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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간척농지 뒤바뀐 갯벌…모내기철에 ‘장다리물떼새 둥지’ 어쩌나

등록 2022-06-14 10:02수정 2023-11-28 16:45

[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앝은 물 번식하는 ‘장다리 새’ 논에 물대자 둥지틀어
‘쌀 한 톨이 아쉬운’ 농부, 논 고르며 밀어버려
멸종위기종 천국 ‘화옹호 간척지’ 공생 묘수 없을까
습지가 사라지면서 분홍색 긴 다리의 장다리물떼새는 알 낳을 곳을 찾기 힘든 ‘다리가 길어 슬픈 짐승’이 됐다.
습지가 사라지면서 분홍색 긴 다리의 장다리물떼새는 알 낳을 곳을 찾기 힘든 ‘다리가 길어 슬픈 짐승’이 됐다.

5월27일 경기도 화성시 화옹호 간척지에 들렀다. 화옹호 간척사업은 4482㏊의 농지와 1730㏊의 농업용수 담수호를 만든다는 목표로 1991년 시작돼 2002년 물막이 공사가 끝났다.

갯벌은 사라졌지만 화옹호는 다양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비롯한 새들의 천국으로 떠올라 서해안 생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작년부터 화옹 간척지 일부에 농경지가 마련되어 농사가 시작됐다.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대 놓은 논에 장다리물떼새가 둥지를 틀었다. 건너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대 놓은 논에 장다리물떼새가 둥지를 틀었다. 건너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장다리물떼새가 올해 미리 물을 잡아 놓은 논 여기저기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짝짓기도 한창이다. 생명력이 넘쳐난다. 모를 내는 한쪽에 둥지가 위태롭게 자리 잡았다.

아직 모내기하지 않아 다행스럽지만 모내기가 시작되면 둥지가 사라질 것이 뻔하다. 장다리물떼새는 다가올 위기를 모르는 듯 정성을 다해 알을 품고 있다.

모내기가 끝나 가고 있다. 내일이면 닥쳐올 위기를 장다리물떼새는 모르는 걸까. 농부가 알을 품고 있는 장다리물떼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모내기가 끝나 가고 있다. 내일이면 닥쳐올 위기를 장다리물떼새는 모르는 걸까. 농부가 알을 품고 있는 장다리물떼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장다리물떼새는 유라시아대륙 중부와 남부, 아프리카,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북미 중부지역, 남아메리카에 분포한다. 과거에 어쩌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나그네새였지만 이제는 서해안 일부 지역에서 적은 수가 번식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4월 중순부터 도래하며 9월 하순까지 지낸다. 몸길이 48∼51㎝로 제법 큰 데다 긴 다리와 검은 날개, 흰 몸이 선명한 대조를 이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뙤약볕 아래 정성을 다하여 알을 품는 장다리물떼새.
뙤약볕 아래 정성을 다하여 알을 품는 장다리물떼새.

장다리물떼새는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새다. 이름을 짓게 한 가늘고 긴 붉은 다리가 무엇보다 눈에 띈다. 검은 부리도 가늘고 길며 붉은 바탕에 검은 눈동자의 큰 눈을 갖고 있다. 장다리물떼새는 물이 고인 논이나 얕은 습지에서 생활하고 번식한다. 둥지는 아주 낮은 둔덕을 이용하여 짓는다.

알이 다칠세라 소중히 다루는 장다리물떼새.
알이 다칠세라 소중히 다루는 장다리물떼새.

장다리물떼새를 한창 관찰하는데 모내기를 마친 농부가 다가와서 묻는다. “논에 물을 미리 잡아 두었더니 새가 둥지를 틀어서 걱정입니다. 내일 논 고르고 모를 심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며 둥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놓으면 되지 않겠냐고 한다. 필자의 대답은 이랬다. “알을 품고 있는 둥지를 옮겨 흐트러지는 순간에 둥지를 포기합니다.”

품던 알을 햇볕과 바람에 노출하는 장다리물떼새.
품던 알을 햇볕과 바람에 노출하는 장다리물떼새.

논을 고를 때 그 장소를 남겨두고 얼마 동안만 기다려 주면 장다리물떼새가 무사히 번식을 마치고 떠날 것이다. 쌀 한 톨이라도 더 수확하려는 농부의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장다리물떼새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한 마디 덧붙였다. “이 논은 환경이 좋아서 새들이 둥지를 튼 겁니다. 작은 생명을 살리는 행동이 복을 짓는 것이고 곧 복을 받는 것입니다.”

장다리물떼새 짝짓기 모습. 긴 다리가 어색해 보인다.
장다리물떼새 짝짓기 모습. 긴 다리가 어색해 보인다.

번식기 동안 장다리물떼새 사이의 경쟁이 심하다.
번식기 동안 장다리물떼새 사이의 경쟁이 심하다.

농부와의 대화 이후 잔뜩 기대를 품고 6월4일에 그 논을 찾았다. 장다리물떼새의 둥지는 사라지고 푸릇한 모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실망감이 앞선다. 다른 논에 알을 품고 있던 장다리물떼새 둥지 10여개도 모내기에 속절없이 사라졌다.

활기가 넘쳤던 장다리물떼새 번식 터가 썰렁하다. 둥지를 잃은 장다리물떼새들은 이미 자리를 포기하고 떠나갔다. 그나마 외진 곳에 둥지를 틀어 위기를 넘긴 장다리물떼새가 남아 있다.

장다리물떼새 둥지는 사라지고 논은 새로 심은 모로 가득 차 있다.
장다리물떼새 둥지는 사라지고 논은 새로 심은 모로 가득 차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나마 남아 있는 장다리물떼새 둥지에 가까이 접근해 알을 품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일부 사진인들의 행동이다. 장다리물떼새는 약 50분간 알을 품고 있다가 10여분 정도 자연 바람과 햇볕을 맞게 해 온도를 조절해 산란을 촉진하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나 둥지에 가까이 다가서 촬영하는 사진인들 때문에 알을 품을 수 없으니 어미 품 없이 온종일 노출된 알에서 새끼들이 태어날 수 있을까 염려된다.

사진인이 둥지 가까이 접근하여 촬영하자 멍하니 둥지를 쳐다보며 주변을 맴도는 장다리물떼새 어미.
사진인이 둥지 가까이 접근하여 촬영하자 멍하니 둥지를 쳐다보며 주변을 맴도는 장다리물떼새 어미.

촬영 시 적당한 거리를 두는 등 생명 존중에 대한 깊은 배려가 필요하다. 새들의 번식은 주변 환경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우수한 갯벌을 훼손하고 들어선 화옹 간척지는 생태계를 위해 무엇을 다시 돌려주었나. 오히려 수원시 군 공항비행장마저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화성 시민 70%가 반대하고 나섰다고 한다.

물이 고여 어렵게 남아 있는 갈대 습지에서 물닭이 번식했다.
물이 고여 어렵게 남아 있는 갈대 습지에서 물닭이 번식했다.

화옹호 간척지에서 관찰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만 꼽아도 겨울 철새로 초원수리, 항라머리검독수리, 물수리, 잿빛개구리매, 검독수리, 금눈쇠올빼미, 큰기러기 등이 찾아온다. 여름철에는 저어새, 호사도요 등 다양한 물새류가 서식한다. 화옹호는 새들에게 중간 기착지와 번식지를 제공하는 서해안의 생태 보고다.

드넓은 화옹호 간척지의 뛰어난 생태적 가치를 이어가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새들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도록 잠시 배려해 줄 수도 없을 만큼 우리의 삶이 각박한가.

짝짓기 후 몸짓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 장다리물떼새 부부.
짝짓기 후 몸짓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 장다리물떼새 부부.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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