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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프간의 희망은 지금 어디에…

등록 2021-08-27 05:00수정 2021-08-27 09:35

[한겨레Book]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파지아 쿠피: 폭력의 역사를 뚫고 스스로 태양이 된 여인
파지아 쿠피 지음, 나선숙 옮김 l 애플북스(2012)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 최초로 여성 국회 부의장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여성 인권운동가로 활동해 온 파우지아 쿠피가 저널리스트 나딘 구리의 도움을 받아 쓴 자전적 기록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나의 딸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아프간에서 여성으로 살아내야 했던 삶과 역사를 어린 딸들에게 들려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프간 북동부 바다흐샨 출신인 파우지아의 가문은 대대로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으로 그의 부친은 1978년 카불 정부와 무자헤딘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려다가 살해당할 때까지 25년간 하원의원을 지냈다. 파우지아는 그가 거느린 일곱명의 부인 중 두 번째 부인의 막내딸이자 23명의 자식 중 열아홉번째였다. 이미 일곱명의 자식을 낳아 지칠 대로 지친 어머니는 또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가 죽기를 바라며 황량한 벌판의 태양 아래 버려두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지만, 그는 가족 중 유일하게 학교에 다니는 딸이 되었고,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하지만, 1996년 9월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자 그의 꿈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탈레반은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들을 처벌했고, 그는 부르카를 거부했다. 그의 남편은 탈레반에게 체포되었다가 감옥에서 폐결핵을 얻어 죽었다. 북부동맹의 마수드가 통치하는 지역에서는 그나마 자유를 누리며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2001년 테러조직 알카에다는 탈레반 정권을 위해 마수드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죽고 이틀 뒤 9·11테러가 일어났다. 9·11테러 직후 미국은 곧바로 카불의 탈레반 정권을 공격했다.

탈레반이 쫓겨난 뒤 파우지아는 유니세프 아동보호관으로 활동하며 마수드에게 걸었던 희망을 자신이 직접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2005년 총선에서 하원에 당선된 그는 ‘백 투 스쿨’ 캠페인을 벌여 여성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포기하지 않도록 했고, 여성폭력철폐법을 제정했다. 그의 정치 활동은 부패한 카불 정부와 극단적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인 탈레반 모두에게 위험한 것이었다. 그는 2010년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낭가르하르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총격을 받았고, 2020년 8월14일에 발생한 암살 시도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파우지아는 모스크바와 카타르 도하에서 세 차례에 걸쳐 열린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에 여성인권운동가 라일라 자파리와 함께 참여했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70여명의 협상단 중에 여성은 없었다.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탈레반 대표에게 “우리 쪽에 여성 대표단이 있는 만큼, 당신들도 여성을 협상 테이블에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탈레반 대표는 그 말을 듣자 웃음을 터트리며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라 국가수반, 재판관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남성뿐이라고 말했다.

2021년 5월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 시작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7600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었고 미군과 다국적군을 포함해 3500여명에 달하는 병사를 잃었다. 파우지아는 “만약 평화협상이 탈레반에게 모든 권한을 주는 일이 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패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이 철수한 2021년 8월 현재 그와 두 딸은 탈레반이 점령한 카불 현지에 머물고 있으며, 생사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시작도 끝도 잘못된 전쟁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더 늦기 전에 이 전쟁의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때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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