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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폼나게 빈둥거리는 삶

등록 2021-06-18 05:00수정 2021-06-18 09:57

산들바람 산들 분다: 어느 책벌레의 빈둥빈둥 산촌 이야기
최성각 지음/오월의봄·1만8000원

“나는 실패한 환경운동가, 거듭되는 시위와 생태 에세이 따위로 절대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한, 빼도 박도 못하는 비관론자다.”

소설가 최성각(사진)이 에세이 <산들바람 산들 분다>에서 자신을 가리켜 쓴 문장이다. 1990년대 초 서울 상계동 소각장 반대 싸움에 가담한 이래 ‘풀꽃세상을위한모임’이라는 환경단체를 만들어 이끌었고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생명평화운동 등을 벌이며 ‘환경운동 하는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던 그였다. 2003년 ‘풀꽃평화연구소’를 만들고 이듬해 강원도 춘천 외곽의 골짜기 툇골에 들어가 텃밭을 가꾸고 오리와 닭, 개와 고양이 등을 키우며 살고 있는 그는 이제 ‘산촌에서 빈둥거리는 책벌레’ 정도로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물러나고, 관두고, 피해버리고, 떠나버리고, 에둘러 돌고, 자신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게 내가 살아온 행적에 무슨 맞춤처럼 두루 해당되는 것 같아서…”

새롭게 터를 잡은 툇골(退谷)의 이름에서 지은이는 이런 느낌을 받고 그 품에 기꺼이 안긴다. 그의 툇골 이야기는 <달려라 냇물아> <날아라 새들아> 두 생태산문집과 생태소설 <거위, 맞다와 무답이> 같은 책들로 풀려 나온 바 있다. <산들바람 산들 분다>는 절판된 <달려라 냇물아>와 <날아라 새들아>에서 산촌 생활을 다룬 글들을 추리고, 새로 쓴 글들을 덧붙여 낸 책이다. 거위 맞다와 무답이, 철근이, 구리, 장닭 아무때나, 툇골의 원래 주인이었던 뱀들에 맞서고자 지은이가 직접 만든 창 척사툇골도, 다용도 트럭 배배꼽, 강아지 빼빼와 봉단이, 이웃집 앵두할머니와 앵두할아버지 등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짐승들과 물건들, 사람들의 이야기가 따뜻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처음에는 한심해 보이는 내 산촌살이가 도피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숭고한 선택이었으므로 경쟁과 속도와 효율이 숭배되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항거로 간주되기를 바랐다.”

‘들어가는 글’에서 최성각이 쓴 대로, 세상에서 밀려난 것처럼 보이는 그의 툇골 살이는 또 다른 형태의 운동이요 저항이기도 하다. “폼나게 잘 빈둥거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 느긋하게 노동하고 놀고 즐기는 그의 일상은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세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지만, 사람은 매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 (…) 우리가 사실 이 행성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이 책은 조곤조곤 알려준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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