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0만 공직자의 윤리를 규율하는 이해충돌방지법이 국회의원 이해관계 문제로 제정되지 못하면 국회가 큰 우를 범하는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8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이해충돌방지법) 통과를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재선 국회의원 출신인 전 위원장은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 법이 미리 제정됐다면 엘에이치 사태는 근본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한 뒤 “미공개 정보로 부동산 투기를 한 직원도 담당 업무와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현재 법안에 규정된 ‘직무상 비밀’을 ‘직무상 취득한 미공개 정보’로 수정하는 방안을 국회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이 있었다면, 엘에이치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을까?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공직자가 수행하는 직무와 관련해 사적 이해관계가 있을 경우 이를 신고하고 직무에서 회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이용해 거래하고 재산상 이익을 얻는 경우 7년 이하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재산상 이익을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한다. 재산상 이익을 얻지 않더라도 직무상 비밀을 이용하기만 해도 형사처벌한다. 법이 제정됐다면 엘에이치 임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를 사전 예방·차단할 수 있었고, 그런 일이 있더라도 엄격히 처벌하는 사후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직무 관련성’이 없는 직원도 사적 이해관계 신고를 해야 하는지, 토지 매입 과정에서 이용한 정보가 ‘직무상 비밀’인지 논란이 될 수 있는데.
“새도시 조성업무는 지구지정·사업시행인가·보상 등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엘에이치 직원들은 모두 그 사실을 신고하고 직무를 회피해야 한다. 새도시 조성과 관련해 직접적인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는 엘에이치 직원은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대법원 판결에서 ‘직무상 비밀’ 범위를 굉장히 좁게 해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법안의 ‘직무상 비밀’ 규정을 ‘직무상 취득한 미공개 정보’로 고치는 방안을 국회와 권익위가 논의 중이다.”
―사적 이해관계자 신고와 직무회피 의무는 이미 2018년부터 엘에이치 임직원 행동강령에도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행동강령은 ‘사규’ 수준에 그친다. 이를 법률로 승격시키면 실질적인 이행력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에 규정된 내용 역시 행동강령 수준으로는 존재했었지만, 법 제정 이후 공직자들이 관행화된 접대를 거절할 명분이 생기는 등 공직사회에 변화가 일어났다. 법률 제정의 효과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정부안은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라는 처벌규정이 마련돼 있는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처벌규정이 강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동안 이해충돌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2013년 청탁금지법 발의 때 이해충돌방지 규정이 있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해충돌방지 규정이 제외됐다. 공직자들의 청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해충돌방지법도 중요했는데 19,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국회의원의 지역구 민원이나 직능에 관련된 의정활동에 대한 침해 우려가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법안은 그런 우려와 관련이 없나?
“예전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규율 범위가 포괄적이었지만, 현재 법안은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의 직무 범위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등 내용을 보완했다. 일상적인 상임위 업무나 지역 민원은 이 법이 제정되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상임위 배정 등에 관한 국회의원의 이해충돌 방지 관련 법안은 국회법에서 별도로 논의 중인데, 국회법 개정이 이해충돌방지법 제정과 함께 이뤄지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공공기관 등을 포함한) 200만 공직자를 규율하는 범위가 큰 법이라 국회의원 이해관계 문제로 제정하지 않으면 국회가 큰 우를 범하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반부패 컨트롤타워’를 자임하는 모양새다.
“공수처는 부정부패를 처벌하는 기관이고 권익위는 반부패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예방하는 기관이다. 권익위가 반부패 컨트롤타워다. 공기업의 청렴윤리경영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조만간 마련해 발표·이행할 예정이다. 공공기관 평가를 할 때 윤리경영 비중을 높이는 것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할 방침이다. 권익위 위원장으로서 이번 엘에이치 사태는 국민들께 대단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공직사회 부패·공익신고를 처리하는 권익위가 권한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부패 컨트롤타워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조사권한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신고가 접수돼도 피신고자를 조사할 권한이 없어 수사의뢰에 그치기 때문에, 피신고인에 대한 무고·명예훼손 우려도 있다. 권익위의 조사권이 없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