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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편견·무지와 싸우느라 외로웠죠?

등록 2021-06-11 05:00수정 2021-06-11 10:17

‘양극성 장애 생존기’이자 정신질환자를 위한 안내서
병 이해하고 받아들여 스스로 돌보는 구체 지침 담아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리단 지음/반비·1만8000원

몸이 아플 때 우리는, 증상이 어떤 질병과 관련 있는지 알아내고 효과적인 치료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짧은 시간에 극복하기 어려운 병이면 병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주변에 도움을 청한다. 요즘은 소셜미디어에 투병기를 올려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응원과 격려 속에 삶의 의지를 굳건히 다지는 이들도 많다.

반비 제공
반비 제공

그러나 마음이 아프면, 대개 증상을 숨기고 괜찮은 척한다. 몸이 아프면 환자지만 마음이 아픈 건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에 걸리면 그 병과 제대로 붙어보기도 전에 주변의 편견과 싸우고 자기 안의 벽부터 무너뜨려야 한다.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의 저자 라딘이 정신질환을 낮잡아 부르는 말인 ‘정신병’을 기어이 책 제목으로 소환한 것은 그래서다. 양극성장애를 앓는 저자는 “정신병자라는 멸칭이 더는 경멸의 뜻으로 들리지 않고 ‘그래 맞아, 나는 정신병자지’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 사람의 병자로서 병의 편견에 초연해진 상태에 다다랐다”고 본다. 적절한 치료와 돌봄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저자 역시 십대에 병증을 자각했으나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20대 초반 삽화(양극성장애에서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처럼 갑자기 특정 성향이 짧게 발현하는 일)를 경험하며 일상을 영위하는 데 점차 어려움을 느끼게 됐는데, 정신과 전문의에게 약을 처방받고도 상황이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병은 빠르게 악화되는데 진단과 처방이 이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자신의 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분투했다. 병의 원인도 증상도 예후도 감지할 수 없었다. 매순간 기분은 널뛰고 삶은 위태롭게 외줄을 타는데, 치료는 별 효과가 없고 방치하면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폐쇄병동 입원, 약물 과다복용, 자살시도 등을 겪으며 어디가 끝인지 모를 어두운 터널을 홀로 걸어온 저자가 이 책에서 친애하는 환우들에게 처음 건네는 말은 “그간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그래도 병원에 내원하셨다니 천만다행인 일입니다. 초기 진단은 자주 바뀌곤 하니 너무 마음에 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로 시작되는 2장 ‘처음 정신병이라는 세계에 발 딛는 당신에게’를 읽으면, 저자가 왜 그토록 힘든 와중에 이 책을 썼는지 단박에 이해가 된다. 친절하면서도 담담한 저자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정신병의 나라’가 홀로 견뎌야 하는 깜깜한 터널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미지의 신세계처럼 느껴진다.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니 낯섦은 어쩔 수 없지만, 먼저 탐험한 저자의 손을 잡고 한 발짝 내딛는 것은 덜 두려운 일일 것이다.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는 지금까지 양극성장애와 싸워 살아남은 저자의 생존기이자, 같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다. 자신의 병을 이해하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초진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의사와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약물과 관련해 환자가 알아둘 점과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등을 꼼꼼히 짚어준다. 질병에 일상을 완전히 점령당하는 일이 없게끔 생활리듬을 조절하는 방법, 직장과 학교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까지 담았으니 ‘정신질환자를 위한 자기계발서’라 해도 과장은 아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가족이나 친구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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