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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청년 안중근의 총은 ‘동양평화’를 노래했다

등록 2022-08-05 05:00수정 2022-08-05 11:01

안중근 의거 다룬 소설 ‘하얼빈’
청년 김훈의 소망 마침내 책으로

천주교도로서의 갈등도 담아
“동양평화 명분은 여전히 유효”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의 거사를 다룬 소설 <하얼빈>을 낸 작가 김훈. “거사 이튿날 안중근의 부인 김아려 여사가 자식들을 데리고 하얼빈에 도착하는 대목을 쓸 때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의 거사를 다룬 소설 <하얼빈>을 낸 작가 김훈. “거사 이튿날 안중근의 부인 김아려 여사가 자식들을 데리고 하얼빈에 도착하는 대목을 쓸 때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하얼빈
김훈 지음 l 문학동네 l 1만6000원

소설가 김훈이 안중근을 마음에 품기는 벌써 오래전부터였다. 그의 작업실 벽에는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을 담은 ‘필일신’(必日新) 글귀가 적힌 녹색 칠판과 함께 안중근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 했다는 그는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서 계속 미루었으나, 최근 건강 문제를 겪으며 더 늦기 전에 마무리 짓자는 절박감으로 <하얼빈> 집필에 임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하얼빈>은 1909년 10월26일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일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을 중심으로 짜였다. 황해도 토호의 자식이자 천주교인이었던 안중근이 ‘동양평화’를 위해 이토를 살해하기까지의 과정, 현장에서 체포된 그가 심문과 재판 과정에서 한 발언, 그에게 세례를 준 빌렘 신부와 한국 교회를 통솔하는 뮈텔 주교 등 천주교 쪽의 반응 등이 소설의 몸체를 이룬다. 제국주의 일본의 문명관과 평화관을 체화한 이토의 내면과 행동 역시 비중 있게 그려진다.

“하얼빈은 만주의 중심이다. 이토는 대련에서 북상해서 하얼빈으로 오고 우리는 우라지에서 서행해서 하얼빈으로 간다. 러시아 재무장관 코콥초프는 모스크바에서 하얼빈으로 온다.”

소설 속 핵심 사건이 벌어지는 하얼빈으로 주요 인물들이 모여든다. 안중근이 의병 동지였던 우덕순과 함께 거사를 도모할 때 그들에게는 아무런 주저도 회의도 없었다. 이토를 제거하는 것은 뜻을 지닌 조선 청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거사 뒤에 이들이 도주를 꾀하거나 자신들의 행위를 부인하거나 일제 사법 체계의 온정을 구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소설 <하얼빈>의 힘과 감동은 무엇보다 두 청년이 뿜어내는 “에너지”에서 온다.

“그대는 정치적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다지만, 이런 행위는 사람의 도리에 반하는 일이다. 그대의 그릇됨을 모르는가?”

“사람의 도리에 반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토가 죽었다니, 내가 이토를 죽이려 한 까닭을 이토에게 설명해줄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일제의 검찰관과 안중근이 주고받는 대화다. 안중근의 신문 기록과 법정 진술은 고스란히 남아 있거니와,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조중장”을 자부하는 그의 의기(義氣)는 거침이 없고 당당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의 거사를 다룬 소설 &lt;하얼빈&gt;을 낸 작가 김훈. “거사 이튿날 안중근의 부인 김아려 여사가 자식들을 데리고 하얼빈에 도착하는 대목을 쓸 때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의 거사를 다룬 소설 <하얼빈>을 낸 작가 김훈. “거사 이튿날 안중근의 부인 김아려 여사가 자식들을 데리고 하얼빈에 도착하는 대목을 쓸 때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일제 하수인들을 상대하는 일에 비해 안중근에게 한결 까다로운 것이 천주교 신자로서의 처신이었다. 그에게 ‘도마’라는 세례명을 주었던 빌렘 신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기 전에 인사차 온 안중근에게 이렇게 말한다. “도마야, 악으로 악을 무찌른 자리에는 악이 남는다.” 안중근이 이토라는 악을 살인이라는 또 다른 악으로 처단하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투다. 그 빌렘이 사형을 앞둔 자신을 감옥으로 찾아오자 안중근은 말한다. “이토를 쏠 때, 이토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조준했습니다. 쓰러뜨리고 나서, 신부님께 세례 받던 날의 빛과 평화가 떠올랐습니다.” 안중근에게, 이토를 살해하기에 이른 증오는 세례에서 맛본 빛과 평화와 다르지 않았다.

빌렘은 그나마 마지막 순간에 안중근에게 고해성사를 베풀지만, 그의 상관인 뮈텔 주교는 끝내 안중근을 교회 밖으로 내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김수환 추기경이 교구장으로 있던 1993년 8월에야 안중근 추모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그의 신자 자격을 ‘복권’시켰다.

“두 젊은이는 양극단에서 마주 서서, 각자의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황사영은 국가를 제거하려다가 죽임을 당했고 안중근은 국가를 회복하려고 남을 죽이고 저도 죽게 되었는데, 뮈텔은 이 젊은이들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를 가엾이 여겼다.”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뮈텔은 그보다 100여년 전 백서사건으로 처형당한 천주교도 황사영을 떠올린다. 조선 내 천주교도들의 안전을 구실로 서양의 군사적 개입을 요청한 황사영의 백서가 불러일으킨 파장은 김훈의 앞선 소설인 <흑산>에서도 중요한 모티브로 구실한 바 있다.

소설가 김훈.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소설가 김훈.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안중근은 몸속에서 버둥거리는 말들을 느꼈다. 말들은 탄창 속으로 들어가서 발사되기를 기다리는 듯하다가 총 밖으로 나와서 긴 대열을 이루며 출렁거렸다. 말은 총을 끌고 가려 했고, 총은 말을 뿌리치려 했는데, 안중근은 마음속에서 말과 총이 끌어안고 우는 환영을 보았다.”

동양평화를 위해 이토를 살해했다는 안중근의 말은 거짓이나 핑계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살인이라는 폭력이 평화를 위한 헌신이었다. 총이 곧 그의 말이었다. 이순신을 주인공 삼은 소설 <칼의 노래>와 우륵의 이야기인 <현의 노래>에 이어 안중근을 다룬 이 소설의 제목이 ‘총의 노래’였으면 노래 삼부작으로 맞춤했겠다 싶다.

“보이는 조준선과 보이지 않는 표적 사이에서 총구는 늘 흔들렸고,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

“우덕순의 삼십 년 생애는 끼니에 매달려 있었고 분석할 만한 것이 없었다.”

김훈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문장들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안중근의 상대역인 이토가 통감관방의 보고서를 읽으며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필요를 강조하는 데에서는 그의 또 다른 전작 <남한산성>에서 청의 칸이 신하들의 문장을 ‘데스킹’ 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판단을 미리 하지 마라, 귀관들은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서 보고하라, 뒤섞지 마라…라고 이토는 늘 지시했으나 충성의 앞자리를 다투는 관료들은 스스로의 말에 현혹되어 통감의 지시에 미치지 못했다.”

김훈은 3일 열린 <하얼빈>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안중근에게는 국권회복보다 동양평화가 훨씬 상급의 개념이었다”며 “안중근이 이토를 죽인 것으로 시대의 사명을 다 했다고 할 수는 없다. 동양평화라는 대의와 명분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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