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이라는 유령-네그리와 하트의 제국론 비판> 알렉스 캘리니코스 외 지음.김정한·안중철 옮김. 이매진 펴냄·1만2000원
21C 가장 영향력 큰 저작 중 하나인 네그리·하트의 ‘제국’에 반격
“지구적 자본주의 대항운동 저해하는 장애물일 뿐”
“지구적 자본주의 대항운동 저해하는 장애물일 뿐”
“제국이 바로 우리 눈앞에 구체화되고 있다. 과거 수십 년에 걸쳐서 식민지 체제가 무너지고, 그 다음에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대한 소비에트라는 장벽이 최종적으로 황급히 붕괴한 뒤에, 우리는 저항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경제적·문화적 교환들의 전지구화를 목격해 왔다. 전지구적 시장 및 전지구적 생산회로와 더불어 전지구적 질서, 새로운 지배논리와 지배구조, 간단히 말해서 새로운 주권 형태가 등장했다. 제국은 이러한 전지구적 교환들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정치적 주체, 곧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 권력이다.”
이 야심만만한 선언은 <제국>의 첫머리에 나온다. 이탈리아 자율주의 이론가 안토니오 네그리와 그의 지적 동업자 마이클 하트가 함께 써 2000년에 출간한 <제국>은 20세기에 출간된 좌파 이론서 가운데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저작이자 가장 많은 논란과 반감을 불러일으킨 저작이다. 세계 좌익 운동은 <제국>을 환호하는 쪽과 <제국>에 반대하는 쪽으로 갈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제국이라는 유령>은 영국의 트로츠키주의 이론가 알렉스 캘리니코스를 비롯해 반대 쪽에 선 사람들이 쓴 글 모음이다. <제국>이 출간된 뒤, 이 논쟁적인 저작을 비판적으로 논평하는 서평들 가운데 밀도가 높은 것을 추려 모았다.
네그리와 하트가 말하는 ‘제국’은 과거 제국주의 시기의 제국과 전혀 성격이 다르다.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전지구적 차원에서 형성된 자본주의적 지배·착취 체제다. 지구가 곧 하나의 제국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묘사하는 제국이 국민국가의 확장과 팽창의 방식이었던 과거의 제국주의와 다르다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은 오히려 옛날의 로마 제국을 닮았다. 자기 완결적 보편 구조였던 로마 제국처럼 제국은 지구 전체를 그물로 엮어 스스로 작동한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도의 끝없는 확산과 저항으로 주저앉았듯이, 이 새로운 지구 제국은 인터넷 중심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다중의 저항을 통해 극복될 것이라고 이들은 예견한다.
<제국이라는 유령>의 필자들은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이 지적으로는 우아하고 현란하지만, 진단과 전망의 내용으로 보면 거의 공상에 가까운 책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세계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풍요로운 중심부와 종속적 주변부 사이의 거대한 물질적 격차가 사라지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조반니 아리기)
“<제국>의 지구화 패러다임은 자본주의적 사회질서의 재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영토적으로 조직된 국가권력의 구실을 설명할 수 없다.”(엘린 우드)
“<제국>은 진지한 정치 현실주의가 아니라, 저항의 욕망에 위안을 전해주는 (…) 신화다.”(티모시 브레넌)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아무런 전략적 지침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야말로 <제국>의 약점이라고 지적한다. 전략과 관련해 네그리와 하트는 유용한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캘리니코스는 공박한다. “네그리와 하트는 피억압자·피착취자를 익명의 무정형한 대중과 동일시하고, ‘도망·탈출·유목생활’을 민주주의적 힘이라고 선언하면서 이주민과 난민을 찬양한다.” 네그리와 하트는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구절을 비틀어 “하나의 유령이 세상에 출몰하는데, 그것은 이주라는 유령이다”라고 선언한다. 이 유령들, 곧 끝없이 이주하고 출몰하는 다중이 제국에 대항해 새로운 공간을 구성할 것이라고 네그리와 하트는 말하지만, 캘리니코스는 이 선언의 내용야말로 실체 없는 것, 곧 유령이라고 본다. 제국은 유령일 뿐이다.
캘리니코스는 네그리가 여전히 자율주의의 핵심 이론가이며, 지난 40년 동안 혁명적 지신인으로 살아온 점을 존경할 수도 있고 또 그런 점에서 그와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냉정한 평가를 거두지 않는다. 네그리의 사상은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성공적인 운동이 발전하는 데는 장애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영국의 트로츠키주의 이론가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이 아무런 전략적 지침도 제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캘리니코스는 네그리가 여전히 자율주의의 핵심 이론가이며, 지난 40년 동안 혁명적 지신인으로 살아온 점을 존경할 수도 있고 또 그런 점에서 그와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냉정한 평가를 거두지 않는다. 네그리의 사상은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성공적인 운동이 발전하는 데는 장애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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