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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민감했던 시인, 현실과 역사 앞에 물러섬 없었다

등록 2021-07-19 04:59수정 2021-07-19 09:18

[거대한 100년, 김수영] ⑨ 하이데거

일상적 시간이 아니라
꽃의 시간,
거대한 뿌리와의 만남,
‘존재의 시간’을 직시했던

하이데거에 심취했지만
자기 존재 가능성에,
관조하는 데 그친
그의 한계를 넘어섰던

해방정국·전쟁·4·19혁명
당대인들에게
‘하늘’을 내비쳐보이기를,
현실 정직하게 담아내며
역사적 과제에 맞서는
‘세계적 촌부’의 시인이기를
꿈꾸었던 김수영
마르틴 하이데거. <한겨레> 자료사진
마르틴 하이데거. <한겨레> 자료사진

김수영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입관할 때, 그의 아내 김현경 여사가 그의 관에 ‘틀니’와 함께 넣어준 것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었다. 김 여사는 첫번째로 구입한 일본어판 하이데거 전집이 낡고 닳아 한번 더 또 다른 전집을 구입했을 정도로 하이데거에 심취했던 김수영 시인에 대한 작별인사를 그렇게 표현했다. 그런 하이데거와 어떤 식으로든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는 김수영 시인의 특징 하나가 각기 그의 시들 끝에 적혀 있는 날짜 표기다. 거의 예외 없이 그의 시들 말미엔 창작 완성 시기를 알 수 있는 시간이 강박적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어쩌면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이런 행위를 통해, 우린 그가 달아나기에 바쁜 시간(‘연기’)에 매우 민감한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그는 신간 외국 잡지를 누군가에게 순순히 빌려주느냐 마느냐 갈등하는 사이에도 시간과 싸우고 느낀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연관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로 인해 빛나는 시간을 인식하며 급기야 “시간은 내 목숨야”(‘엔카운터지’)라고 선언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 난삽하게 다가오는 하이데거의 용어인 ‘현존재’를 대신하여 그를 ‘시중인’(時中人/市中人/詩中人)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시간’의 의미에 대한 지대한 관심 속에서 자신의 삶과 시의 존재 의의를 묻고자 했다.

김수영이 이처럼 소중히 여긴 시간은, 그러나 일정한 주기성과 반복성을 가진 계산 가능한 일상적 삶의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 혹은 그 틈새로 눈을 깜박거리는 무수한 간단(間斷)의 시간이자 “내가 나의 밖으로 나가는”(‘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 탈자(脫自)의 시간을 의미한다. 어룽대며 변하여 가는 찬란한 현실을 붙잡으려 하는 가운데서 만난 화룡점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영사판’)이자 “성스러운 향수와 우주의 위대감을 담아 주는 삽시간의 자극”(‘나의 가족’)을 나타낸다. 본래적 자신으로 귀환하는 “동요 없는 마음”의 시간 속에서 다가오는 무량의 환희 또는 그런 나의 마음을 딛고 가는 발자국 소리(‘구라중화’)가 들려오는 순간을 가리킨다.

김수영 시 ‘말’ 초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 시 ‘말’ 초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꽃’이라는 제목으로 &lt;문학예술&gt; 1956년 7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꽃2’. 맹문재 제공
‘꽃’이라는 제목으로 <문학예술> 1956년 7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꽃2’. 맹문재 제공

하지만 김수영은 자기 상실과 자기 회복을 거듭하는 가운데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자기 완성적인 시간성의 지평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의 시간성은 “늙게 하는 동시에 젊게”(‘현대식 교량’)도 하는, 곧 완전한 공허를 끝마친 끝에 과거를 향하여 피어나면서 동시에 미래와 통하는 한 송이 찬란하고 견고한 꽃(‘꽃2’)의 시간과 만난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전회(Kehre)의 시간, 이전에 감히 상상하지 못한 거대한 뿌리로서 전통(‘거대한 뿌리’)과의 만남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그의 시간성은 동시에 그 거대한 뿌리로서 역사가 매일 경험하는 시시한 발견에 자신을 양보하는 “고요한 숨길”(‘이 한국문학사’)을 느끼는 순간의 시간으로도 나타난다. 무언의 말이자 우연의 말이면서도 때로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 말”(‘말’)이 솟아나는, 그 무엇보다도 완전하고 뚜렷하게 경험되는 ‘존재의 시간’과의 만남으로 확장된다.

그런 김수영은 1958년에 쓴 시 ‘모리배’를 통해 처음으로 하이데거와 자신의 관계를 분명히 한다. 또 그의 대표적 시론으로 그가 사망한 해인 1968년에 발표되었던 ‘반시론’과 ‘시여, 침을 뱉어라’를 통해, 주로 하이데거의 예술론과 관련하여 시의 예술성과 시적 모험 문제 등을 다루며 그의 특유의 시론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1950년 6월 <신경향>에 발표한 시 ‘토끼’에서 그가 토끼를 어미의 입에서 탄생과 동시에 추락을 선고받은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김수영이 하이데거를 본격적으로 사숙한 시기는 적어도 1950년 이전으로 소급해 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미 죽기에는 충분히 늙어 있다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한 구절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적인 의미의 죽음의식(Sein zum Tode)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시 ‘병풍’(1956년 2월) 역시 그 한 증거다. 문득 자신이 임종할 나이를 “마흔여덟”(‘미숙한 도적’)이라고 밝히고 있는 시참(詩讖)을 그대로 증명하려 했던 것일까. 그가 죽은 그해 무렵에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라’는 의미의 ‘상주사심’(常住死心)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김수영은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는 병풍을 통해, 일찍부터 죽음을 한낱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가장 숭고한 행위로 승화시키고자 했음을 잘 보여준다.

&lt;신태양&gt; 1959년 5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모리배’. 맹문재 제공
<신태양> 1959년 5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모리배’. 맹문재 제공

김수영과 하이데거의 관계는 또 다른 한편으로 그의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설움’과 ‘절망’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사랑’의 정서에도 곧잘 드러난다.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보면, 한낱 그것들은 주관적이고 고립된 정서들을 표출하기 위한 시어들이 아니다. 일종의 무상감 속에서 자신과 세계를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드러내는 이른바 ‘근본기분’(Grundstimmung)에 속한다. 예컨대 주로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 움직이는 가운데 발생하는 그의 설움(‘여름 뜰’)은,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온갖 허위와 거짓보다 더 높은 비폭(飛瀑)과 유도(幽島)를 점지(‘병풍’)하는 심오한 기분 중의 하나다. 또한 모든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욕된”(‘사령’(死靈)) 삶의 시대 속에서 체험되는 ‘절망’ 역시 그렇다. 모든 희망이 단절된 상태 속에서도 뜻밖에 그 속에 예기치 않은 구원의 순간(‘절망’)을 내장하고 있다. 특히 김수영이 욕망의 입속에서 발견하고자 했던, 언젠가 한번은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근본기분으로서 이러한 ‘설움’과 ‘절망’을 견디고 보존하는 가운데서 밀려오는 황홀한 감정의 하나가 단단한 고요함으로 이루어진 사랑(‘사랑의 변주곡’)이다.

김수영은 청장년기에 해방정국의 혼란과 모든 것을 파괴한 전쟁(‘국립도서관’)을 몸소 겪고 지켜보았던 시인이다. 하지만 그걸 외면하지 않은 채 마땅히 피를 쏟고 죽어야 할 오욕의 역사를 자발적으로 감당하고 민족의 “공동의 운명”(‘광야’)을 스스로 책임지려 했던 시인 중의 한 명이다. 김수영이 하이데거에 그토록 심취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횔덜린을 통해 신적인 존재의 눈짓을 민족에게 전하는 데서 시인의 존재 의의를 찾았던 하이데거처럼, 김수영 역시 죽음의 표지만을 지켜온 당대인이나 절망과 슬픔의 밑바닥만을 보아온 민족의 마비된 눈에 하늘, 곧 하이데거적인 의미의 신성 또는 성스러움을 가리켜 주는 시인(‘VOGUE야’)으로 살고자 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 전시실에 비치된 일본어판 하이데거 전집(아래칸). 김수영이 읽던 책들이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hani.co.kr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 전시실에 비치된 일본어판 하이데거 전집(아래칸). 김수영이 읽던 책들이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hani.co.kr

김수영은 그가 하늘과 땅 사이의 통일을 느꼈다고(산문 ‘저 하늘이 열릴 때’) 감격한 4·19혁명을 분수령으로 그가 겪어온 한국 현대사가 이미 충분히 세계성을 띠고 있으며, 따라서 “멋진 세계의 촌부”(‘시작노트 2’)가 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은 바 있다. 그러면서 당대의 시인들이 기껏해야 편협한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남북통일을 노래할 때(‘반시론’), 돌연 그는 자신의 문화와 민족, 그리고 심지어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서도 바로 그것들에 공헌(‘시여, 침을 뱉어라’)하는 ‘세계적 촌부’의 시인을 꿈꾼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의 성취 여부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른바 후진국 지식인으로서 ‘앞섰다’는 것이 아니라 ‘뒤떨어졌다’는 것을 확실히 의식하고 직시하는(‘모더니티의 문제’) 것을 그 전제로 한다.

김수영은 짐짓 뚫거나 빠져나갈 구멍이 아직은 오리무중(‘반시론’)이라고 엄살을 부렸던 하이데거를 그렇게 극복해낸다. 그는 자기의 현실에 충실하고 그것을 정직하게 작품 위에 살릴 줄 아는 시인의 양심(‘문맥을 모르는 시인들’)을 통해 순전히 자기 존재의 가능성 추구에 머물러 있는 하이데거적인 양심의 세계를 넘어선다. 그저 인류의 신념과 이상을 관조하는 데 그친 하이데거와 달리, 그는 현대사회가 제출하는 역사적 과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열의(‘‘현대성’에의 도피’)와 더불어 전위적이고 현대적인 시인이 추구하는 언어적 순수성에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윤리를 포함(‘새로운 포멀리스트들’)시킴으로써 문득 우리 앞에 “광휘에 찬 신현대문학사”(‘이 한국문학사’)를 빛내는 ‘시인 중의 시인’으로 우뚝 선 채.

임동확 시인.
임동확 시인.

임동확 시인·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모리배

언어는 나의 가슴에 있다
나는 모리배들한테서
언어의 단련을 받는다
그들은 나의 팔을 지배하고 나의
밥을 지배하고 나의 욕심을 지배한다

그래서 나는 우둔한 그들을 사랑한다
나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하이데거를
읽고 또 그들을 사랑한다
생활과 언어가 이렇게까지 나에게
밀접해진 일은 없다

언어는 원래가 유치한 것이다
나도 그렇게 유치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아 모리배여 모리배여
나의 화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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