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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농경사회 도구로 내 진로 예측할 수 있을까

등록 2020-06-06 13:52수정 2020-06-08 09:19

[토요판] 발랄한 명리학
1. 사주팔자와 직업의 연관성
서점에 나와 있는 명리학 책들. 한겨레 자료사진
서점에 나와 있는 명리학 책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주말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문화방송)를 보다 살짝 놀랐다. 이효리, 비, 유재석이 모여 혼성 댄스그룹의 추가 멤버로 누구를 섭외할지 머리를 맞댄 장면이었다. 이효리는 잘난 사람 갖다 놓는다고 다 잘되는 게 아니라며 “조화가 중요해. (나같이) 화(火), 불 같은 사람이 있으면, 물 같은 사람도 필요하고, 나무 같은 사람도 필요해”라고 말했다. 순간 이효리도 사주명리학 공부를 하는 걸까 나 혼자 궁금해했다. 나무·불·흙·쇠·물, 즉 ‘목화토금수’ 다섯가지 자연물의 조화를 논하는 명리학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주명리학 상담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한 지는 15년 정도 됐다. 해마다 올해 운수를 꼬박꼬박 상담받았다. 20대 때는 거리에 천막 치고 행인을 기다리는 상담가들을 만났다면, 안정적 소득이 생긴 30대 때는 학식이 있다는 분들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나중엔 누구한테 물어보아도 성에 차지 않아 책을 사서 읽고 공부해 왜 이런 해석이 나오는지 묻고 다녔다. 질문거리는 보통 내 진로에 관한 것이었다. 미래에 내가 무슨 일을 해서 먹고사는지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인생행로에 관해 조언을 얻는 상담 도구로 많은 이들이 사주명리학을 활용한다.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른 네개의 기둥과 여덟개의 글자(사주팔자)로 그 사람의 성격과 직업, 인간관계, 미래를 예측하는 명리학은 수천년 전 중국 농경사회에서 태동했다고 한다. 그 시절 사람들은 언제쯤 날씨가 풀리고 씨를 뿌릴지, 언제쯤 수확을 하고 곡식을 저장할지 농사짓는 데 기준이 되는 달력이 필요했다. 일종의 달력 역할을 하는 역학책들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때 24절기와 음양오행 글자들을 이용한 역학책 ‘만세력’이 나왔다. 지금의 사주상담은 이 만세력에 한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대입해 나온 글자들로 그가 인생에서 겪을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주에서 말하는 개념은 모두 농경사회에서 왔다. 만약 내가 공무원 시험에 붙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일반적으로 명리학 개념 중 십성의 ‘관성’을 활용해 풀이한다. 사주팔자에 관성을 갖고 있는지, 그 모양과 상태가 어떠한지를 보고 공무원이란 직업에 어울릴지를 추정하는 것이다. 관성은 자신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능력, 조직생활을 하는 역량 등을 나타낸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미래를 과연 농경사회에서 만들어진 도구로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까.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달 발간한 <한국직업사전>에 등재된 우리나라 직업 개수는 1만6891개다. 이 기관은 최근 우리나라 직업이 8년 만에 5236개가 늘었다는 발표자료를 냈다. 자신을 제어하고 통제하며 조직생활을 하는 직업은 공무원만이 아니다. 직장생활이라면 대체로 그렇다. 그래서 오늘날 사주상담가들은 관성이 발달한 사주를 보고 비단 공무원 팔자라고만 해석하지 않는다. 관성이 발달하면 대기업 등 두루 직장생활에서 성취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사주상담가를 찾아갈 때마다 내가 기자가 될 수 있는 팔자인지를 10여년간 물어왔다. 취업준비생 때 언론사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과연 제가 기자가 될 수 있을까요’를 물었다. 그 시절 내가 들은 진로 조언은 대략 이렇다. ‘책을 많이 보고 평생 공부한다’, ‘많이 돌아다니는 일을 하게 될 것’, ‘조직에 붙어 있어야 한다’, ‘사업은 물론이고 장사도 못할 팔자’ 정도다. 결정적으로 당신이 기자가 된다 못 된다, 야속하게도 사주상담은 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기자란 직업의 속성과 어느 정도 비슷한 설명을 해줬을 뿐이다. 농경사회에선 신문사도 없었고 기자란 직업도 없었을 테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 커뮤니티에 가면 자신이 공무원 시험에 붙을 사주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답은 이효리의 말 속에 있다. 어느 집단이나 여러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떤 직업군에 특정한 사주팔자를 가진 사람들만 있을 리 없다. 내 사주 생김새대로만 현실이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고로 인간의 자유의지보다 사주팔자가 힘이 셀 수 있을까. 내 운명의 주인은 네개의 기둥과 여덟개의 글자가 아니라 그저 ‘나’다.

봄날원숭이

※이 연재는 현대인들이 상담과 치유의 도구로 활용하는 명리학에 대해 살펴본다. 지금은 소외받는 학문으로 머물러 있지만 수천년간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로 명리학이 사랑받아 온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명리학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명리학 상담으로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은 알 수 없는지 필자의 경험담과 함께 탐구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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