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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나는 몰라, 애들도 없는데 배추꽃이 피어부렀네

등록 2021-01-16 14:21수정 2021-01-16 17:40

[토요판] 마을살이
쑥국샘의 사람꽃밭 (상)

반 아이들과 어린이시집 발간
5년 전부터 시 창작 ‘시똥누기’

화단 가꾸고 식물·곤충 보면서
아이들 시쓰기 실력 부쩍 늘어

시 쓰면서 싸움도 좀 줄었냐고?
그건 아니지만 조금 더 웃었지

코로나 탓 자주 못 봐 아쉬워
그만큼 더욱 사랑하고 고마워
지난 12일 오전, 군산푸른솔초등학교 2학년 4반 어린이들이 자신들이 쓴 시를 엮은 어린이시집 <감꽃을 먹었다>를 들고 있다. 송숙 제공
지난 12일 오전, 군산푸른솔초등학교 2학년 4반 어린이들이 자신들이 쓴 시를 엮은 어린이시집 <감꽃을 먹었다>를 들고 있다. 송숙 제공

2014년 3월, 나는 예정에 없던 휴직을 했다. 그해 학교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고,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학급을 꾸려야 했다. 그런데 잘할 자신이 없었다. 힘이 바닥났다고 생각했다. 연달아 맡았던 부장과 학교폭력 업무에 심신이 방전되었던 탓이었다. 2년간의 휴직 기간 동안 야생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시인들을 알게 되면서 관심 밖이었던 시도 조금씩 접하게 되었다.

‘시똥누기’를 시작하다

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학교는 군산푸른솔초등학교, 내가 맡은 학년은 4학년이었다. 좋은 학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만만치 않은 아이들을 만났구나라는 걸 알아채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 반 남학생들은 그야말로 하루도 조용히 넘어갈 날이 없었다. 부족한 친구를 괴롭히고, 서로 싸우다 쌍코피가 터지고,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말꼬리를 잡고. 새 학교에 적응하랴, 30명 아이들과 씨름하랴, 일주일이 지나자 나는 녹초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지쳐 퇴근하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칠판에 동시를 한 편 적어놓게 된다. 마침 지인이 보내주신 동시집이 내 책상에 꽂혀 있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 시집이 없었다면 시를 적어놓을 생각을 못했을 것이니 생각할수록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어쨌든 나는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하루가 순탄하게 지나기를 바랐다. 그땐 그 생각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침마다 함께 시를 읽고 간단한 느낌을 나눈 후 수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까? 개구쟁이 성민이가 일기장에 시를 써 왔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시 일기을 써 본다’(맞춤법은 바로잡지 않았다)라는 말과 함께. 시 제목이 ‘학교’였다. 학교 쉬는 시간의 분주함이 잘 느껴지는 시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시를 들려준다고 해서 아이들이 시를 써 오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너무 놀랍고 기뻐서 친구들 앞에서 마구마구 칭찬해줬다. 그러자 하나둘 일기장에 시를 써 오기 시작했고 시를 쓰는 일은 반 전체로 자연스럽게 번지게 되었다. 내가 한 일은 아이의 반짝이는 표현에, 번뜩이는 생각에 감탄해주고 칭찬해주고, 열심히 시를 들려주는 일이었다. 

2017년&nbsp;어느&nbsp;날&nbsp;초가을.&nbsp;아이들이&nbsp;배추가&nbsp;잘&nbsp;자라길&nbsp;바라며&nbsp;리코더를&nbsp;불어주고&nbsp;있다.&nbsp;송숙&nbsp;제공&nbsp;&nbsp;
2017년 어느 날 초가을. 아이들이 배추가 잘 자라길 바라며 리코더를 불어주고 있다. 송숙 제공  

6월 하순이 지나자 아이들의 글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소중한 글들을 흘려보내기 아쉬웠던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제대로 된 시집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2학기부터 일주일에 한번 정식으로 시를 쓰는 시간을 가졌는데 우리는 그 시간을 ‘시똥누기’ 시간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똥을 누지 않으면 건강하게 살 수 없듯이 시도 똥을 누듯 그렇게 쓰자는 의미였다. 교실에서도 누고 운동장에 나가서도 누고 남은 시간에는 신나게 놀았다.

그렇게 첫 어린이시집 <시똥누기>가 나왔다. 출판해줄 곳이 없어 펀딩을 통해 출판비를 마련했다. 교실에서 부모님들과 지인들을 모시고 조촐하게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시 낭송, 장기자랑, 축하 공연 등이 이어졌다. 시를 쓰게 되면서 싸움도 좀 줄었냐고? 아니, 출판기념회 당일까지 싸운 친구들도 있었다. 하하하. 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는 이 시간들을 통해 서로를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웃어줄 수 있었다는 것을.

화단과 함께하는 아이들

2017년, 4학년 교실은 작은 베란다가 딸린 특이한 교실이었다.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화단을 만들기로 했다. 세상에, 내가 뭔가를 기를 생각을 하다니! 나는 지금까지 집에서도 꽃 한번 길러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해보고 싶었다. 뭔지 모를 용기가 솟았다.

그 후로 만난 3학년과 2학년 아이들과도 학교의 빈 공간을 활용해 화단을 가꾸었는데, 화단을 가꾸면서 학교생활이 더없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흙을 나르고,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풀을 뽑으며 노동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젓가락을 들고 시간 날 때마다 배추벌레를 잡고, 배추와 무, 호박과 가지로 전을 만들어 먹고, 우리가 기른 오이가 마트에서 파는 오이보다 몇 배는 맛있다며 환호하기도 했다. 작두콩을 수확해 차로 끓여 마시고, 수세미를 따서 천연 수세미를 만든 날엔 집에서 직접 설거지도 했다. 참깨를 수확해 달달달 볶아 점심시간에 나온 볶음밥에 솔솔 뿌려 먹기도 했다.

빨간 고무논에 모를 심고 가꾸면서 논에는 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풍년새우, 물달개비, 쇠뜨기말, 피, 소금쟁이, 우렁이, 올챙이 등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낫으로 벼를 베어 말려 일일이 손으로 떼어내 쌀튀밥을 해 먹기도 했다.

꽃을 이용해 여러 가지 놀이도 하였다. 분꽃으로 귀걸이를 만들어 귀에 걸고, 샐비어 꽃꿀을 먹고(아이들의 귀한 간식이었다), 봉숭아 꽃물을 들이고, 코스모스 잎으론 손톱을 꾸미고 놀았다. 해바라기 긴 줄기로 림보 놀이를 하고, 바랭이로는 우산을 만들고, 접시꽃잎을 코에, 이마에, 볼에 붙이고 서로 우습다고 깔깔대기도 했다. 옥수수수염이 길게 자라면 머리처럼 땋았고, 질경이를 꽃처럼 화분에 심어 기른 후엔 질경이 꽃대로 질경이 씨름도 했다.

2019년&nbsp;여름,&nbsp;분꽃&nbsp;귀걸이를&nbsp;하고&nbsp;노는&nbsp;아이들.&nbsp;송숙&nbsp;제공&nbsp;
2019년 여름, 분꽃 귀걸이를 하고 노는 아이들. 송숙 제공 

식물을 기르자 곤충들도 선물처럼 찾아왔다. 무당벌레, 풀잠자리, 꽃등에, 실잠자리, 털두꺼비하늘소, 각종 노린재와 크고 두툼한 주홍박각시나방 애벌레까지. 우리는 무당벌레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나고 번데기가 되어 반짝이는 어른 무당벌레가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풀잠자리가 낳은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나고, 애벌레가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서 어른 풀잠자리가 되어 나오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풀잠자리도 무당벌레처럼 진딧물을 잡아먹는 고마운 곤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야생화를 찍던 사진기로는 아이들을 찍었다. 화단의 식물과 곤충도 찍었다. 아이들은 <시똥누기> 선배님들의 시도 읽고 어른들이 쓴 동시도 읽으면서 자신들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린이시집 <분꽃 귀걸이>와 <호박꽃 오리>, <질경이 씨름>을 냈다.

코로나로 아이들을 보지 못하다

2020년 3월23일. 화단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내뱉은 말은 “아이고, 나는 몰라… ㅠ 애들도 없는데 배추꽃이 피어부렀네~~ㅠ”였다. 작년 가을에 아이들과 화분에 심었던 배추, 올해 만날 2학년 아이들에게 꽃을 보여주려고 뽑지 않고 두었던 배추들이 일제히 노란 꽃을 피웠다. 그런데 보아줄 아이들이 없다. 연보랏빛 무꽃도 아이들 얼굴을 보지 못하고 화르르 피었다 졌다.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자꾸 미뤄지자 3월18일부터 나는 아이들과 전화로 인사를 나누었다. 학급 밴드를 만들어 각자의 사진을 올리며 자기소개도 했다. 우리 반에는 ‘시똥화단’이라고 불리는 화단이 있다는 것과 그곳에서 배추꽃과 무꽃이 얼마나 예쁘게 피었는지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을 들려주며 자주감자, 흰 감자를 심었다는 이야기와 감자꽃이 필 무렵엔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학교에 나오면 함께 화단을 가꾸고 곤충도 관찰하고 하루 한 편씩 재미있는 시를 읽고 시도 쓸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4월 한 달간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학급밴드에 시를 올려주었다.

코로나 확산세가 꺾이지 않아 등교 개학이 어려워지자 4월20일에 온라인 개학을 하였고 드디어 5월27일 우리는 만났다. 아침 시간에는 주로 아이들과 화단에 가서 물도 주고 이야기도 하다가 1교시를 시작하는데, 코로나는 나를 복도에서 체온계를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게 했다.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말이 없고 목소리가 작은 아이들은 목소리 한번 듣기가 어려웠고, 아이들이 손을 들지 않고 말을 하면 누가 말하는 건지, 누가 나를 부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조금만 말을 해도 숨이 턱턱 막혔다. 마스크가 자꾸 내려가는 아이들에겐 올려 쓰라고 계속 잔소리도 해야 했다. 제일 우습고 서글펐던 건 마스크를 쓰고 노래하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지금은 이렇게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시간. 등교 개학 첫날, 우리는 첫 ‘시똥누기’를 하였다.

학교를 처음 오는 듯이 설렜다/ 교실의 드러섰는데 /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1학년이 아니라 2학년이라니/ 꿈만 같다 (심태은, 2학년 첫날)

학교에 왔다/ 나는 2학년이다/ 교실에 들어왔다/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신발장을 못 찾아서/ 신발장이 어디인지 알려주었다/ 기쁘다 (박지민, 학교 온 날)

2020년 수박 수확. 송숙 제공
2020년 수박 수확. 송숙 제공

두 달간 매일 등교하여 수업을 하던 우리는 2주 남짓한 짧은 여름방학을 마치고 다시 만났다. 하지만 채 일주일도 못 되어 온라인 수업과 주2회 등교수업 병행으로 전환되었다. 코로나 2차 유행이 시작되었던 탓이다. 10월19일 다시 전면 등교수업을 하였으나 한 달 뒤 또다시 3차 유행이 시작되어 2학년을 마치는 1월12일까지 온라인 수업과 주2회 등교수업을 병행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만나면 벌써 12월 초, 벌써 12월 중순, 벌써 12월 말, 시간이 빨리도 흘렀다. 아이들을 얼마 보지도 못하고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만나지 못하는 날엔 언제나 밴드에 시를 올려주었고,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열심히 시를 썼다. 그렇게 해서 어린이시집 <감꽃을 먹었다>를 엮었다.

선생님이 감꽃을 주워왔다/ 선생님이 친구들한테/ 먹어도 된다고 하자/ 나도 먹고 싶어서/ 먹을러고 하는데/ 아름다워서 못 먹겠다 (강선우, 감꽃)

우산은 비가 올 때 엄마 같다/ 몸을 활짝 열고 날 안아준다/ 난 우산의 손을 꼭 잡는다 (이성훈, 우산)

입학식 못한 1학년들이/ 불쌍하다/ 졸업식 못한 6학년 언니 오빠들이/ 불쌍하다/ 학교 며칠 못 간 나도/ 불쌍하다/ 우리 함께 불쌍한 걸/ 나누자! (이지유, 불쌍하다)

헤아려보니 올해 아이들을 매일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은 딱 석 달, 그 외에는 온라인 수업과 주2회 등교수업을 병행한 날들이었다. 학교에 오면 미뤄두었던 활동들을 하느라 늘 쫓기듯 보낸 날들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간식으로 까마중을 따먹고, 감자와 옥수수를 수확하여 맛있게 삶아 먹고, 맛있을까 기대하고 땄던 수박과 참외가 너무나 ‘맹맛’이어서 놀라고, 화분에서도 잘 자랄까? 시험 삼아 조금 심어본 땅콩이 줄줄이 나와 놀라던 날도 있었다. 짧은 만남의 시간이었지만 ‘시똥누기’를 통해 서로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도 있었다. 더 이해하니 그만큼 더 사랑할 수도 있었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날들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모든 게 감사하다.

▶ 작은 마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필자 송숙은 군산푸른솔초등학교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별명은 쑥국 선생님. 반 아이들이 1년 동안 쓴 시들을 엮어 어린이시집 <시똥누기>, <분꽃 귀걸이>, <호박꽃 오리>, <질경이 씨름>, <감꽃을 먹었다>를 냈으며 화단을 가꾸며 생겨난 유쾌 발랄하고 뭉클한 이야기들을 모아 <맨드라미 프로포즈>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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