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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여적여’ 프레임 속에 가둬버린 실력파 화가들

등록 2020-06-06 13:52수정 2020-09-02 18:49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36. ‘마담 아델라이드의 초상’과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이들’

“누가 더 예쁘냐” 묻는 ‘거울’처럼
여성 갈등과 분란 조장한 미술계

화가 둘만의 경쟁 속에 고립시켜
흥미로운 볼거리나 희생양 삼아

작품 그 자체로 널리 평가하고
그들만의 대립각은 이제 그만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백설 공주>는 무서운 동화였다. 계모는 원래 의붓딸을 저렇게 싫어하는가 보다, 우리 엄마도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마법 거울’을 원망하기도 했다. “왜 계모 왕비를 화나게 만들지? 그냥 다 예쁘다고 말하면 되는데!”

어린 딸에게 <백설 공주>를 읽어주는 엄마가 된 이제는 알겠다. 마법 거울의 목소리는 ‘가부장의 목소리’인 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판정하는 사람은 남성이며, 이 목소리가 여성들 사이에 분란과 갈등을 만든다는 것을. 18세기 프랑스 왕실에서 활동했던 두 여성 화가, 엘리자베트 루이즈 비제 르브룅(1755~1842)과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1749~1803) 사이에도 이 ‘마법 거울’이 있었다. ‘저 여자가 좀 더 예쁘고 잘 그리는 것 같은데?’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마법 거울’로 인해, 그들 사이는 어떻게 벌어지게 됐을까.

두 여성 화가 이간질에 외모 비교까지

비제 르브룅은 뛰어난 감각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소싯적부터 최상층 귀족들의 초상화 주문을 도맡았던 인기 화가였다. 그의 소문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귀에까지 흘러 들어간 건 자연스러웠던 일. 결국 그는 왕비의 공식 초상화가로 임명되었다. 비슷한 시기 라비유기아르의 이름도 미술계에 회자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파스텔, 유화, 조각을 개인 교습 받아 탄탄한 기본기를 자랑하는 화가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화가 모두 실력만큼 활동 보폭이 넓진 않았다. 당시 화단은 프랑스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가 중심이었는데, 왕립아카데미는 여성을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두 화가는 한동안 왕립아카데미보다는 권위가 떨어지는 생뤼크아카데미에서 활동했다. 그들은 아마도 서로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다. 보기 드문 여성 화가, 그것도 비슷한 나이대의 초상화가이다 보니 그들은 늘 함께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친하지 않았다. 여성 화가로서의 애환을 나누며 연대와 친분을 다질 시간도 기회도 여유도 없었다. 일단 이들은 남성 화가가 그림을 대신 그려주었다는 악소문에 시달렸다. 비제 르브룅은 같은 건물에 사는 화가 프랑수아기욤 메나조가 그려줬다고, 라비유기아르는 친구이자 스승인 프랑수아앙드레 뱅상이 고쳐줬다고 의심을 받았다. 이 근거 없는 비방을 겨우 가라앉힌 뒤에도 이들은 자신들을 이간질하는 입방아 때문에 편안한 날이 없었다.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한 사람이 좋은 비평을 받으면 다른 한 사람은 비교의 희생물이 되었다. 외모 비교 평가 또한 호사가들의 좋은 안줏거리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갖기 어려웠다. 그러던 두 사람은 1783년 5월31일, 공식적으로 적대적 관계가 되었다. 비제 르브룅과 라비유기아르가 동시에 왕립아카데미 회원이 된 것이다.

당시 비제 르브룅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자신의 화가가 최고 권위의 왕립아카데미에 들어가길 원했던 왕비는 “왕립아카데미가 비제 르브룅의 전문성을 놓치고 있다”고 주장했고, 결국 아카데미는 왕비의 힘에 굴복해야 했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았다. 비제 르브룅의 라이벌 라비유기아르를 동시에 회원으로 받으며 자신들의 불편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반대하는 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들의 화가로 라비유기아르를 발탁했다. 정치가 두 여성 화가의 라이벌 관계를 입맛에 맞게 활용한 것이다. 당시 프랑스 귀족은 루이 16세 부부 지지파, 그에 대립하는 왕의 고모들(루이 15세의 딸)의 친위대로 또렷이 분열되어 있었다. 특히 넷째 고모 마담 아델라이드는 유난히 정치적 야심이 큰 인물이었다. 1787년 라비유기아르가 그린 <마담 아델라이드의 초상>도 그런 갈등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1787년 ‘살롱전’에 출품된 <마담 아델라이드의 초상>은 55살의 아델라이드가 기품있는 드레스를 차려입고 서 있는 그림이다. 아델라이드는 둥근 캔버스에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마리아 레슈친스카 왕비), 오빠(루이 16세의 아버지인 루이 페르디낭)의 옆모습을 그린 뒤, 정면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집오기 전, 이들이 있던 프랑스야말로 영광의 시대가 아니었느냐고 웅변하는 듯하다. 매우 ‘정치적인’ 그림이다. 한편 살롱전에는 비제 르브룅의 그림도 걸렸다. 그것도 마담 아델라이드의 정적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였다. 비제 르브룅이 그린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이들>은 기존 왕실 초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왕비의 가정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왕비는 간소한 의상을 입고 자녀들에게 둘러싸인 채 앉아 있는 ‘자상한 어머니’로 그려졌다. 이 그림 역시 평판이 바닥이었던 왕비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정치 선전화’였다.

둘만의 경쟁, 화가 경력엔 ‘무이득’

두 그림은 즉각 화제가 되었다. 당시 살롱 전시회장을 묘사한 마르티니와 람베르크의 합작 동판화를 보면, 두 여성 화가의 그림은 경쟁하듯 한 그림 건너 나란히 붙어 있다. 크기마저 같아 누가 봐도 두 작품을 견줘보라는 구도다. 이처럼 비제 르브룅과 라비유기아르는 그들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의도했든 아니든 공공연한 라이벌 관계가 되었다. 과연 이런 경쟁 구도가 그들의 화가 경력에 이득이 됐을까?

피에트로 안토니오 마르티니, 요한 하인리히 람베르크, &lt;1787년 살롱 뒤 루브르 전시회&gt;, 1787년, 동판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피에트로 안토니오 마르티니, 요한 하인리히 람베르크, <1787년 살롱 뒤 루브르 전시회>, 1787년, 동판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오히려 두 화가는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기보다는 둘만의 경쟁 관계 속에 고립되어 소진되어갔다. 또 그 과정에서 두 여성 화가의 작품을 동시대 남성 화가의 작품과 비교해 평가받을 기회도 날아갔다. 남성 동료들은 두 여성 간의 긴장을 부추기며 그들의 활동을 견제했다.​ 두 여성 화가가 갈등하는 모습은 남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볼거리, ‘팝콘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혀를 끌끌 차지 않았을까. 두 여성 화가가 서로 적이 되도록 조장한 것이 남성 중심의 미술계였음에도 말이다.

물론 ‘여자니깐 당연히 여자끼리 친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것은 여성들의 불균질함을 인정하지 않는 말이다. 여성들 각자에겐 다양한 욕구가 있고 그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여성끼리 충돌할 수 있다. 남성들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남성에게는 ‘남자의 적은 남자’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마법 거울’이 없다는 게 중요하다. ‘마법 거울’은 여성들 사이에만 숨어들어 가부장제 속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여자끼리 경쟁’하라고 부추겨왔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연대하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고립돼 재능을 낭비해야 했다. 이제 여성들은 벽에 걸린 거울에게 질문하는 걸 그만둬야 할 것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여자의 적이기 때문이다. 비제 르브룅과 라비유기아르가 몸소 증명하지 않았던가.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다. ‘여자 사람’으로서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던 것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본다. 아울러 미술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을 호출해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sempre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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