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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친절한 인간이 살아남는다

등록 2021-02-26 09:50수정 2021-02-26 16:55

‘이기적 인간’이라는 신화…언론과 부정편향이 낳은 결과
“인간은 본성이 선하다기보다 좋은 측면을 강하게 선호한다”

휴먼카인드: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인플루엔셜·2만2000원

거대한 재난에서 인간은 선의를 발휘할 수 있다. 이 명제는 상식과 달라 보이지만 구체사례를 들여다보면 조금씩 납득하게 된다.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하며 도시를 마비시켰다. 언론은 도시 곳곳에서 성폭행과 총격 사건, 살인이 벌어졌다고 보도했지만 오보로 드러났다. 시민들은 구조대를 조직해 식량과 의복, 약품을 얻은 뒤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자원봉사자도 재난현장에 줄줄이 도착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때 한 학생은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줬다.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 끝내 빠져나오지 못한 교사도 있다. 저널리스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인간의 선함이 발휘된 여러 사례를 언급하며 ‘인간의 본성은 과연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휴먼카인드>는 과학적 증거에 근거해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인 관점으로 검토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섣부르게 성선설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이 책은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설교집이 아니다. 우리는 복잡한 존재”라며 “다만 우리는 우리의 좋은 면을 강하게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왜 이 세계는 여전히 폭력으로 넘쳐날까. 지은이가 짚은 원인 가운데 하나는 언론이다. 언론은 세상의 나쁜 면만을 주로 보도한다. 인간의 뇌도 ‘부정편향’이라는 인지적 오류를 범한다. 뇌는 부정적 사건에 더 민감하다. 지은이의 주장을 보면 인간의 폭력과 이기심은 어쩌면 본성이 아니라 후천적인 학습의 결과물일 수 있는 셈이다.

갑작스럽게 많은 눈이 내린 지난 1월1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한 시민이 거리 노숙인에게 자신의 외투와 장갑을 벗어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갑작스럽게 많은 눈이 내린 지난 1월1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한 시민이 거리 노숙인에게 자신의 외투와 장갑을 벗어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인간은 악한 존재라는 견고한 믿음을 만들어낸 실험들이 사실 조작됐다는 점도 폭로된다. 착한 사람들도 악하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실험으로 알려진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 한 예이다. 연구진은 평범한 대학생을 모아 교도관과 수감자로 나눈 뒤, 모의 감옥에 가뒀다. 수일이 지나자 교도관들은 고문하거나 성적 학대를 일삼았다. 그러나 지은이는 실험 연구자가 쓴 책에서 교도관 역할을 맡은 이들에게 각자가 맡을 역할을 설명하며 “피실험자의 개성을 제거하고, 두려움과 무력감을 심어줄 것”이라고 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평범한 사람도 악한 사람이 되도록 설계된 실험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경쟁을 지향하는 교육, 성과를 입증해야 살아남는 직장, 사회안전망이 없는 사회가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 어떤 인간이 생존할까. 고대 인류로 돌아가 보면 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만큼 지능도 높았고 체력은 더 좋았다. 그런데도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았다. 그 이유를 두고 지은이는 호모 사피엔스는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 빙하기를 더 잘 견뎠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실제로 호모 사피엔스의 외모는 멸종한 네안데르탈인보다 친근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진화해왔다고 한다. 친근한 외모로 진화한 인간을 지은이는 ‘호모 퍼피’라고 부른다. 인간은 식탁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소금을 달라고 요청하면 흔쾌히 무료로 소금을 건네준다. 재난 상황이 아닌 일상 속 인간에게도 선함의 근거는 남아 있다. 인류학자는 이런 선행 현상을 ‘일상적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인류가 기후위기와 같은 근원적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은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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