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범죄 분류 매뉴얼
강력범죄 수사 및 분류 표준시스템
존 더글러스 등 지음, 배상훈 등 옮김 l 앨피 l 3만5000원
검찰의 지휘권이 2021년부터 폐기되면서 경찰이 독립적으로 수사를 시작하고 종결할 수 있게 됐다.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등 6대 범죄를 제외하기는 했으나 경찰에게 전에 없던 권한이 주어진 셈이다. 검찰의 전횡을 막자는 취지이지만 경찰이 ‘따까리’에서 독립기관으로 거듭날지 주목돼 왔다. 수사권 조정 1년이 돼 가는 현재 경찰의 타성과 무능이 드러나고 있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정치화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검경 당사자들에게는 밥그릇 싸움으로 귀결된다. 일반인이 보기에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오히려 일반인에게 치명적이다. 경찰로 넘어간 밥그릇에 보통사람들과 관련된 사건이 대부분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고와 범죄 외에 개인 간 다툼들이 경찰에서 키워질 수도 있고, 뭉개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중립 수사보다 완장질하기에 딱이다.
경찰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 나왔다. 범죄사전 겸 수사 지침서인데, 미 연방수사국(FBI)에서 40여 년 동안 진행된 연구결과를 집대성했다. 주요 범죄를 미세 분류하여 총망라하고 해당 범죄의 특징, 수사 주안점에다 사례연구까지 덧붙였다. 이러한 매뉴얼화는 △용어의 통일 △수사기관끼리, 또는 유관기관 사이의 소통 △수사관 및 대중에 대한 교육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큰 도움이 되겠다.
매뉴얼이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전제가 있다. 범죄적 행동은 일반적인 행동이 증폭돼 나타나는 형태라는 것. 수사의 기본은 △돈 △원한관계 △성 △종교 또는 이념 등 범죄 동기 알아내기. 이게 완료되면 용의자 범위가 푹 줄어든다. 그 다음은 범죄현장에서 드러나는 범죄행동, 즉 동기가 어떻게 실행되는가를 들여다본다.
첫째 피해자 분석. 가해자와 아는 사이인가, 건장한가 연약한가를 판단한다. 둘째 가해자의 사전준비, 범죄의 실행과 뒤처리, 사후행동 등 현장지표를 살핀다. 범인이 현장에 얼마나 머물렀나, 공범이 있는가, 현장이 깔끔한가 어지러운가, 무기는 준비된 것인가, 시신은 어떻게 처리했나(은폐, 방치, 인위적 조작), 사라진 물건이 있나, 인위적으로 연출한 흔적은 없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 다음은 모발, 혈액, 정액, 타액 등 증거물 확보와 외상, 고문, 깨문 흔적, 과잉살상 등 부검결과의 분석. 자택, 직장, 차량 수색, 목격자 인터뷰도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입견을 갖지 말 것. 증거들이 누군가를 분명하게 지목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설령 수사 중간에 범인이 특정되더라도.
매뉴얼은 범죄를 △살인 △방화/폭탄공격 △강간 및 성적 공격 △비치명적 범죄(협박, 스토킹, 강절도, 폭행 등) △컴퓨터 범죄 △글로벌 범죄 △대량살인 △연쇄 살인 등으로 분류한다. 좀 거시기한데, 살인과 강간 항목이 가장 촘촘하게 분류돼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부분의 범죄가 많고 다양한 양태로 발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비치명적 범죄는 살인, 강간에 이르지 않거나 다른 형태로 발현된 범죄로, 이 역시 전통적 범죄에 속한다. (컴퓨터 범죄, 글로벌 범죄, 대량-연쇄살인은 기술 발달에 따라 최근에 급증한 최신형 범죄다.)
매뉴얼이 시민에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는지 ‘부릅눈’으로 지켜보기 위해서.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