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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비윤리적이고 천하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라서

등록 2023-06-02 05:01수정 2023-06-02 09:48

미국 언론인의 ‘더티 워크’ 탐사
교도관, 도축 노동자, 드론 조종사…

무관심 속에 취약계층에게 맡겨져
차별과 배제, 불평등의 구조 파헤쳐
도축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이얼 프레스는 사람들이 비윤리적이고 불결하지만 ‘누군가 해야 한다’ 여기는 ‘더티 워크’의 불평등한 구조를 파헤친다. 출처 이미지투데이(기사 및 보도와 연관 없음), 한겨레출판 제공
도축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이얼 프레스는 사람들이 비윤리적이고 불결하지만 ‘누군가 해야 한다’ 여기는 ‘더티 워크’의 불평등한 구조를 파헤친다. 출처 이미지투데이(기사 및 보도와 연관 없음), 한겨레출판 제공

더티 워크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l 한겨레출판 l 2만5000원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 있다. ‘3디(D) 업종’이 대표적이다. ‘힘들고(difficult), 위험하고(dangerous), 더러운(dirty)’ 일은 누구나 하기 싫은 법이다. 1980년대 말부터 두드러진 이 현상은 외국인 노동자의 대규모 유입을 불러왔고, 차별과 배제에 이은 불평등은 여전한 문제로 남아 있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이얼 프레스는 <더티 워크>에서 현대 사회 곳곳에, 단지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필수노동’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안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일들은 “사회에 꼭 필요”한 일들이기에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 저자는 교도소 내 정신병동의 교도관들, 대규모 도살장의 노동자, 살인 드론 전투원, 시추선 노동자 등을 대표적인 ‘더티 워커’(dirty worker)로 규정하면서, 그들의 일과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탐색한다.

저자는 더티 워커들의 일 자체를 탐색하면서도 그것을 배태한 사회적 시스템을 천착한다. “어떤 일이 행해지고, 그 일을 누가”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밖의 우리 모두는 어떤 방법으로 그들에게 그 일을 위임하는가”를 아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비인간적인 산업 시스템 속에서 더티 워크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그들은 더 숨죽여 일할 수밖에 없다.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별도의 ‘더티 워커’ 계층이 그런 일을 위임받을 때, 모르는 척하기가 얼마나 더 쉬워지는가?”

1990년대 들어 미국의 교도소는 “정신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점점 더 많이 수용”하게 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정신병원”이 되었다. 플로리다주 교도소만 해도 정신질환을 앓는 수감자가 1996년부터 2014년 사이 153퍼센트나 증가했다. 1976년 연방대법원이 “수감자에게 정신과 치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판결했음에도, 현재까지도 제대로 지켜지는 곳은 많지 않다. 교도관들이 거대한 장벽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미국 내 여러 교도소에서 “교도관의 근무시간이 길어졌으며, 이로 인해 스트레스 수치와 함께 학대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결과적으로 교도관들은 교도소의 원활한 운영이라는 미명 아래 자주 수감자들에 대한 학대를 일삼았다.

물론 교도관들이 느끼는 고충도 만만치 않다. 일단 “재소자를 보호하는 규칙”은 많은 반면, 교도관들을 보호하는 규칙은 미비하다. 이보다 더한 고충도 있다. “교도관 일은 천하고 불명예스럽다”는 사회의 낙인이다. 실제로 교도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주로 침체되고 척박한 촌구석에 사는, 선택지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다. 물리적·심리적으로 가혹한 노동 환경과 세상의 차별적 시선은 교도관들을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흑인 교도관들은 흑인 재소자들로부터 “형제를 배반한다”, “백인을 위해 일한다” 등의 야유마저 감내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단지 비용 절감이 목적인 “교도소 의료 사업 민영화”가 속속 진행되면서 재소자들의 인권은 물론이고 교도관들의 업무 강도마저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교도소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교도관, 대규모 도살장의 노동자, 살인 드론을 조종하는 전투원 등을 취재했다. 출처 이미지투데이(기사 및 보도와 연관 없음), 한겨레출판 제공
지은이는 교도소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교도관, 대규모 도살장의 노동자, 살인 드론을 조종하는 전투원 등을 취재했다. 출처 이미지투데이(기사 및 보도와 연관 없음), 한겨레출판 제공

현대의 전쟁은 군인들의 수로 결정되지 않는다. 첨단 기술력, 예를 들면 드론을 띄워 적진 요지에 미사일을 정확히 떨어뜨리면 그만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국가안보에 긴박한 위협이 되는 고위급 표적에 대해서만 승인된다”는 이유로, 또한 “미국 병사가 사망할 위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드론 전쟁이 드론 조종사들에게 정신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원거리와 기술 덕분”에 전쟁에 대한 도덕적 부담이 줄고 “살인이 비디오게임만큼 초연한 활동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전투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살인을 살인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드론 전사들은 “적에게 폭탄을 떨어뜨리다가 퇴근”을 한다. 화면 속 전쟁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전쟁이 이어지는 와중에, 일상의 평온함마저 지켜야 한다. 이혼한 사람들, 자살한 사람들이 여럿 나온 이유다. 그런가 하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은 (…) 그나마 얼마간의 존경”을 받을 수 있지만 “컴퓨터 단말기 앞에 앉아 싸우는 사이버 전사의 심리적, 감정적 상처”는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차별과 소외는 드론 전사들에게 일상다반사이지만, 제대로 된 치료는 언감생심이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더티 워커는 사실 각종 정육공장에서 일하는 도축 노동자들이다. 도축 노동자들은 일 그 자체가 고되다. 고된 노동으로 ‘피부, 근육, 손가락’ 등에 깊은 상처가 남는다. 심지어 화장실조차 제때 가지 못하는 환경에서, 도축장 노동자들은 몸은 물론, 마음과 영혼마저 깊게 베인 상처들로 아프다. 많은 정육공장에서 연간 이직률이 100퍼센트를 넘는 게 그 방증이다. 교도소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변두리”에 자리 잡은 미국의 도축장들은 도축장 노동자들의 삶의 자리, 즉 환경마저 황폐화시킨다. 라틴계와 아프리카계 주민들이 거주하는 땅의 개천과 강으로 흘러드는 “정육 산업의 더러운 부산물”인 피와 분변이 얼마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이처럼 수많은 ‘더티 워커’들이 온몸으로 받아낸 고통에 기대어 있다. 더티 워크는 “사회 많은 구성원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는 노동”, 즉 “사회의 ‘필수’노동”이기 때문이다. “구조적 비가시성”에 감춰진 더티 워크를 공론화하는 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일말의 연민을 가지고 손 내미는 일, 쉽지 않지만 우리가 노정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더티 워크’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 아직 널리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더티 워크>는 공론장을 넓혀가는 역할을 감당할 것으로 보인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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