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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오씨” “베씨” 손가락질 마음에는 ‘베를린 장벽’

등록 2006-06-08 22:27수정 2006-06-09 14:53

<b><통일독일을 말한다 3부작></b><br>김누리 등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br>
<b><대재앙, 통일></b><br>우베 뮐러 지음. 이봉기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통일독일을 말한다 3부작>
김누리 등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대재앙, 통일>
우베 뮐러 지음. 이봉기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라인강 기적‘은 활력 잃고 옛동독 실업률 15%
동독인 이등국민 전락에 ‘오스탤지어’ 향수
머릿속 장벽 없애려면 ‘접근 통한 변화’보다 ‘변화 통한 접근’ 해법
커버스토리/통일독일 16년… 타산지석 ‘통일 참고서’ 잇따라

1994년 세상을 뜬 문익환 목사는 생전에 “모든 통일은 선이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의 상징이라 할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통일을 얘기해도, 국회의원이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고 말해도 일쑤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던 시절이다. 그러니 문 목사의 “모든 통일은 선”이라는 외침은, 분단과 냉전의 장벽을 부수려는 선지자적 비유법이다.

2006년 6월, 다시 묻자. “모든 통일은 선인가?” ‘그렇다’라고 답하기 어렵다. 무력통일? 절대 안 된다. 흡수통일? 정부는 “그런 시도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거듭 밝히고 있고, 전문가들도 “피해야 할 재앙”이라고 지적한다.

그럼 어떤 통일? 정답을 적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분단 반세기 만의 첫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지 6년째에 접어든 지금,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구해온 ‘경제와 평화의 교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남과 북이 상생하는 좋은 통일’을 모색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평화’와 ‘통일’의 상관성 및 통일 추진의 속도를 두고도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 모색과 준비의 지평에서 우리는 어떤 선례를 참고할 수 있을까? 옛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국제정세 격변의 와중에 베를린장벽을 부수고 하나가 된 독일이 있다.

세상은 1990년 10월3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법적으로 흡수된 이후 독일을 ‘통일독일’이라고 부른다. 옛 동독지역은 이제 ‘통일독일’의 신연방주로 불린다. 그로부터 15년이 넘게 지났다.

그런데도 “독일은 통일되었는가?”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 질문이 정치적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우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적 통합, 무엇보다 ‘마음의 통일’로 불리는 사회문화적 통합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절박한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독일 통일 15돌을 기념해 독일에서 이뤄진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독일 사람 넷 가운데 한명이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지기를 바라고 있고, 옛 동독 출신의 85%가 스스로를 ‘이등국민’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돼 있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던 서독 경제는 통일 이후 활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많고, 옛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평균 15%대를 넘나들고 있다. 옛 서독사람들은 동독 출신을 게으른 ‘오씨’(Ossi)로, 동독 출신은 서독 사람들을 ‘베씨(Wessi)’라고 부른다. 오씨가 ‘가난하고 게으른 동독놈들’이라는 뜻이 담긴 ‘패배와 수치’의 상징이라면, 베씨는 ‘거만하고 역겨운 서독놈들’이라는 뜻의 ‘성공한 서독인’에 대한 빈정거림이다. 심각하다.


잘잘못을 조심스레 가려가며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독일의 사례는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의 장벽을 부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거대한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남북의 정치적 통합을 넘어선 상생하는 경제, 남과 북 사람들의 상생과 공존, 마음의 통일을 바란다면 더욱 그렇다.

‘통일독일’의 동서를 가르는 심각한 경제적 불균형과 심리적 균열의 원인과 치유책을 찾으려는 지적 고투의 결과물이 최근 두갈래의 저작으로 책방에 나왔다. 동·서독 사회문화 갈등의 양상과 원인을 파악하려는 노력의 성과인 ‘통일 독일을 말한다’ 3부작 <머릿속의 장벽> <변화를 통한 접근> <나의 통일이야기>(한울아카데미 펴냄)가 그것이다. 중앙대 한독문화연구소에서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독일 브레멘대학 독일문화연구소 등의 협조를 얻어 2003~2005년간 진행한 연구 성과물이다. 세권의 책은 순서대로 통일 이후 동·서독 사회문화 갈등과 관련한 연구 논문 묶음, 지식인·언론인·정치인 등 통일 주역 18명의 인터뷰, 동독 출신의 보통 사람들 35명의 포커스그룹 인터뷰 따위를 담고 있다.

통일주역과 보통사람 인터뷰

독일은 통일되었는가? 16년 전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옛 동독과 서독의 심리적 장벽은 여전하다. 남북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는 통일 독일의 선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진은 베를린 장벽의 조각을 소재로 한 운지커의 <합창>.
독일은 통일되었는가? 16년 전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옛 동독과 서독의 심리적 장벽은 여전하다. 남북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는 통일 독일의 선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진은 베를린 장벽의 조각을 소재로 한 운지커의 <합창>.
<대재앙, 통일>(문화세계사 펴냄)은 통일 이후 동·서독을 가르는 경제적 균열이 초래할 수도 있는 ‘대재앙’에 대한 묵시록적 경고가 담겨 있다. 제목은 선정적이지만, 경제적 균열을 직시하고 치유하지 않으면 통일의 환희는 절망과 수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진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전자가 ‘통일독일 15년’에서 바람직한 남북의(체제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화해협력과 통일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면, 독일 일간 <디 벨트> 우베 뮐러 기자가 쓴 후자는 ‘통일독일의 미래를 열어갈 경제적 기반 구축’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뮐러는 “경제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지탱할 경제적 기반이 없다면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1대1 화폐통합 동독 급속 몰락

통일독일의 불행의 씨앗인 흡수통일은 역설적이게도 통일의 최대 피해자가 돼버린 옛 동독 인민들의 자발적 동의 아래 이뤄졌다. 동독 인민들은 통일의 근거로 흡수통일을 규정한 서독 기본법23조와 ‘전체 독일을 위한 새로운 헌법이 의회에서 마련돼 결의돼야만 통일이 가능하다’고 규정한 서독 기본법 146조를 두고 정당 등 동·서독의 여러 세력이 쟁투를 벌일 때 투표권 행사(90년 3월 동독 인민의회 선거)로 흡수통일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 후과는 파괴적이다. 정치적 통합 이후 동독은 순식간에 괴멸했다. 동독인민들이 1990년 7월1일 이뤄진 동서독 화폐 1 대 1 통합에 따른 일시적 구매력 상승에 환호하는 사이, 동독기업들은 하룻밤 사이에 300% 평가절상된 화폐가치로 세계시장 경쟁속에 내던져졌다. 한두달 사이에 동독 제조업 생산이 48.1% 줄었다. 동독 인문사회과학 분야 학자들 가운데 80% 남짓이 자리를 빼았기는 등, 100만명의 동독 공직자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1990년 하반기에만 동독에서 13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당시 동독 지식인과 개혁운동가들은 “서독 마르크화는 동독을 서독에 병합시키려고 투입한 트로이목마”라고 경고했지만, 동독인민들은 외면했다.

독일은 90년부터 2005년까지 옛 동독지역의 경제를 옛 서독지역만큼 끌어올리려고 1조4천 유로(1750조원 남짓)를 쏟아부었다. 덕분에 독일연방정부의 재정은 휘청거리고 있지만, 옛 동독지역의 경제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옛 동독(인)의 고통은 ‘사회주의→자본주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통과해야 할 불가피한 아픔은 아니다. 옛 소련을 비롯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뒤인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여름철 실업률이 2.8%였던 반면 동독의 실업률은 90년 통일 이후 줄곧 15%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또 우베 묄러의 지적처럼 “내란이 일어난 발칸지역을 빼고 지난 15년간 주민, 특히 젊은이의 감소가, 비교가능한 유럽의 모든 지역에서 옛 동독지역처럼 현저하게 나타난 곳은 없다”.

“서독인들은 통일 이후 통일세를 내게 된 것 외에는 삶의 변화를 거의 겪지 않았다”는 지적이 아니더라도, 고통의 대부분은 ‘이등국민’으로 전락한 동독 출신에 쏠린다. 옛 동독에 대한 향수를 뜻하는 ‘오스탤지어’의 유령이 떠도는 이유다. 그러나 그 유령을 호명한 현실과 심리의 밑바닥은 어수선하다. ‘통일독일을 말한다’ 연구팀은 르네(18)와 라스(19) 같은 동독 출신 청소년들이 “자신들을 의식적으로 동독인이라고 생각하고, 서독으로부터 구분짓기 위해 경험하지도 않은 동독의 과거를 미화하며 동독신화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철창’이라 비난받던 동독의 역사는 신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연구팀은 인터뷰에 응한 동독 출신의 보통사람들에게서 “열등감과 자기방어적 공격성”을 발견하고, “옛날을 그리워하지만, 돌아가고 싶어하지는 않는” 모순적 태도를 본다.

그렇다면 통일독일의 문제는 ‘동독 문제’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서독인들에게는 팔꿈치(경쟁심)가 신체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반면, 동독인들에게는 심장(공동체적 정서)이 가장 중요한 신체기관”이라는 동독인들의 비유법이나, “어떻게 한 개인이 숲의 소유자가 되고 산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 아직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토르스텐(37)의 토로에 통일독일은 어떻게 답해야 하나?

남북한과 달리, 분단시대 동·서독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독인이 동독 친지를 방문할 수 있고, 동독인 대부분이 서독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할만도 했다. 그러나 독일 통일의 아버지 에곤 바는 통일독일의 사회문화적 갈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우리(서독인)가 동독인을 잘 몰랐다는 데 있다”고 토로했다. 동독 출신으로 98년부터 지난해까지 통일독일의 국회의장을 지낸 볼프강 티어제(현 국회부의장)는 이제 “동·서독(인)이 함께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이 재앙 아닌 선이 되려면

‘독일통일을 말한다’ 연구팀이, ‘머릿속의 장벽’을 없애려면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빌리 브란트와 에곤 바의 저 유명한 통일전략을 이제는 ‘(상호)변화를 통한 접근’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연구팀은 한국 사회에 경고한다. “오늘 동독 주민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된 이야기를 한반도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에게서 그대로 다시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두렵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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