스널 모빌리티가 주축인 노변 상권의 활성화로 거리를 공공정원화해 생동하는 거주지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보고타 ‘시클로비아’의 혁신

먼 얘기가 아니다. 이미 코로나로 온라인 업무 환경이 가속하면서 교통량은 감소하고, 푸른 하늘은 돌아왔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으로 제어되는 도로의 최적화가 눈앞에 왔다. 도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도로에 상당한 자유가 생긴 것이다. 밀도가 낮은 지역을 도시화하느라 막대한 비용을 치르는 대신, 낭비되는 도로를 활용해 밀도를 높이면서 팬데믹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하드 인프라에서 소프트 인프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 도로가 흙과 숲의 오픈스페이스로 바뀌는 과정에서 조경이 예쁘기만 한 풍경을 만드는 게 아니라, 친환경적인 조경을 중심에 둔 도시 설계의 핵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설계자인 옴스테드가 주창했던 파크웨이, 즉 길이 공원이 되는 개념을 도시의 뼈대로 부활시켜야 한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시클로비아’처럼 자전거길이 도시 혁신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다. 보고타 시장은 저소득층 지역을 중심으로 자전거 전용 도로를 조성했는데, 그 결과 자전거길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지역 경제가 살아났고,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방과 후 학교가 문을 열었다. 도보나 자전거 이용자들을 소비 타깃으로 한 경제로 전환됨으로써 길이 사회화된 것이다.

‘코로나 블루’에서 ‘코로나 그린’으로

팬데믹에 대응하는 도시의 다른 모델은 파리시장, 안 이달고가 제안한 빌뒤카르되르(ville du quart d’heure), 즉 ‘15분 도시’에서 찾을 수 있다. 용도별로 구획했던 낡은 도시 개념을 버리고, ‘1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소규모 복합 커뮤니티 공간으로 도시를 재구성하자는 주장이다. 도보나 소형 교통수단을 통해 접근이 용이한 직장과 보건시설, 교육과 쇼핑 등 사회적 소통 공간에 대한 접근성이 열려 있는 커뮤니티 단위를 늘리자는 것이다.

최근 호텔을 임대주택으로 개조한 사례에 대해 비판적 의견이 많은데, 세계적 추세로 보자면 의아한 반응이다. 뉴욕의 플라자호텔은 이미 절반이 주거공간으로 바뀌었고, 토론토대학도 시내 호텔을 인수해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다. 사무실, 쇼핑몰, 학교 등도 주거나 복합 용도로 변형할 수 있게 해 민간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글로벌 팬데믹이 진정되면, 쾌적하며 안전한 도시를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해질 것이다. 자연의 혜택과 도시의 편리함을 동시에 갖춘 선벨트(Sunbelt)의 부상이 예상된다. 우리 도시는 성공적인 방역을 통해 이미 자격 조건을 갖추었다. 당장 도시의 콘크리트, 아스팔트를 수목의 그늘로 뒤덮겠다는 과감한 목표를 세우고 ‘포스트 코로나 도시 건설’을 추진해 보면 어떨까? ‘코로나 블루’를 ‘코로나 그린’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도시를 리셋할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