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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도살장이 모두 문 닫는 그날까지…‘동물권센터’에서 만나요

등록 2022-01-31 09:59수정 2022-02-02 10:14

[애니멀피플] 섬나리의 동물해방선언
10회 풀뿌리 동물권 운동의 새 보금자리
올봄 서울 충무로에 열게 될 ‘서울 동물권센터’는 풀뿌리 활동가들을 결집할 거점 공간이 될 예정이다. 사진은 2020년 여름 노들장애인야학에 모인 디엑스이 코리아 활동가들.
올봄 서울 충무로에 열게 될 ‘서울 동물권센터’는 풀뿌리 활동가들을 결집할 거점 공간이 될 예정이다. 사진은 2020년 여름 노들장애인야학에 모인 디엑스이 코리아 활동가들.

친구 따라 강남? 아니, 도살장에 갔다. 내가 동물권 운동을 시작한 계기다. 동물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비건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자연히 풀뿌리 활동가들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도살장 앞이었다.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관계’가 만들어내는 일은 엄청나다. 디엑스이 코리아(DxE Korea)는 서로가 서로의 친구를 불러 모아 도살장 비질(Vigil), 대형마트 정육코너 방해시위 등을 만들어내며 초창기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참가한 많은 이들이 ‘친구가 가기에’ 용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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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따라 동물권 활동가가 된 사연

변화는 이렇게 단순한 이유로 시작되기도 한다. 지난 회차에서 소개한 동물해방컨퍼런스(Animal Liberation Conference·ALC)에서 들은 미국 활동가들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구 따라 비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던 사람이 어느새 도살장 앞을 가로막는 시민불복종 시위를 하는 활동가가 되는 식이었다.

미국 흑인민권운동에서 흑인 교회 커뮤니티는 운동의 거점이 됐다. 사진은 로자 파크스(왼쪽)와 마틴 루터 킹 목사.
미국 흑인민권운동에서 흑인 교회 커뮤니티는 운동의 거점이 됐다. 사진은 로자 파크스(왼쪽)와 마틴 루터 킹 목사.

다소 어설프게 들리지만 이런 사례는 많은 연구결과가 뒷받침한다. 사회학자들의 최근 연구는 일부 유명인사나 정치인들이 사회를 변화를 일으킨다기보다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가 변화의 핵심요인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사회학자 앨든 모리스(Aldon Morris)의 연구가 좋은 예다. 1960년대 미국 흑인민권운동에서 흑인 교회 커뮤니티의 역할을 분석한 그는 사회운동의 성공 요인으로 거점 공간과 커뮤니티를 꼽았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지난 2001년 ‘장애인 이동권 운동’을 시작으로 20여년 간 장애해방 운동에 눈부신 변화를 가져왔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지난 2001년 ‘장애인 이동권 운동’을 시작으로 20여년 간 장애해방 운동에 눈부신 변화를 가져왔다.

가깝게는 ‘노들장애인야학’의 장애해방 운동을 봐도 좋겠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지난 2001년 ‘장애인 이동권 운동’을 시작으로 20여년 간 장애해방 운동에 눈부신 변화를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노들야학이라는 커뮤니티와 공간은 강력한 역할을 했다. 15년간 노들야학의 교사로 활동해 온 홍은전 활동가의 책 ‘노란 들판의 꿈’에는 서울 대학로를 거점으로 그곳에서 피어난 뜨거운 관계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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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끈끈한 공동체에서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디엑스이(Direct Action Everywhere, DxE)도 이런 성공적인 사회운동의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2013년 풀뿌리 활동가들의 모임으로 출범한 디엑스이는 지난 2016년 세계 최초로 동물권을 주제로 한 커뮤니티 공간 ‘버클리 동물권센터’를 열었다. 활동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풀뿌리 활동가들의 모임인 디엑스이는 지난 2016년 세계 최초로 동물권을 주제로 한 커뮤니티 공간 ‘버클리 동물권센터’를 문 열었다.
풀뿌리 활동가들의 모임인 디엑스이는 지난 2016년 세계 최초로 동물권을 주제로 한 커뮤니티 공간 ‘버클리 동물권센터’를 문 열었다.

버클리 동물권센터는 이후 동물권 풀뿌리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외로운 시위자’(앨든 모리스)라 불리던 활동가들이 제각각 따로 싸우며 추진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던 상황을 해결하며, 전 세계 수십 개 도시에 풀뿌리 운동 모델을 전달해 현재의 동물권 운동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한국의 풀뿌리 활동 또한 버클리 동물권센터에서 개발된 효과적인 전략과 전술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센터의 운영 가치는 환대와 상호부조(Mutual aid), 선물 경제(Gift economy) 등이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열리는 밋업(Meet Up)은 활동가들이 비건 음식을 나누고, 각각의 소식을 공유하는 만남의 장이 된다.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주제의 동물권 교육도 진행된다. 평상시에는 각종 회의가 이뤄지는 회의 공간, 월간 활동을 준비하는 작업실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디엑스이 활동가들 수십명이 농장에서 고통받으며 죽어가던 닭들을 공개구조하여 나오고 있다. 비폭력을 상징하는 브이 사인을 취하며 걸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디엑스이 활동가들 수십명이 농장에서 고통받으며 죽어가던 닭들을 공개구조하여 나오고 있다. 비폭력을 상징하는 브이 사인을 취하며 걸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곳이 서로를 사려깊게 보살피는 공동체 공간이란 것이다. 진심 어린 교류가 만들어내는 활동가들의 우정과 사랑은 긍정적 에너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냈다. 비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왔던 사람이 도살장 앞으로 가로막는 헌신적 활동가가 되는 일은 이러한 단단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법적으로 큰 위험이 따르는 공개구조(Open Rescue), 대규모 시민불복종은 활동가들의 체포 이후를 지원할 강력한 공동체가 있기에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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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안에 도살장의 문을 닫겠다”

한국에서도 거점 공간 마련은 항상 중요한 과제였다. 2019년 10월 처음으로 마련한 ‘안산 동물권센터’는 경제적 이유로 이듬해 3월 문을 닫게 됐다. 이후 감사하게도 노들장애인야학의 공간 제공으로 한동안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해 말 서울에 제2의 동물권센터를 마련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지난 2019년 경기도 종돈장에서 새끼 돼지를 공개구조하는 디엑스이 활동가.
지난 2019년 경기도 종돈장에서 새끼 돼지를 공개구조하는 디엑스이 활동가.

디엑스코리아는 올봄 ‘서울 동물권센터’를 마련할 계획이다. 센터가 예정대로 문을 연다면 이는 동물권 풀뿌리 운동의 큰 시작이 될 것이다. 동물권센터는 그 어떤 기업이나 정부의 도움 없이 많은 풀뿌리 활동가들의 헌신과 이를 지지하는 후원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목표한 건립 후원금 3000만원 중 65%의 금액이 모금됐다.

디엑스이 국제 네트워크에서는 1년 간의 월세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풀뿌리 네트워크인 디엑스이가 한 도시에 활동비를 지급하거나 후원금을 약속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전 세계에서 한국의 변화와 활동을 눈여겨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그동안의 운동을 이끌어온 활동가들이 지난 동물해방컨퍼런스에서 주요 패널과 연사로 초대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사회정의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깃발을 꽂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원하는 세상에 대한 담대한 비전과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담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다. 디엑스이의 목표는 동물을 위한 혁명적인 정치·사회적 변화, 즉 동물권리장전(Animal Bill of Rights)을 포함한 헌법 개정안을 단 한 세대 안에 통과시키고 지구상의 마지막 도살장의 문을 닫는 것이다.

2021년에는 ‘동물권리장전을 향한 로드맵’(DxE’s Roadmap to an Animal Bill of Rights)를 새롭게 발표하며 단기적으로는 2025년까지의 계획부터 장기적으로는 2040년의 활동 목표까지 공식화했다. 동물해방이라는 긴 여정을 향한 깃발을 꽂고 출발 신호탄을 강력하게 쏘아 올린 것이다.

[영상] 모든 도살장이 한 세대 내에 문을 닫을 것입니다, 여기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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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뿌리부터 뒤엎읍시다

디엑스이코리아도 지난 2년 반 동안 이 로드맵에 따라 한국 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액션과 재판 현장을 만들어왔다. 이런 활동은 지난 1년간 칼럼을 통해 소개한 대로, 특정 사건에 대응하기 보다는 ‘사건 자체’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었다.

서울 동물권센터는 그동안 우리가 꽂은 이러한 깃발 아래 활동가들을 결집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동물권 운동이 꿈꾸는 미래가 무엇인지 상상하기 어려워했던 이들, 용기내 뭔가를 더 해보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막막했던 이들 모두가 동물권센터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이제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함께 힘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가치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낼 새로운 관계는 종차별적인 사회를 뿌리부터 발본적(Radical)으로 바꿔갈 것이다. (끝)

글 섬나리 디엑스이·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

※디엑스이 섬나리 활동가의 ‘동물해방선언’은 이번 회차로 연재를 마칩니다. 섬나리 활동가는 “서울 동물권센터에 대한 소개로 1년 간의 연재를 맺을 수 있어서 보람차다. 앞으로 동물권센터에서 단단하게 다져질 활동가 네트워크와 강력한 활동을 기대해달라”고 전했습니다. 서울 동물권센터는 올봄 서울 충무로에 둥지를 틀 예정이라고 합니다. (▶서울 동물권센터 건립 후원금 모금 : 국민은행 350601-04-354395 디엑스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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