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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생추어리의 ‘새벽이’만 특별한 돼지가 아니다

등록 2021-07-27 15:06수정 2021-08-03 15:20

[애니멀피플] 섬나리의 동물해방선언
6회 국내 최초 ‘구조 돼지’ 2살이 되다
국내 최초 구조돼지 새벽이가 지난 7월 두 살을 맞았다. 생후 6개월 무렵 ‘고기’가 될 운명이었던 새벽이는 현재 생추어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새벽이생추어리
국내 최초 구조돼지 새벽이가 지난 7월 두 살을 맞았다. 생후 6개월 무렵 ‘고기’가 될 운명이었던 새벽이는 현재 생추어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새벽이생추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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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새벽이가 지난 7월9일 두 살이 됐다. 새벽이는 한국 최초로 농장에서 공개구조 된 돼지다. 2019년 7월 구조 당시 새벽이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돼지 사육농장에 있던 수많은 돼지들 중 아픈 이를 우선적으로 구조했기 때문이다. 그런 새벽이가 태어나자 마자 부여받은 6개월 사형 선고일을 지나 어느 덧 세 번째 계절의 순환을 맞이했다.(돼지는 보통 생후 6개월 즈음 도축된다)

전례 없는 축산동물 구조였기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구조 뒤 첫 2개월 동안 새벽이는 활동가의 집에서, 몸집이 커진 뒤로는 한 동물단체의 보호소에서 7개월 동안 생활했다. 처음 구조처로 예정됐던 곳에 문제가 생겼고, 한국 그 어디에도 축산동물을 위한 땅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벽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고, 돼지의 습성에 맞지 않는 곳에 계속 있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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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벗어난 아기 돼지들

국내 최초의 생추어리 설립 투쟁이 시작된 사연이다. 그리고 2020년 5월, 마침내 ‘새벽이생추어리’가 문을 열게 됐다. 새벽이의 존재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모금과 많은 풀뿌리 활동가들의 땀, 눈물이 이뤄낸 일이었다. 생추어리도 벌써 1주년을 맞았고, 새벽이도 생존자로서 두 번째 생일을 맞았지만 우리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성장기에 접어든 새벽이는 하루에 0.5㎏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2019년 겨울, 아직 어린 모습의 새벽이. 디엑스이 코리아 제공
성장기에 접어든 새벽이는 하루에 0.5㎏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2019년 겨울, 아직 어린 모습의 새벽이. 디엑스이 코리아 제공

이런 의미 있는 날을 맞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공개구조’(Open Rescue)였다. 2019년 7월 자정이 넘은 새벽, 디엑스이 코리아(DxE Korea·이하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경기도에 위치한 한 종돈장에 잠입했다. 무려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로부터 청정종돈장으로 지정받은 곳이었다. 그곳은 5만 평이 넘는 아름다운 숲과 초지에 둘러싸여 있었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사랑, 정직 등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날 우리가 도착해 마주한 시설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건물은 작은 창문 하나 없었다. 한여름 축사 안은 찔 듯 더웠고, 배설물 악취가 진동했다. 정전으로 환풍기가 멈추면, 갇힌 돼지들이 모두 질식사 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확신케 했다.

2019년 공개구조 당시 경기도 한 종돈장의 모습. 엄마 돼지들은 앉았다 일어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움직임이 불가능한 스톨(Stall·번식틀)에 갇혀 있었다. 디엑스이코리아 제공
2019년 공개구조 당시 경기도 한 종돈장의 모습. 엄마 돼지들은 앉았다 일어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움직임이 불가능한 스톨(Stall·번식틀)에 갇혀 있었다. 디엑스이코리아 제공

‘청정종돈장’으로 지정받은 농장의 건물은 창문 하나 없었다. 한여름 축사 안은 찔 듯 더웠고, 배설물 악취가 진동했다. 디엑스이코리아 제공
‘청정종돈장’으로 지정받은 농장의 건물은 창문 하나 없었다. 한여름 축사 안은 찔 듯 더웠고, 배설물 악취가 진동했다. 디엑스이코리아 제공

갇힌 이들은 서로의 몸을 들이받거나 철창을 씹으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활동가들이 헛구역질을 참으며 도착한 곳은 분만사였다. 엄마 돼지들은 앉았다 일어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움직임이 불가능한 스톨(Stall·번식틀)에 갇혀 있었다. 그 옆엔 아기 돼지의 사체가 각종 항생제 약병들과 녹슨 주사기와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치 SF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이 너무나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스톨 옆에 걸린 ‘모돈 현황판’만이 이곳이 어떤 곳인지 넌지시 알려줬다. 현황판에는 엄마 돼지의 번호, 정액 제공 돼지의 번호, 출산 횟수, 사산된 아기 돼지의 수, 투약 받은 약 등의 끔찍한 정보가 건조하게 적혀 있었다.

종돈장 안에는 아기 돼지의 사체가 각종 항생제 약병들과 녹슨 주사기들과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종돈장 안에는 아기 돼지의 사체가 각종 항생제 약병들과 녹슨 주사기들과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감금시설 안에는 오천 명이 넘는 이들이 갇혀 있었지만, 우리는 아기 돼지 세 명만을 가까스로 구조할 수 있었다. 돼지들에겐 새벽이, 노을이, 별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아픈 돼지였던 새벽이, 노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별이라 이름 붙여진 돼지는 사실 이미 죽은 채로 구조됐다. 활동가들은 별이의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시설 안에서 죽어간 수많은 아기 돼지들을 위한 장례이기도 했다.(▶구조 당시 현장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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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것이 당신이라도…”

동물권 활동가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농장에 감금되어 있었더라도 우리는 당신을 구조하기 위해 선을 넘을 것이다.” 고통과 착취의 상황에 처한 이들은 누구든지 구조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구조는 여느 다른 구조(인간, 개, 고양이)와 달랐기에 정반대의 반응을 불러왔다.

공개구조 당시 노을이의 모습. 노을이는 곰팡이성 피부질환, 다리 염증 등으로 전혀 걷지 못하다가 금방 세상을 떠났다. 디엑스이코리아 제공
공개구조 당시 노을이의 모습. 노을이는 곰팡이성 피부질환, 다리 염증 등으로 전혀 걷지 못하다가 금방 세상을 떠났다. 디엑스이코리아 제공

공개구조는 디엑스이가 연달아 펼친 방해시위들과 맞물려 악의적 공격에 시달렸다. ‘돼지 서리’를 했다는 조롱으로 시작해 ‘이렇게 당당한 절도범들은 처음 본다’며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과 악플이 쏟아졌다. 구조된 돼지들에게는 ‘군침 돈다’, ‘삼겹살로 먹고 싶다’는 등의 모욕이 가해졌다. 이미 죽어 발견된 별이와 관련해서는 ‘데리고 나와서 일부러 죽였다’는 악성 루머까지 따라 붙었다.

바로 공개구조가 법의 경계를 넘어 합법인 축산업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다. 공개구조는 전세계 동물해방 활동가들의 조직인 디엑스이(DxE)의 주요 활동이다. 미국에서는 디엑스이 활동가들이 아픈 돼지 두 명을 구조했다는 이유로 60년의 징역을 선고 받고 재판을 진행 중이다.

‘21세기 노예해방 운동’으로 불리는 공개구조는 기존의 합법적인 활동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공개구조는 합법이 곧 정의가 아님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감금, 학대, 살해를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거대 축산업의 육식주의(Carnism) 매트릭스를 죽음의 현장에서 구조된 개별 동물의 이야기로 극적으로 폭로하는 것이다.

지난해 도살장 앞 비질 도중 돼지가 실린 트럭에 치여 사망한 활동가 리건 러셀. 열정적 활동가였던 그는 ‘만약 당신이 이 트럭에 갇혀 있었더라도 우리는 이곳에 왔을 것이다’라 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서울애니멀세이브 제공
지난해 도살장 앞 비질 도중 돼지가 실린 트럭에 치여 사망한 활동가 리건 러셀. 열정적 활동가였던 그는 ‘만약 당신이 이 트럭에 갇혀 있었더라도 우리는 이곳에 왔을 것이다’라 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서울애니멀세이브 제공

우리는 공개구조를 통해 물음을 던진다. 절도? 동물들이 재산인가? 우리는 그들을 소유할 수 있는가? 나와 당신이 관계를 맺듯 우리는 다만 관계 맺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절도범? 고통에 처한 누군가를 구하는 것이 절도인가? 엄마 돼지들에게 아이를 유괴, 납치를 했으니 우리가 엄청난 학대를 한 것인가?

우리는 그날 ‘친환경 우수 종돈장’ 속의 모든 것들을 분명히 보았다. 과연 무엇이 폭력이고 학대일까. 실제로 우리는 동물병원에서 동물학대자로 의심 받기까지 했다. 새벽이와 노을이는 곰팡이성 피부질환을 앓고 있었고, 꼬리가 잘리고, 송곳니가 뽑혀 있었기 때문이다. 육질을 좋게 하고 잡내를 없앤다는 이유로 고환은 마취 없이 뜯긴 상태였다. 이 모든 것이 축산업이 가리고 있는 진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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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자격없는 동물이 바꾼다

현재 생추어리에서 진흙 목욕을 하고 일광욕을 즐기는 일상을 살아가는 돼지 새벽이는 특별한 돼지가 아니다. 그는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고기로 태어나 생후 6개월에 도살장에 갈 운명의 돼지였다. 똥을 뒤집어 쓴 채 도살장 앞에 실려오는 수많은 이들과 다르지 않다.

살아남은 돼지 새벽이는 생추어리에서 매일 코로 흙을 파고, 진흙 목욕을 하고 일광욕을 즐기는 돼지로서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새벽이생추어리 제공
살아남은 돼지 새벽이는 생추어리에서 매일 코로 흙을 파고, 진흙 목욕을 하고 일광욕을 즐기는 돼지로서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새벽이생추어리 제공

그가 구조되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도 아니다. 도살일이 넘은 그의 존재는 여전히 불법이다. 한국 안에선 전염병의 살처분 영향권에서 벗어난 곳이 거의 없다. 동물들에게는 여전히 온 땅이 도살장인 것이다.

다만 이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살아가는 것 자체로 사람들에게 진짜 폭력이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내고 갇혀있는 동물들의 현실을 알림으로써 동물과 인간을 철저히 분리했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공개구조 뒤 달라진 이들의 삶이 널리 퍼질수록 종차별적인 말은 힘을 잃어갈 것이다. 굳건해 보였던 법 또한 바뀌게 될 것이다. 구조된 동물들은 존재 자체로 모든 동물이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모두가 죽이려고 했던 돼지, 세상은 자격 없는 동물들이 바꾼다.

※ 새벽이생추어리는 현재 설립 1년만에 첫 상근 활동가의 탄생을 앞두고 있다. 이를 위한 모금도 진행 중이다. 공개구조된 동물들의 삶은 동물학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고군분투 중인 활동가들에게 많은 힘을 보태주시길 바란다.(후원하기 linktr.ee/dawnsanctuary)

글·사진 섬나리 디엑스이·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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