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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파주보다 개성이 가까운 대성동 사람들 이야기

등록 2021-11-26 04:59수정 2021-11-26 20:04

대성동
DMZ의 숨겨진 마을
임종업 지음 l 소동 l 2만원

휴전선을 가운데로 남북 2㎞,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 내부에 민간인이 집단 거주하는 마을이 딱 두 곳 있다. 군사분계선 남쪽 ‘자유의 마을’(대성동)과 북쪽 ‘평화의 마을’(기정동)이다. 유엔군사령부(유엔사) 관할로, 마을의 자치 규약조차 ‘군사기밀’이라는 대성동 이야기가 차분하게 정리된 책이 처음으로 나왔다. 마을 주민을 인터뷰하고, 오랜 사료를 뒤지고, 한국전쟁 당시 군사 문건 등을 꼼꼼히 찾아낸 결과물이다.

대성동 마을의 현재를 이해하려면 유엔사라는 중력을 먼저 체감해야 한다. 출입증 관리와 이장 선출과 주민의 자격·의무 등을 담은 ‘525-2 대성동 민사행정’ 규정은 ‘대성동 헌법’이라 할 만하다. 이 규정은 정전협정이 항구적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때까지 국적을 불문하고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래서 대성동 주민들은 지금도 밤 12시가 통금 시간이다. 대한민국 장관이라도 이들을 찾기 위해선 유엔사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대성동 주민들은 주민등록증과는 별도로 신분증을 받는데, 신분증 발급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유엔사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이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이전부터 대성동 인근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접경지대에 살던 이들은 정작 한국전쟁 당시에는 전쟁을 체감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대성동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인민군들이 남하하는 모습을 보며 ‘무슨 일이 터졌구나’ 직감했을 뿐이란다.

휴전 뒤엔 유령 취급을 받기도 했다. 대성동 주민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 것이 1969년 주민등록증을 처음 발급받으면서부터라고 하니, 휴전 이후로도 15년 넘게 잊혀진 존재가 되어 난민 아닌 난민의 삶을 살았던 셈이다.

대성동이 지금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79년 중앙정보부가 보고한 ‘판문점 지역 종합 개발 건의’가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재가를 받으면서다. 이 사업은 접경 지역을 개발해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당시 보고서는 현대식으로 정비된 북한 기정동 마을과, 흙벽과 나무 기둥이 허름했던 대성동 마을 사진을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었다.

지은이 임종업은 자신의 노작을 ‘반쪽짜리 책’으로 평한다. “대성동의 짝인 기정동 마을을 아우르지 못한 채 마무리하는 게 못내 걸린다”는 것이다. 분단체제의 모순과 그 안에서 살아온 삶을 조망하려는 노력, 어느 하나에 비슷한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지은이 말마따나 ‘이 책이 마중물이 되길’ 바라며 아쉬움을 달랜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대성동 너른 들판을 가운데로 남녘의 태극기와 북녘의 인공기가 우뚝 솟아 있다. 대성동과 기정동에 각각 설치된 국기 게양대는 키높이 경쟁을 벌인 일화로 유명하다. 소동출판사 제공
대성동 너른 들판을 가운데로 남녘의 태극기와 북녘의 인공기가 우뚝 솟아 있다. 대성동과 기정동에 각각 설치된 국기 게양대는 키높이 경쟁을 벌인 일화로 유명하다. 소동출판사 제공

2018년 4월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장으로 향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회담 성공을 응원하러 길가에 나온 대성동 주민들과 만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소동출판사 제공
2018년 4월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장으로 향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회담 성공을 응원하러 길가에 나온 대성동 주민들과 만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소동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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