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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번기 일당 2배’ 불러도 허사…외국인 일손 구하기 ‘하늘의 별따기’

등록 2021-05-11 04:59수정 2021-05-11 07:43

외국인 계절노동자 제도의 현주소
지난해 6만원→올해 13만원으로 증가
인력 부족에 농사 규모 줄이는 농가도

하루 일손 필요한데 3개월 의무고용
현실에 맞지 않는 계절노동자 제도
‘농작업제도’ 등 도입해 개선해야
농번기를 맞았지만 일손 부족으로 농사를 포기한 비닐하우스 안 모습. 홍천 농민 제공
농번기를 맞았지만 일손 부족으로 농사를 포기한 비닐하우스 안 모습. 홍천 농민 제공

“지난해 6만원이던 외국인 계절노동자 일당이 올해는 13만원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구할 수 없어 농사를 포기해야 할 지경입니다.”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김아무개(60)씨는 잡초만 무성한 밭을 바라보며 한숨부터 쉬었다. 농사를 도울 외국인 일손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 본격적인 농번기를 맞았지만 코로나19 탓에 외국인 계절노동자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농촌에는 이제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면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며 “그나마 있던 내국인 인력은 숲 가꾸기 등 지자체 공공근로 사업으로 모두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1만9834㎡의 밭에서 고추 농사를 시작해야 하지만 올해는 인력 부족 탓에 농사를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김씨는 “지금 농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수확에 차질이 생긴다. 사설 인력중개소를 통해 인력을 구하려 했지만 너무 비싼 인건비 탓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급기야 벌금형을 감수하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까지 수소문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김씨는 “외국인 노동자와 어렵게 연락이 닿아도 요즘은 ‘사장님은 얼마 줘요?’라고 물어보며 월급 협상부터 한다. 지난해보다 높은 일당을 제시해도 ‘다른 사장님은 얼마를 더 준다’며 먼저 전화를 끊어버리기 일쑤다. 이젠 농민들이 ‘을 중의 을’”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멀리 남쪽인 제주도도 사정은 비슷하다. 제주지역은 이달이 마늘 수확 철이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과 안덕면이 주산지이고, 제주시 조천읍과 구좌읍 지역에서도 마늘을 재배한다. 특히 마늘은 기계화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파종부터 수확까지 모든 과정에 일손이 필요하다.

농민들은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아예 농사 면적을 줄였다. 올해 제주지역 마늘 재배면적은 1600㏊(둥근 마늘)로 지난해의 1879㏊에 견줘 15% 정도나 줄었다. 제주도 관계자는 “마늘은 2~3주 동안 집중적으로 인력을 투입해 수확해야 한다. 그렇지만 (코로나19 탓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이 사실상 막히면서 일손 구하기가 작년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올해 제주에서는 41개 농가에서 96명의 외국인 계절노동자를 신청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탓에 외국인 계절노동자가 1명도 들어오지 못했다. 제주농업인력지원센터 관계자는 “고령농이나 영세농 등 취약농가 지원에 필요한 인력이 3천여명이지만, 아직 턱없이 인력이 부족한 형편이다. 군부대와 대학 등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농가의 일손 요구에 맞추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에서 마늘 농사를 하는 박아무개(62)씨는 “재배면적이 큰 농가는 인력을 공급받을 수 있지만 영세농이나 재배면적이 작으면 일손을 빌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늘을 수확할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외면받는 외국인 계절노동자 제도

외국인 계절노동자는 이제 우리 밥상에 오르는 농작물을 길러내는 데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농번기를 맞은 전국 농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부터 외국인 계절노동자 등의 입국이 막히고,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군부대나 대학생 봉사활동마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당도 덩달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정부는 각 시·도에 외국인 계절노동자를 투입해 농번기 부족한 일손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여기지만 현실은 정책과 따로 돈다. 외국인 계절노동자 제도를 활용하는 절차가 까다롭고 농촌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법무부가 지난 2월 공개한 ‘2021년 상반기 지자체별 외국인 계절근로자 배정 현황’ 자료를 보면, 전국 광역자치단체 17개 시·도 가운데 8곳(기초 37개)만 참여해 4631명을 배정받았다. 시·도별로 보면, 강원도(1756명)와 충청북도(1058명)가 전체 인원의 63.8%를 차지한다. 이에 반해 경기도는 2가구에 5명에 불과하고, 경상남도는 단 1명도 없다.

경남도청 농업정책과 박귀득 주무관은 “농가에선 수확 철 등에 단기간 인력이 필요한 사례가 많은데 계절노동자 의무고용 3개월이라는 기간이 애매하다 보니 일선 시·군에서 선호하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시·도보다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있는 경기도에서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편리하게’ 일손을 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 쓴다. 경기도청 농업정책과 최윤정 주무관은 “계절노동자는 신청 조건 자체가 상당히 까다롭고, 신청해도 탈락하는 사례도 있다. 또 비숙련 단기노동자라서 농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불법체류 외국인 상당수가 상대적으로 거주 여건이 좋은 경기도에 몰려 있다. 인력사무소 몇곳에만 전화해도 짧은 기간, 필요할 때만 쓸 수 있는 외국인이 수두룩한데 조건이 까다로운 계절노동자를 쓸 이유가 없다”고 귀띔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강원도 양구군이 외국인 계절노동자와 농민이 소통하고 화합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진행한 ‘외국인 계절노동자 어울마당’ 모습. 양구군 제공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강원도 양구군이 외국인 계절노동자와 농민이 소통하고 화합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진행한 ‘외국인 계절노동자 어울마당’ 모습. 양구군 제공

외국인 노동자 지원제도 개선해야

외국인 계절노동자 제도가 현실과 맞지 않고, 농촌 인력 부족과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계속 제기되면서 외국인 노동자 지원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번기 작물 재배 농가는 ‘짧은 기간, 필요할 때’ 고용이 가능한 노동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계절노동자 제도는 최소 3개월을 의무 고용해야 한다. 농촌 현실과 정책이 따로 돌면서 결과적으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것이다. 실제 지난 3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 고용환경 변화에 따른 외국인 근로자 활용 정책 방안’ 연구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작물재배업에서 외국인 일용노동자를 고용할 때 계절노동자를 이용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농촌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일용노동자 대부분이 미등록인 셈이다. 미등록 외국인 고용은 기준 이하의 주거, 노동 조건 등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다.

연구원은 농사 특성에 맞게 외국인 계절노동자 제도를 세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농업일자리지원센터가 하루 단위로 노동자가 필요한 농가와 계약한 뒤 외국인 노동자를 알선하는 방식의 농작업제도 신설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농민은 법 테두리 안에서 필요한 기간만 인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이는 ‘공공 파견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한국인구학회도 지난해 10월 작성한 ‘농축산업 등 분야 다양한 외국인력 공급방식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계절노동자 고용 형태를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엄진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업 노동의 수요가 넘치는 상태가 이어지고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성행한다. 이는 현 제도가 농업 현장의 탄력적인 외국인 인력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과 제도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혜경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저출산 고령화로 농촌소멸 등 위기에 직면한 만큼 계절노동자 등과 같은 임시방편적인 방안에 만족하지 말고 외국인 노동자의 한국 국적 취득 등을 포함한 보다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현실과 제도 사이의 괴리를 인정하면서도 제도 개선에 난색을 표했다. 법무부 쪽은 “현행 계절노동자제의 문제점은 인지하고 있으며, 지자체에서 고용해서 하루든 일주일이든 단기 파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하지만 파견법과 관련해서 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수혁 허호준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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