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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00살 키신저의 고언 “미국-중국, 충돌 넘어 공존의 길 찾아야” [책&생각]

등록 2023-06-02 05:00수정 2023-06-02 08:45

미국의 국제전략가 헨리 키신저.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의 국제전략가 헨리 키신저. 위키미디어 코먼스

리더십
현대사를 만든 6인의 세계 전략 연구
헨리 키신저 지음, 서종민 옮김 l 민음사 l 3만3000원

올해로 100살을 맞은 헨리 키신저는 1969년부터 1977년까지 닉슨-포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전략가다. 이념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레알폴리티크(Realpolitik, 현실정치)의 신봉자로서 통상적 외교 경로를 따르지 않는 ‘키신저 외교’를 펼친 사람이다. 미국과 중국의 만남에 다리를 놓고 미-소 데탕트의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베트남전 종식에도 힘을 쏟았다. 키신저가 지난해 펴낸 <리더십: 현대사를 만든 6인의 세계 전략 연구>는 2차 대전 종결 이후 활약한 여섯 명의 정치가를 통해 정치적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한국어판으로 600쪽에 이르는 책에서 100살에 가까운 나이에도 총기를 잃지 않는 키신저의 놀라운 정신력을 읽어낼 수 있다. 냉정한 시선으로 전체 현실을 파악하는 안목은 현대에 되살아난 마키아벨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키신저가 리더십의 사례로 제시하는 여섯 인물은 콘라트 아데나워(독일), 샤를 드골(프랑스), 리처드 닉슨(미국), 안와르 사다트(이집트), 리콴유(싱가포르), 마거릿 대처(영국)다. 이 여섯 사람 모두 전후 세계 질서를 만드는 데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키신저 자신이 직접 만나 교류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키신저는 이 여섯 지도자들이 “상황을 꿰뚫어보는 현실감각과 강력한 전망”을 갖추고 있었으며 대담하게 행동할 줄 알았다고 쓴다. 이 지도자들은 “가장 중요한 국가적 의의가 걸린 일이라면 대내외적 상황이 명백하게 불리해 보일 때도 결단력 있게 행동했다.”

키신저는 특히 전망이 보이지 않는 혼란 속에서 평화를 일구어내는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서구권 밖의 인물로 이 책에 등장하는 사다트가 그런 인물이다. 사타트는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으로 양쪽의 불화가 격화하던 때에 이집트 대통령으로서 적대국과 평화를 도모하는 큰걸음을 내디뎠다. 사다트가 1981년 이슬람 급진파에게 암살당한 것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 화해를 이루려는 그 담대한 행보가 부른 비극이었다. 키신저가 닉슨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이념에 매몰돼 저지른 베트남 전쟁을 끝내고 냉전의 장벽을 뛰어넘어 중국과 손을 잡는 용기 있는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키신저는 이 책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를 두고 걱정어린 충고도 내놓는다. 키신저가 보기에 미국과 중국은 둘 다 스스로 예외적인 나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다르다. “미국은 자국의 가치를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모든 곳이 이 가치를 채택하리라는 전제 아래 행동한다. 중국은 타국이 중국 문명의 고유성과 놀라운 경제성과에 감화돼 중국의 우위를 존중하리라고 생각한다.” 키신저는 두 나라가 핵심 이익으로 여겨온 요소들을 놓고 “어느 정도는 타성으로”, 더 중요하게는 “고의로” 충돌하고 있다는 데 우려를 나타낸다. “세계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두 거물이 피할 수 없는 전략적 경쟁 관계에 ‘공존’이라는 개념과 실천을 결합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공존을 앞세울 때에만 미-중 경쟁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놓고도 고언을 아끼지 않는다. 키신저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전략적 대화의 실패” 탓으로 볼 수 있다며 ‘러시아의 전략적 우려’를 서방이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다면, 러시아와 유럽 사이 안보 경계선은 모스크바로부터 고작 4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하게 된다. 프랑스와 독일이 잇달아 두 세기 동안 러시아를 점령하려 했을 때 이 나라를 지켜준 역사적 완충지대가 사실상 사라지는 것이다.” 책을 끝내면서 키신저는 “모든 당사자가 국제 행동에 관한 자국의 제1원칙을 재검토하고 이를 공존 가능성과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문제가 위기가 되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그 문제를 다스려야 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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