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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국회의사당 해태상의 비밀인 듯 비밀 아닌 이야기

등록 2023-01-27 05:00수정 2023-01-27 10:24

1975년 묻어둔 국산 와인 75병
우리 술 역사 속에서 그 이유 찾아

통계, 도표, 고문헌 등 팩트에 충실
“관심과 연구 지속적으로 이뤄지길”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
이대형의 전통주 인문학
이대형 지음 l 시대의창 l 1만9800원

국회의사당 해태상에는 비밀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52년 뒤엔 그 비밀의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되겠지만, 호기심 많은 와인 애호가들은 그저 아득하기만 한 시간이다. 기실 알고 보면 해태상 비밀은 ‘비밀’이라고 하기에는 머쓱한, 익히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1975년 해태제과는 국회의사당 완공 기념으로 3000만원을 들여 만든 해태상 조형물을 기증하면서 색다른 이벤트를 마련했다. 해태제과 계열 양조업체인 해태주조가 국산 포도로 제조한 ‘노블와인’ 75병을 반으로 나눠 각각 두 마리 해태상 아래 묻은 것이다. 땅을 10m 정도 파고 석회 항아리까지 만들어 와인 보호 상자로 삼았다고 하니 꽤 공을 들인 이벤트였던 셈. 100년 뒤인 2075년에 봉인된 와인을 열겠다는 계획은 이벤트의 화룡점정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와인이었을까? 한민족의 삶과 함께한 우리 술은 많다. 우리 민족의 애환이 녹아 있는 막걸리, 마실수록 매료되는 가양주들, 품격이 넘치는 증류식 소주 등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우리 술 역사를 촘촘히 따져본다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노블와인이 묻혀 있는 국회의사당 해태상. 시대의창 제공
노블와인이 묻혀 있는 국회의사당 해태상. 시대의창 제공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는 전통주의 희로애락을 각종 통계와 데이터, 정확한 숫자가 기재된 도표, 수많은 고문헌을 증빙 자료 삼아 더듬어 간다. 이공계 출신다운 저자의 꼼꼼한 팩트체크는 기존에 출간된 우리 술 관련 서적과는 결을 달리한다. 이런 이유로 책은 놀라울 만큼 탄탄한 팩트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풍성한 이야기 한마당이 됐다.

국회의사당 해태상 아래 묻혀 있는 노블와인. 시대의창 제공
국회의사당 해태상 아래 묻혀 있는 노블와인. 시대의창 제공

저자가 기술한 사례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면,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와인 맛을 알았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 황제가 여러 차례 와인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있다. 구한말 대한제국 농상공부는 “프랑스로부터 양조용 포도나무(리슬링, 모스카토, 피노누아)”를 들여와 원예모범장에 심어 “품종별 당분 등을 분석하고 주류 제조업자들에게 정보를 공유했다”. 저자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6~7년 전부터 분 ‘한국와인’ 열풍의 계기가 2004년 체결된 한-칠레 에프티에이였다고 진단한다. ‘한국 땅에서 나는 과실로 발효 과정을 거쳐 알코올을 만든 것’이 ‘한국와인’이란 정의도 보탠다.
김홍도의 &lt;주막&gt;.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시대의창 제공
김홍도의 <주막>.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시대의창 제공

한국인의 솜씨 좋은 양조기술은 와인에만 머물지 않았다. 1960년대엔 고량주 양조장이 전국에 8개나 있었다. 그 질이 우수해 대만에도 수출했다고 하니 중국인들이 기함하고 남을 일이다. 물론 저자는 고량주 양조장이 지금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이유도 첨언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업체 간의 과당 경쟁으로 술의 품질이 저하되면서 1997년엔 2개소로 줄었다.”

1901년 6월19일자 &lt;황성신문&gt; 광고 속 와인.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시대의창 제공
1901년 6월19일자 <황성신문> 광고 속 와인.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시대의창 제공

2008년부터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전통주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전문 글쟁이는 아니지만,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는 온라인상의 (전통주 관련) 글들을 접”한 게 계기가 되어 출간을 결심했다. 특히 그는 “우리 술 체계가 완성된 조선시대”에는 누룩 상점 ‘은국전’이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었던 풍토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지다시피 한 작금의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외국 술과 차별화할 수 있는 훌륭한 재료가 누룩”이며 “양조인들의 관심과 연구자들의 연구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소줏고리를 이용한 소주 만들기 과정. 시대의창 제공
소줏고리를 이용한 소주 만들기 과정. 시대의창 제공

책은 ‘한양에도 서울만큼 술집이 많았을까?’ ‘시대에 따라 우리 술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등 물음표로 시작해 감초 같은 이야기까지 얹어져 맛깔스러운 한 잔의 그윽한 전통주 인문학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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