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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테네인들은 함께 자책하고 정화했다, 오이디푸스처럼

등록 2020-04-03 06:00수정 2020-04-03 09:20

[신화와 축제의 땅, 김헌의 그리스 기행]
② 디오니소스 축제와 극장

‘오이디푸스 왕’이 공연됐을 때 객석의 시민들은 전쟁과 역병으로 지도자, 부모, 형제를 잃었다
무대 위 비극은 전설이 아니라, 그때 그곳의 절망한 사람들을 위한 생생한 진혼곡이었던 것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본 디오니소스 극장.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요맘때 아테네의 시민들은 디오니소스 제전을 벌였다. 제전의 꽃은 비극경연대회였다. 김헌 제공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본 디오니소스 극장.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요맘때 아테네의 시민들은 디오니소스 제전을 벌였다. 제전의 꽃은 비극경연대회였다. 김헌 제공

아테네 중앙에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면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전을 빙 돌다가 남쪽의 성벽 끝으로 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디오니소스 극장이 환하게 보인다. 아찔하게 깎아지른 성벽이 끝나는 부분부터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객석이 가지런히 계단을 이루며 부채꼴로 내려간다. 꼭짓점에서 평지가 시작되는데, 거기에 대리석으로 닦인 ‘오르케스트라’라는 반원 모양의 마당이 보인다. 그 중앙에는 제단의 흔적이 역력하다. 오르케스트라가 직선으로 끝나는 부분에 잇닿아 무대가 솟아 있고 무대 뒤로는 배경화면 그림을 걸어 놓을 수 있는 벽면 건물이 있었다. 지금은 무대로 오르는 야트막한 계단의 흔적만 간신히 남아 있고 벽면 건물과 거기에 붙어 있던 디오니소스 신전은 완전히 사라졌다. 폐허의 자리에서 옛 극장의 온전한 모습을 상상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연이 만든 터의 무늬를 오롯이 살려 그 위에다 객석과 마당을 아로새기고, 무대와 신전을 덧입힌 솜씨가 천하일품이다.

에피다우로스에서 발견된 아스클레피오스 신상. 김헌 제공
에피다우로스에서 발견된 아스클레피오스 신상. 김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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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테네의 역병과 무대 위의 비극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요맘때 고대 아테네의 시민들은 이 극장에 모여 풍년을 기원하는 디오니소스 제전을 벌였다. 제전의 꽃은 비극경연대회였다. 비극은 예술과 문화 활동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예배요 제의였다. 따라서 극장이라고는 하지만, 본래 디오니소스 신을 기리는 예배당인 셈이다.

기원전 429년쯤, 그리스 비극의 백미로 꼽히는 ‘오이디푸스 왕’이 공연되었고 아테네 시민들이 모두 모여 예배를 드리듯 비극을 관람했다. 무대 깊숙한 곳에서 문이 열리고 오이디푸스가 걸어 나와 마치 제단 위에 올리는 제물처럼 무대 중앙에 선다.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탄원한다. 사악한 역병이 도시 전체를 덮치면서 전염된 사람들이 죽어가니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는 문제의 해결을 약속하며 신탁을 구한다.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자가 벌을 받지 않고 도시에 숨어 있다. 도시를 오염시킨 범인을 처벌하라!’ 오이디푸스는 범인을 잡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데, 결국 자신이 범인임이 밝혀진다. 그는 진실을 피하지 않고, 약속대로 도시를 정화하기 위해 자신의 두 눈을 찌르며 자기 징벌을 감행한다. 도시를 구하는 제물이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관객들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다. 그로부터 불과 2년여 전,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전쟁을 시작했다.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의 공격을 무력화하려고 모든 시민들을 도성 안으로 피신시킨 뒤, 해군력을 이용해 적의 뒤통수를 치려고 했다. 그러나 한꺼번에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역병이 급속히 퍼졌고 수많은 사람이 속절없이 죽었다. 자충수였다. 그 와중에 페리클레스마저 역병을 맞아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오이디푸스 왕’이 공연되었을 때, 객석의 시민들은 전쟁 중에 지도자를 잃고 허탈하고 불안했음은 물론, 아테네를 휩쓴 전염병에 대부분이 부모, 형제, 친구를 잃은 처지에 놓였다. 무대 위의 비극은 먼 옛날의 전설이 아니라, 그때 그곳의 절망한 사람들을 위한 생생한 진혼곡이었던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자해하며 도시의 오염을 책임지려고 했던 것처럼, 관객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잘못을 돌아보며 무대 위의 오이디푸스와 함께 자책했다. 도시를 재건하고 개인의 일상을 회복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정화(katharsis)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에피다우로스 극장. 김헌 제공
에피다우로스 극장. 김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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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클레피오스 제전과 신전

디오니소스 극장 맨 위쪽 객석의 서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세로로 길게 늘어서 있던 건물의 흔적이 보인다. 세 개의 기둥에 얹힌 상인방(上引枋) 일부가 외롭게 복원되어 있고, 나머지는 토막 난 기둥의 밑동 몇 개와 주춧돌들의 직사각형 구획이 바닥에 남아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엔 특별한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폐허에는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있었다. 신전이 세워진 것은 기원전 419년께인데, 아테네에 역병이 돌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한번 돌기 시작한 역병은 좀처럼 물러가지 않았다. 아테네는 밖으로는 스파르타와 싸웠고, 안으로는 역병과 싸우는 이중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지친 아테네인들은 마침내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구원을 청했다. 그들은 병들어 고통받으며 사투를 벌이던 사람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일은 한갓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신비로운 현상이라 믿었던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은 뱀이 휘감긴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데, 그것은 지금도 세계보건기구(WHO)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서구인들의 무의식 속에는 그리스인들의 믿음이 살아 있는 셈이다.

아테네인들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우고 제사를 올렸다. 신을 기리는 성대한 축제도 벌였다. 아스클레피오스 제전은 디오니소스 제전의 개최 바로 전날에 열렸다. 시민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축제에 참여하여 개인적인 치료와 회복을 기도하고 공동체 전체의 위생과 건강을 기원하는 대규모 희생제를 개최했다. 신을 기쁘게 하는 노래와 악기연주 경연대회도 열었고, 씩씩한 청년들이 힘껏 기량을 겨루는 운동경기도 펼쳤다. 이 모든 행사가 신을 향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병마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고 회복을 기약하는 위로와 격려의 잔치였다. 신전 또한 병든 사람들을 일상으로부터 격리한 뒤, 회복을 위해 살뜰하게 돌보는 병원이었으며, 신의 사제들은 치료를 위한 의사요 간호사였다.

비극경연대회가 주축이던 디오니소스 제전이 아스클레피오스 제전에 잇달아 열린 것처럼,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은 디오니소스 극장 바로 옆에 건설되었다. 극장 옆에 병원이라. 이와 같은 조합을 제안한 사람은 바로 ‘오이디푸스 왕’의 작가였던 소포클레스였다. 그는 120여편의 비극을 창작한 시인일 뿐만 아니라, 아테네의 재무관을 역임하고 전쟁 중에는 군대 지휘관으로 활약했던,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아테네의 진정한 엘리트였다. 그는 인간의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야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비극을 통해 인간의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디오니소스 극장과 병들고 다친 몸을 치유하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함께 붙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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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다우로스의 문화적 의료복합단지?

소포클레스의 제안은 사실 그리스의 전통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아테네의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터에서 발견된 부조에는 신이 에피다우로스에서 아테네에 도착하자 신전 건축을 책임진 텔레마코스 아카르네아스가 신을 영접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영웅이었던 아스클레피오스가 처음으로 의술의 신으로서 숭배된 곳이 바로 에피다우로스였다. 고대 그리스의 병원 노릇을 하던 신전은 방방곡곡에 300여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원형이 거기에 있었다.

환자들이 신전을 방문하면 사제들은 먼저 그들의 몸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목욕을 마친 환자들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신전에 들어가 마음에 안정을 취하며 잠을 잤다. 잠을 자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에서 신을 만났고, 꿈에서 신을 만나지 못한 환자에게는 사제가 그 꿈을 신의 계시라고 말한 뒤, 꿈의 해석을 통해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내렸다. 환자들은 사제의 치료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사제의 치료는 인간적 판단이 아니라 꿈을 통해 내려진 신의 명령에 근거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믿음은 사제들의 의술에 효과를 배가시켰다. 환자들은 신전의 규율에 따라 엄격한 식사를 했다. 시간을 정해 운동을 했고, 극장에 가서 비극과 희극을 관람했으며 노래와 악기연주를 감상했다. 이 모든 치료 프로그램의 운영은 축제처럼 진행되었고, 이를 위해 신전 주변에는 목욕탕과 식당, 숙소, 그리고 운동을 위한 체육관과 스타디움, 공연을 위한 극장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병원은 그야말로 ‘힐링 프로그램’을 위한 문화적 의료복합단지였다. 번잡하고 구질구질한 일상을 떠나 이런 곳에서 평화롭게 며칠을 지낸다면 웬만한 병은 다 낫지 않겠는가.

지금은 폐허에 가까운 유적만 남은 그곳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치료를 위해 시간을 보내던 모습을 상상해보자. 코로나바이러스의 전 세계적인 전염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삼가 기대해본다.

김헌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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