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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행복을 향한 욕망이 파멸로 이어질 때

등록 2021-06-11 04:59수정 2021-06-11 10:06

정유정 신작소설 ‘완전한 행복’

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은행나무·1만5800원

정유정이 돌아왔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 ‘악의 3부작’으로 악의 기원과 본질을 파고들었던 작가 정유정이 ‘욕망의 3부작’ 문을 여는 신작 <완전한 행복>으로 다시 독자를 찾아왔다. 전작 <진이, 지니> 이후 2년여 만이다.

<완전한 행복>에서 작가가 겨냥하는 것은 행복을 향한 욕망이다. 행복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본성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이 어떤 선을 넘어서면서 자신과 주변 인물들을 괴롭히고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작가는 원고지 2000매가 넘는 두툼한 분량에 담았다. 소설 주인공 신유나는 그 무엇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나르시시스트. 소설은 유나가 전 남편과 낳은 어린 딸 지유, 유나의 언니 재인, 역시 이혼남 출신으로 어린 아들 노아를 데리고 유나와 재혼한 차은호 세 사람의 시점을 번갈아 취해 가며 유나의 욕망이 분출하는 파괴적·악마적 힘을 그린다.
행복을 향한 맹목적 욕망이 지닌 파괴적 속성을 다룬 신작 소설 &lt;완전한 행복&gt;을 낸 작가 정유정. “소설의 주 무대인 반달늪은 모양이 반달이라서가 아니라 유나의 반쪽짜리 내면을 상징하는 장치”라고 소개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행복을 향한 맹목적 욕망이 지닌 파괴적 속성을 다룬 신작 소설 <완전한 행복>을 낸 작가 정유정. “소설의 주 무대인 반달늪은 모양이 반달이라서가 아니라 유나의 반쪽짜리 내면을 상징하는 장치”라고 소개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결혼을 앞두고 서로가 생각하는 결혼 생활과 행복의 조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유나가 은호에게 들려준 행복의 정의다. 행복이 뺄셈이라는 유나의 말에 앞서 행복은 덧셈이라는 은호의 정의가 있었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행복이 덧셈이냐 뺄셈이냐를 둘러싼 두 사람의 견해 차이는 사실 매우 심각한 세계관의 대립일 수도 있었지만, 사랑에 눈먼 은호는 자신의 행복관에 맞춰 노력할 수 있겠느냐는 유나의 질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긍정적인 대답을 하고 내처 맹세까지 하기에 이른다.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 가는, 뺄셈으로서의 행복관은 이 소설에서 유나가 저지르는 온갖 악행의 시발점이 된다. 2019년 5월 전 남편을 살해하고 주검을 토막내어 유기했으며, 비록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긴 했지만 의붓아들 역시 살해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신작 소설 &lt;완전한 행복&gt;을 낸 정유정 소설가가 8일 서울 마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신작 소설 <완전한 행복>을 낸 정유정 소설가가 8일 서울 마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9년 5월에 <진이, 지니>를 내고 홍보 일정을 소화하는 도중에 그 사건을 들었어요. 저한테는 전부터 쓰려고 했던 문학적 질문을 일깨우는 사건이었습니다. 행복이라면 사람들은 불행과 불안, 결핍이 없는 상태를 생각하고, 그런 부정적인 것들 역시 인생의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요. 무조건 행복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런 것들 역시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행복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난 작가는 “유나의 뒤틀린 자기애와 행복 관념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과정을 이번 소설에서 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고유정 사건이 소설 도입부의 설정에 도움을 주긴 했지만, 전체 이야기와 인물들의 관계 등은 실제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

“유나에게 한 번 ‘제 것’은 영원한 ‘제 것’이었다. ‘제 것’이 남의 손에 넘어가는 일은 용납하지 않는다. 차라리 없애버릴지언정.”

각각 재혼한 남편 은호와 언니 재인의 시점에서 서술된 두 인용문은 유나의 자기애가 지닌 위험성과 폭력성을 알려준다. 세상이 오로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남의 아픔이나 슬픔이야 어떻든간에 자기에게만은 아무런 결핍도 불행도 없어야 한다는 유나의 맹목적인 자기애는 방해물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유나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거짓과 폭력도 마다 않으며,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훼방을 놓는 이들을 오히려 제 쪽에서 이해하지 못한다.

“흡사 카드로 만든 집을 보는 것 같았다. 한 장만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질 거짓의 집. 궁금하기도 했다. 제가 한 거짓말을 다 기억하려면, 얼마나 머리가 좋아야 할까?”

유나의 악행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 소설 중후반부에서 재인은 유나가 쌓아 올린 거짓의 성채에 관해 이런 품평을 내놓는다. 그러나 유나의 성채를 이루는 재료는 거짓만이 아니라 무자비한 폭력이기도 했고, 소설이 좀 더 진행되면 재인 자신 그 폭력의 희생자가 될 운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인이 파악한 거짓과 그가 곧 당하게 될 폭력에 대해 유나 자신은 전혀 다른 설명을 제시한다. “나는 참 운이 없어. 아무리 잘해줘도 사람들은 나를 배신해. 심지어 아빠까지도.”

제가 보인 선의에 배신으로 대답하는 이들에 대한 정의의(!) 응징이 폭력과 살인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욕망 3부작’의 문을 여는 행복 욕망의 화신 유나는 작가의 앞선 작품들인 ‘악의 3부작’ 주인공들에 이어지는 악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정유정은 왜 이렇게 악인들에 관심이 많은 걸까. 그리고 독자가 악인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신작 소설 &lt;완전한 행복&gt;을 낸 정유정 소설가가 8일 서울 마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신작 소설 <완전한 행복>을 낸 정유정 소설가가 8일 서울 마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제가 악에 관해 쓰는 이유는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에요.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있고 나쁜 일들도 있잖아요? 인간 본성에 이런 나쁜 게 있다는 걸 알아야 우선 자기 자신부터라도 조심할 거 아니겠어요? 이런 일을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그래도 알고 있어야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소설을 읽으면서 대신 살아볼 수도 있겠구요.”

‘욕망 3부작’의 첫 작품으로 <완전한 행복>을 내놓은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는 소유의 욕망을 다룬 에스에프 소설을 예고했다.
신작 소설 &lt;완전한 행복&gt;을 낸 정유정 소설가가 8일 서울 마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신작 소설 <완전한 행복>을 낸 정유정 소설가가 8일 서울 마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8>에서 했던 생명의 평등성 얘기를 한 번 더 해 보려고 해요. 제 소설 중에서는 분량도 가장 길고 세계관도 가장 큰 소설이 될 것 같아요. 구상은 어느 정도 돼 있는데, 본격 에스에프가 될지 우화적이고 알레고리적인 소설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알 것 같구요. 코로나 덕택에 집에 틀어박혀 글만 쓰다 보니, 2년 뒤면 다음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웃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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