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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버전 ‘위키드’가 전합니다…“구별짓기는 어리석다”고

등록 2021-02-26 04:59수정 2021-02-26 07:34

코로나 이후 ‘나도 차별의 대상 될 수 있다’ 분위기
피부색 다르단 이유로 외면받는 엘파바 얘기 통해
‘나와 남을 구분짓는 행위 어리석다’ 메시지 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여전히 계류 중인 사회에 교훈
뮤지컬 <위키드>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엘파바의 이야기다. 초록 마녀를 등장시킨 아기자기한 구성이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위키드>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엘파바의 이야기다. 초록 마녀를 등장시킨 아기자기한 구성이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에스앤코 제공

“어머! 샤인머스캣이 열받았나 보다 깔깔깔!”

같은 반 친구들이 엘파바를 놀린다. 2013~2014 국내 라이선스 초연과 2016년 재연 때는 샤인머스캣 대신 “브로콜리”라고 불렀다. 엘파바 피부가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엘파바는 엄마의 불륜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아빠의 사랑을 못 받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동생을 돌보는 게 일이었다. 그래도 밝고 씩씩했다.

지난 16일 시작해 오는 5월1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위키드> 이야기다. 엘파바는 단지 피부색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당했고, 사람들에 떠밀려 무서운 ‘초록 마녀’로 불렸다. 아이들도 좋아하는 아기자기한 구성이지만, 그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초연 이후 8년. 2021년 다시 보는 <위키드>는 우리에게 어떤 감흥을 안길까?

그사이 차별 금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훨씬 높아졌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5%가 차별 금지 법률 제정에 찬성했다. 2019년 3월 같은 질문에 72.9%가 찬성했던 것에 견줘 1년 새 찬성 비중이 15.6%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앞서 2007년, 2010년, 2012년 세차례에 걸쳐 차별금지법 국회 통과가 무위에 그쳤고, 지난해 발의된 법안마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점을 고려하면 2021년 <위키드>가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고 특별하다.

에스앤코 제공
에스앤코 제공

사람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나도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위키드>는 일상 속 작은 깨달음을 얻은 우리에게 ‘이제 나와 남을 구분 짓는 행위는 어리석다’고 말한다. 친구들은 엘파바의 피부색이 다르다고 같은 방을 쓰려 하지 않는다. 교실에서도 멀리하고 복도에서도 그를 피해 돌아간다. 하지만 엘파바는 그들 역시 친구로 만들 정도로 건강하다. 학교 파티 날 글린다가 자신을 조롱하려고 준 괴상한 모자를 쓰고도 자신 있게 춤을 춘다. 그런 글린다의 마음을 사로잡고 둘은 친구가 된다. 엘파바를 사랑하게 된 피에로는 말한다. “친구를 다른 눈으로 보라고.”

<위키드>는 동물 교수를 내세워 지구가 인간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생각도 비튼다. 딜라몬드 교수는 말하는 염소다. 그는 차별과 배척을 받아 서서히 말하는 능력을 잃고 결국 구속된다. 엘파바를 연기하는 옥주현은 “딜라몬드 교수는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자, 선을 추구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가 말을 잃어가는 모습에서 그런 존재가 말살당하는 세상의 불합리함을 보여준다. 그를 돕는 엘파바는 선택과 책임에 대한 깊이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말하는 뮤지컬 &lt;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gt;. 피엘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말하는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 피엘엔터테인먼트 제공

딜라몬드 교수는 말한다. “예전 이 학교에는 방정식을 푸는 표범이 있었고, 철학을 논하던 흑염소도 있었다. 무엇이 사라졌는지 모르겠나요? 우리의 오즈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은 다채로움(다양성)입니다.”

차별, 편견을 깨라고 말하는 작품은 또 있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노래하는 창작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예술의전당·28일까지)이다. 2019년 초연 이후 올해 세번째 시즌을 맞은 이 작품은 평민의 역모가 겁나 양반에게만 시조를 허용한 가상의 나라 조선이 배경이다. ‘골빈당’이 신분을 차별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에 당당히 맞서는 과정이 통쾌하다. 힙합과 현대무용, 팝핀 등 고난도 댄스와 국악, 레게, 록 등 다양한 음악이 흐른다. 이들은 외친다. “모두가 주인이고 모두가 국민인 시대가 오기를!” 이미 그런 시대는 왔건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한다. 직업에 따라, 재력에 따라 누가 누구의 위, 아래에 서 있는 건 왜일까?

이미 종영했지만 우리의 편견을 깨준 건강한 작품도 있다. 입양아를 불쌍하다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말하는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1월31일 종영)는 공연 내내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좋은 평가를 받은 어린이 뮤지컬 <슈퍼맨처럼>은 척수마비 장애를 가진 정호와 정호의 동생 유나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태민을 만나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장애를 장애로 그리지 않는 건강한 작품으로 학전에서 만들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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