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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암흑의 시대, 당신은 리원량인가 아닌가

등록 2020-02-21 17:05수정 2020-02-21 18:17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28. 라오콘 상, 프레데릭 레이튼, 휴머니멀
파이톤과 싸우는 운동선수, 프레데릭 레이튼, 1877)
파이톤과 싸우는 운동선수, 프레데릭 레이튼, 1877)

이즈음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름이 있다. ‘코로나19’ 난리통의 발원지에서 숨진 어느 중국인 의사의 이름이다. 주지하듯, 이 이름의 주인공인 리원량(李文亮)씨는 우한의 영웅이다. 처음으로 2019년 형 질병원의 존재를 알렸지만 도리어 당국의 훈계서를 받아야 했던, 그러나 “거대한 비극이 곧 성문을 잠그”자 성문 안에 갇혀서는 환자들과 함께 살았고 끝내 “착하지, 나와 함께 가자”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

SNS를 타고 리원량의 유서(유서가 아니라 제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는 널리 퍼졌다. SNS라는 바다의 어느 귀퉁이에서 나도 그 글을 읽고 말았다. 읽었다고 하지 않고 읽고 말았다고 한 것은,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 깊이 꽂혔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이 와 닿았던 대목은, 태중에 있는 아이를 만나지 못하고 떠나는 자신을 애통해하는 대목이었다. 그 부분을 옮기면 이러하다.

“나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와 만나기를 꿈꿨습니다. 아들일지 딸일지 태어나면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사람의 물결 속에서 나를 찾을 것입니다. 미안하다, 아이야! 나는 네가 평범한 아버지를 원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평민 영웅이 되었구나.”

누군들 평범한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을까. 그 누가 자신의 목숨과 영웅이라는 세간의 칭송을 교환하고 싶을까. 하지만 고인의 선택은 달랐다.

리원량씨가 선택한 행동과 그의 죽음과 그의 유서는, 인간이 무엇이며 글이 무엇인지 실로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우선, 그의 글과 그의 행동은, 마치 생각과 뇌세포처럼 조금도 동떨어져 있지 않다. 즉, 우리가 그 글에서 감동을 받는 건 그의 글에서 어떤 행동의 고결함을, 그런 행동을 선택한 어떤 개인의 품격을 곧바로 읽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그런 품격을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마음 깊이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서에서 그는 “온 힘을 다했지만 등불을 켜지는 못했습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의 행동과 글이야말로 그가 우리에게 켜놓은 ‘등불’이 아니겠는가. 아니, 내게는 리원량이라는 세 글자로 환기되는 그의 얼굴, 그의 마지막 행동이 인류의 등불처럼만 여겨진다.

_______
등불은 미약하고 세상은 어둡다

그러나 확산일로에 있는 코로나19 사태와 무관하게, 이 등불의 힘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세상은 어둡기만 하다. 우리 중 다수는 비-리원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수는 우한의 어느 시장에서 박쥐나 뱀 따위를 먹었던 일부 중국인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 참극 속에서도 마스크 사업이나 스미싱 따위로 이익을 얻으려 하는, 돈에 걸신들린 이들만도 아니다.

한사코 마스크를 찾아 구멍을 폐쇄하면서도, 자신과 가족이라는 협소한 세계 바깥으로는 좀처럼 시선을 던지지 않는 이들 모두가 비-리원량들이다. 산천어들의 고통이야 모르겠고, 그보다는 우리 화천군민이 먼저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강변하는 이들도 물론 여기에 속한다.

세상에 잠깐 자신을 드러낸 어느 중국 의사의 빛은 이처럼 초라한 다수가 무리지어 이루고 있는 암흑을 우리의 시야에 훤히 보여주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 즉 휴머니멀(Humanimal, 인간 동물)의 실체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도대체 현 인류에게 희망이라는 게 있기는 있는 걸까? 인간은 인간 자신을 이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인간의 실체 또는 휴머니멀만의 고유성에 관한 연구는 오래되어, 이미 많은 결과물이 우리 앞에 쌓여 있다. 예컨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종교’야말로 인간의 특성이라 했고,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S. Gazzaniga)는 인간을 ‘자동반응을 억제하는 동물’이라 정의 내렸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회개하는 마음’이, 제라드 푸치오(Gerard J. Puccio)는 ‘창의적 사고력’이 인간의 고유성이라 했다.

그러나 이런 시각으로는 비-리원량들의 어두움도, 리원량이라는 등불도 잘 잡히지는 않는 듯하다. 인용한 말들도 제법 그럴듯하지만, 그보다는 ‘도전하는 동물’이라는 표현이 동원되어야 한다. 휴머니멀의 빛과 암흑은, 도전하는 동물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드러내준다.

약 500만 년 전 직립 보행이라는 실험을 시작했을 때도, 약 260만 년 전 뗀석기를 처음 사용했을 때도, 약 7만 년 전 동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각지로 이동했을 때도, 약 1천 년 전 총을, 약 145년 전 4행정 내연기관을, 약 30년 전 월드와이드웹을 발명했을 때도 인간은 줄곧 도전하는 동물이었다. 우리가 우리 것이라 당연시하는 삶과 마음은 모두 이 도전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라오콘 상
라오콘 상

기원전 2세기 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 시대의 조각인 라오콘 상은 도전하는 인간의 형상을 표현한 인류 최초의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신화에 따르면, 라오콘은 트로이의 사제로 그리스인들이 트로이에 들여놓으려는 목마(트로이의 목마)를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가 죽은 인물이다. 거대한 뱀이 라오콘을 물고 있는데, 아테나 여신에게 도전한 죄에 대한 대가이다. 이렇듯, 라오콘 상은 도전하는 동물을 그리고 있되 그 성취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19세기 영국 화가이자 조각가 프레데릭 레이튼(Frederic Leighton, 1830~1896)의 조각상 ‘파이톤과 싸우는 운동선수’(An Athlete Wrestling with a Python, 1877)에서 우리는 이와는 전도된 형상을 목격한다. 뱀에 물리는 것이 아니라 뱀을 제압하고 있는 인간의 형상을 보는 것이다. 이 운동선수의 기세는 사뭇 단호해서, 우리는 힘 너머의 것, 이를테면 자기 확신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과감한 비평가라면, 자연이라는 물리력을 이제는 발아래 두게 된 인간을 찬미한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는 폐쇄와 격리, 치료제 개발 같은 것을 통해 이 ‘신형 파이톤’을 종국엔 제압할 수 있게 될까? 라오콘처럼 힘겨운 상태에 있지만, 레이튼이 조각한 운동선수처럼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섣부른 대답 대신, 레이튼의 조각상 속의 파이톤을 다르게 해석해보자는 제안을 내놓고 싶다.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만 한다고 말이다. 지금 우리는 자연력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 자신에 도전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우리 자신은 협애한 소세계에만 코를 박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만은 아니다. 그건 비-유기적 문명의 맛에 취해 살아온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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