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완간 14권 중 12권 옮겨
“좋은 가독성” 올 출판문화상
‘김승옥 연구’ 연세대 박사 학위
“논문 재미없어” 98년부터 번역
소세키 문학 원천은 자기치유
당대 일 사회 소세키 경외 놀라워
“좋은 가독성” 올 출판문화상
‘김승옥 연구’ 연세대 박사 학위
“논문 재미없어” 98년부터 번역
소세키 문학 원천은 자기치유
당대 일 사회 소세키 경외 놀라워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번역, 송태욱씨
현암사는 지난해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소설 전집 14권을 출판했다. 2013년 9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시작으로 지난해 6월 <명암>까지 소세키 장편소설을 모두 우리말로 옮겼다. 14권 가운데 12권을 송태욱(51)씨가 맡았다. 그는 이 작업으로 올해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도 받았다. 선정 사유는 ‘좋은 가독성’이다. 그를 지난 20일 작업실로 이용하고 있는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12권 번역에 4년이 걸리지 않았다. 급하게 한 것 아니냐고 하니 이렇게 말한다. “요즘 한달에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1000~1500장 번역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 1년에 14권 정도 책이 나오죠.” 소세키 작업을 하면서도 사이사이 다른 책 1~2권을 번역했다는 얘기다. “하루 50장이 목표입니다.” 매일 오후 카페에 들러 꼬박 8시간 번역에 매달린다. 이렇게 해야, 샐러리맨 급여 수준의 번역료가 된다.
“번역은 첫 페이지 할 때가 가장 재밌어요. 대부분은 지루하죠. (번역하는 동안) 다른 책을 읽고 싶은 마음도 강하게 들고요. 그래도 마음은 편해요.”
그는 연세대에서 소설가 김승옥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 쓰는 게 재미가 없었어요.” 2002년 월드컵 열기가 뜨거울 때 박사 학위를 6개월 만에 써버렸다. 보통 1년 이상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무척 빨리 쓴 것이다. “2003년 6월까지 책을 번역해야 했거든요. 번역 작업에 시간을 더 내려고 논문을 빨리 끝냈죠.”
첫 번역서는 98년 나온 가라타니 고진의 <탐구>다. 지금까지 100권가량을 옮겼다. “인문서와 문학서가 반반입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이다.
왜 학문의 길에서 중도하차 했을까. “과거 김현, 유종호 선생의 글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해서 이런 글이 나왔겠구나, 납득이 됐어요. 요즘 문학 논문을 보면 결론을 정해놓고 논리를 꿰맞춰가는 느낌이에요. 어떤 학자들을 보면, 왜 문학을 할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죠.”
‘소세키 마니아’인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소세키 소설은) 인간들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며 동시에 세상 역시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인간과 세상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는 얘기일 것이다. 여기에 해박한 지식과 교양이 녹아들어 지금 읽어도 새롭다는 느낌을 준다.
“소세키 번역은 다른 책보다 3배나 더 걸렸죠. 뒤로 가도 2배는 더 걸린 것 같아요.” 왜? “단어량이 (일본) 현대 작가에 견줘 10배 이상 많아요. 한자 가운데 유일한 용례가 소세키 것인 경우도 종종 있어요.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단어량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소세키에는 미치지 못하죠.”
번역을 두고 ‘가독성이 좋다’는 평가만큼 찬사가 있을까. 실제의 그의 번역은 편하게 읽힌다. 그는 소세키 장편 <우미인초>에 나오는 문장을 예로 들었다. ‘자극의 주머니를 대고 문명을 체로 치면 박람회가 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세키 문장이기도 하다. 화자가 박람회장을 구경한 뒤 다른 인물을 만나 툭 던진 말이다. “<우미인초>엔 이런 표현들이 숱하게 나옵니다. 번역자가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서 문장을 만들면 가독성이 생기지 않아요. 무슨 말인지 알아야 유연하게 단어 위치를 바꿀 수 있죠. (번역문이) 속으로 읽어나갈 때 걸리는 게 없는지도 살피죠.”
하지만 “번역의 가독성 자체에 답이 없는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번역자의 연배와 경험치가 다를수록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산보란 단어를 예로 들었다. 소세키 시대에 어울리는 표현이라 생각해 썼는데, 출판사의 젊은 교정자는 산책으로 바꾸자고 했단다. 산보란 단어가 익숙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일본 문부성 장학금을 받아 96년 도쿄외국어대에서 1년 연수를 하면서 일본어를 배웠다.
소세키 문학의 원천이 뭘까. 자기치유라고 했다. “근대문학 초기엔 계몽적 성격이 농후하죠. 하지만 소세키 소설은 전혀 계몽적이지 않아요. 화자가 반성적 시선을 자기에게 돌립니다. 소설에 자기와 다른 인물, 자기와 비슷한 인물을 등장시켜 다른 인물이 비슷한 인물을 공격하고 분석합니다. <행인>의 형이 실제 소세키를 닮았어요. 화자인 동생 지로가 형을 공격하고 분석하죠.” 소세키 문학의 ‘위대성’을 두고는 “돈과 인간관계, 소통 이런 것 아래 꿈틀대고 있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분석”이라고 답했다.
소세키 작품을 만나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냐고 물었다. “소세키 소설엔 일본 사회가 느껴지지 않아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 러일전쟁 이후엔 일본 경제가 매우 좋지 않았어요. 동북 지방에선 먹을 게 없어 아이를 내다 팔기도 했죠. 그런데 작품엔 자신보다 사회적 위치가 약한 이들의 목소리가 나타나지 않아요. 제국주의 문제에 대한 언급도 없어요. 오직 자신의 문제에만 급급하죠.”
그가 주목한 건, 작가 소세키와 문학을 향한 당대 일본 국민들의 경외다. “소세키가 죽은 뒤 해부를 합니다. 동경제대를 나온 유학파 의사들이 작가를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해요. 난해한 소설인 <우미인초>가 신문에 연재됐을 때 국민적 열풍이 불었어요. <우미인초> 상표를 단 물건이 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렸어요.” 이런 현상이 “소세키 시대 일본의 문해력이 90% 정도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했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번역자 송태욱씨.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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