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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찻잔 ‘목엽천목’ 혼자 보기 아까워 후원모임 꾸렸어요”

등록 2022-05-12 19:36수정 2022-05-12 20:22

장성 ‘초보 도공’ 김종태씨 ‘재현’ 성공
“3년간 치아 다 빠지도록 홀로 도전”
치과원장 등 애호가들 십시일반 지원
“송나라 때부터 명품 꼽혀 일본 국보로”
지난 2월 서울 광진구에 있는 치과병원에서 임플란트 시술을 받고 있는 김종태(왼쪽)씨가 자신이 빚은 ‘목엽천목’ 찻잔을 신길호(오른쪽) 원장에게 보여주고 있다. 뒷편으로 신 원장이 평소 취미로 연주하는 악기와 후원하고 있는 예술인들의 작품이 보인다. 김경애 기자
지난 2월 서울 광진구에 있는 치과병원에서 임플란트 시술을 받고 있는 김종태(왼쪽)씨가 자신이 빚은 ‘목엽천목’ 찻잔을 신길호(오른쪽) 원장에게 보여주고 있다. 뒷편으로 신 원장이 평소 취미로 연주하는 악기와 후원하고 있는 예술인들의 작품이 보인다. 김경애 기자

목엽천목은 중국의 당·송 시대 절강성 항주의 천목산에서 수행하던 고승들이 만들어 쓰던 찻잔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해요. 성형한 다기에 검은 유약을 바르고 뽕잎 같은 마른 나뭇잎을 올려놓은 뒤 1300도 고온에서 구워 그 무늬가 고스란히 남아야 하므로 성공률이 매우 낮아요.”

전남 장성에 사는 초보 도공 김종태(56])씨가 ‘가장 어렵고 희귀한 다기’로 꼽히는 목엽천목 재현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자 이웃에 사는 예술 애호가들이 후원모임을 꾸려 지원하고 나섰다.

“연초에 새해 인사도 할 겸 들렸다면서 새까만 다기 한 점을 내밀었어요. 겨울 농한기에 재미 삼아 구워봤는데 3년 만에 처음으로 성공했다면서요. 특이하고 신기한 게 ‘목엽천목’이라고 하더라고요. 말로는 심심해서 해봤다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치아가 삭고 빠져서 제대로 된 게 거의 없더군요. 심지어 집도 없이 비닐하우스 움막에서 작은 전기가마로 작업하고 있었어요.”

장성 축령산 휴양림 인근에 있는 휴림펜션 변동해 원장은 11일 그날부터 김씨의 후원회장을 자처하고 나선 까닭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우선 지인 10여명과 함께 100만~300만원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인근 고창의 문수사 입구 마을창고를 빌려 따뜻하고 안정된 작업장을 마련해줬다. 이어 펜션을 다녀갔던 서울의 치과의사 신길호 원장이 평소 예술인 후원을 해왔다는 얘기를 떠올린 그는 무작정 도움을 청했고, 신 원장도 흔쾌히 호응했다.

전남 장성과 전북 고창의 경계에 있는 문수사 입구 마을창고에 마련한 작업장에서 지난 3월 김종태씨가 목엽천목 찻잔을 빚고 있다. 김경애 기자
전남 장성과 전북 고창의 경계에 있는 문수사 입구 마을창고에 마련한 작업장에서 지난 3월 김종태씨가 목엽천목 찻잔을 빚고 있다. 김경애 기자

김종태(오른쪽)씨와 후원회장 변동해(오른쪽) 원장이 지난 3월 작업자에서 목엽천목 찻잔의 푸조나무 잎사귀를 살펴보고 있다. 김경애 기자
김종태(오른쪽)씨와 후원회장 변동해(오른쪽) 원장이 지난 3월 작업자에서 목엽천목 찻잔의 푸조나무 잎사귀를 살펴보고 있다. 김경애 기자

“건강하던 사람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뭔가에 신경을 집중하면 이를 앙당 물게 되잖아요? 그런 버릇이 생기면 잇몸이 약해지면서 치아가 빠지게 되죠.”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김씨의 치아 대부분을 임플란트로 무료 시술해주고 있는 신 원장은 “남다른 예술의 길을 걷는 김씨의 용기와 열정이 보기 좋았다”고 했다.

장성 출신으로 대학에서 육종·원예를 전공한 김씨의 본업은 야생화 종묘 사업이다. “마침 백자 달항아리를 빚는 김형규 작가의 희뫼요에서 가까이 살아서 30여년 가마의 불을 때는 화목공 노릇을 해왔어요. 그래도 도예를 할 생각은 못 했고 가끔 화분용 토기 정도 빚어봤죠. 그러다 3년 전 우연히 일본 잡지에 실린 ‘목엽천목’ 이야기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어요. 송나라 때 유학 갔던 일본 스님들이 가져간 천목다기를 국보로 모시고 있더라고요.”

그는 그때부터 독학으로 자료를 찾아보며 시험 삼아 다기를 빚기 시작했다. “우선 마른 나뭇잎이 필요해서 가을부터 준비했어요. 인근 황룡면의 하서 김인후 선생 생가터에 있는 오백년 된 푸조나무 고목의 낙엽 수백장을 주워서 겨우내 건조를 시켰죠. 그런데 마른 잎이라 워낙 열에 민감해 처음엔 다 녹아버렸어요. 수십번 시도 끝에 올초 처음으로 온도를 맞췄는데 그나마 100개를 구워 10개 정도 건졌어요.”

김종태씨가 재현에 성공한 목엽천목 찻잔. 왼쪽 무늬는 다기와 함께 구운 푸조나무 잎사귀이고, 오른쪽은 찻물에 넣어 우려낸 목단꽃이다. 김경애 기자
김종태씨가 재현에 성공한 목엽천목 찻잔. 왼쪽 무늬는 다기와 함께 구운 푸조나무 잎사귀이고, 오른쪽은 찻물에 넣어 우려낸 목단꽃이다. 김경애 기자

그의 첫 작품을 가장 먼저 선물 받은 변 원장은 “짙은 흑유 다기에 차를 따르니 찻물 속에서 나뭇잎이 살아나는 듯 오묘해 혼자 보기에 아까웠다”면서 작품 발표회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도울 작정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0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사기장 전수자인 김천 도문요의 김대철 명인이 뽕나무 잎을 넣은 목엽천목을 재현해 전시한 적이 있다.

“아직은 내놓기 부끄러운 솜씨이지만 도와주신 분들에게 보답하는 뜻에서 작품이 나오도록 노력해볼 참입니다.”

김씨는 한사코 ‘도예가’라는 호칭을 사양했다.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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