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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지금은 분명히 ‘비이성적 과열’ 상태…‘영끌 빚투’ 말리고 싶다”

등록 2021-09-29 05:00수정 2021-09-29 10:12

​정남구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

온갖 분석 다 해도 지금 집값 정당화할 만한 근거 안 나와
단정적으로 언제 조정 시작될 거라고 말하는 건 무리이나
하락세로 돌아서면 생각보다 큰 폭 하락 피할 수 없을 것

정부와 시장은 신호 주고받는 관계인데 신호체계 고장나
집 없는 사람들의 ‘분노’와 젊은이들의 ‘불안’이 시장 지배
공급 신호 지속적으로 보내 그 신호를 시장이 믿게 해야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이 23일 오후 서울 을지로 국민은행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이 23일 오후 서울 을지로 국민은행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시간 가까이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박원갑 전문위원은 단정적인 표현을 피하고 완곡한 표현을 쓰려고 애를 썼다. 모두가 부동산 전문가가 돼 있고, 자신의 바람과 다른 생각을 드러내면 불신하고 비난을 가하는 시대에 그도 상처받지 않고 지내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제 말이 실린 기사의) 댓글은 가급적 안 보려고 해요. 옛날에는 봤지만….”

전문가라는 이들의 말이 이제 시장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시대라면서도, 그는 ‘지식인 전문가’의 윤리적 책무는 거듭 이야기했다. 바람, 기대가 아닌 냉철한 전망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분명히 ‘비이성적 과열’ 상태라고 봅니다. 정상이 아니지요. 온갖 분석을 다 해봐도 지금의 집값을 정당화할 만한 근거는 나오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기린목 장세’라는 표현을 만들었겠습니까?”

그는 2020년 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부동산 시장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파트, 특히 도심 아파트 선호가 훨씬 강해지고, 엠제트(MZ) 세대가 매수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정부가 안정책을 새로 내놓아도 시장은 오히려 거꾸로 반응하기도 한다. 그는 집 없는 사람들의 ‘분노’와 함께, ‘이러다 영영 집을 살 기회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젊은이들의 ‘불안’ 심리가 현재 시장의 지배적 분위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기 마련이다. 많이 오른 만큼 조정 폭도 클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박 전문위원은 정부 정책과 시장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관계인데, 신호 체계가 고장 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3기 신도시’를 통한 대규모 주택 공급 계획을 내놓아도 시장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예로 들었다. 신호 체계의 정비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이다.

―직책이 명동자산관리자문센터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십니까?

“고객 자산관리 상담을 하고, 직원 교육을 합니다. 고객 세미나에 참여하고, 각종 프로젝트에 관여하기도 합니다.”

―케이비(KB)국민은행으로 옮기기 전에는 일간지 기자로 일하셨지요?

“1991년부터 16년 동안 기자로 일하고, 부동산 정보업체 스피드뱅크를 거쳐 2011년에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기자로 일할 때도 부동산 쪽을 많이 담당했습니다. 부동산에 관심을 가진 게 1995년부터니까, 26∼27년 현장을 지킨 셈입니다.”

―케이비국민은행은 부동산 관련해서는 좀 특화돼 있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을 줍니다.

“1986년부터 시작한 주택가격 통계 조사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케이비국민은행은 2001년 주택은행과 합병했다.)

―시장 전망 등 견해는 회사와 조율을 합니까?

“주기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조율을 거쳐 한목소리를 냅니다. 다만, 어떤 이해관계에 영향받을 일은 없습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의견을 내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집값이 오르면 집 가진 사람은 돈을 벌지만, 세입자 입장이라면 사다리가 무너진 것 같은 암담함을 느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장을 전망할 때 당위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전망은 냉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전망을 해도, 노골적으로 불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줄었습니다. 옛날에는 추석이면 방송국에서 ‘추석 이후 부동산 시장 전망’ 이런 토론회를 열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 합니다. 다들 잘 아니까요.”

―전문가의 전망이 시장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정부 정책의 영향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단기적으로 보면 정부 정책의 영향력은 8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죠. 옛날에는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면 하루 만에 값이 급변동하고, 대책의 효과도 오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장이 스스로 ‘사고 기능’을 갖고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의 경우 가구당 3천만원 이상 수익이 나면 최고 절반까지 환수를 하니까 미국 펀드매니저라면 한국 재건축 아파트는 사선 안 된다, 그렇게 판단할 겁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걸 공급 감소로 받아들이면 시장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움직여버립니다.”

―집값이 장기 상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통계 자료로 보면 2014년을 저점으로 서울·수도권 집값이 8년째 상승하고 있습니다.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보면 2012년 4분기가 저점이었으니 10년째 상승이죠.”

―집값 수준을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장난이 아니죠. 서울은 아파트가 20억원 넘는 게 수두룩하고, 세종시, 대전, 울산, 창원이 12억, 13억원씩 하니까요.”

―수요가 몰리고 값이 오르는 것은 주로 아파트입니다.

“첫째, 우리 국민의 주거 기대수준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아파트는 고급 주택이지요. 둘째, 집의 의미가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집에서 홈트레이딩도 하고 여러 경제활동을 하는 홈오피스이기도 하지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그런 측면이 더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또 아파트는 커뮤니티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파트는 표준화·규격화돼 있다 보니까 금융상품 같아졌는데, 그걸 넘어서 화폐처럼 가치저장 수단도 됩니다. 아파트는 여성이 소비를 주도하는 시코노미(she-economy)의 상징이고, 또 요즘 엠제트 세대가 중시하는 ‘안전’의 공간입니다. 한때 대자연 속에서 이웃과 교류하며 사는 집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밀레니얼 세대들은 부동산을 아파트와 동일시합니다. 저는 아파트 쏠림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봅니다.”

―정부가 수도 없이 안정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계속 올랐습니다. 그래서 ‘정부 정책 실패 탓’이란 지적이 많습니다.

“정책 실패가 집값 불안의 모든 원인이다, 이렇게 단정지어서 얘기하는 건 정확한 분석은 아닐 것입니다. 정책 요인을 배제하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복합 요인이 작용한 거지요. 제 생각엔 집값 불안 요인을 변수별로 보면, 유동성이 60%, 임대차 3법이 20%,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에 따른 매물 절벽이 10%, 기타 요인이 10%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집값 상승세에 불을 붙인 것으로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금리 인하, 폭발적인 유동성 확대가 많이 거론됩니다.

“작년에 집값이 불붙기 시작한 게 5∼6월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고, 기준금리가 내린 뒤죠. 그때 선을 넘어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울·지방 동조화’ 현상이 일어난 것도 유동성 확대가 원인이란 것을 보여줍니다.”

―공급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 사람도 많은데요.

“2012년 집값이 폭락했을 때,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이 18만가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걸 보면, 입주 물량이 줄어 집값이 오른다는 말도 안 맞지요. 주택 가격은 장기적으로는 공급에 영향을 받지만, 단기적으로는 심리적 영향에 따른 수요 변화의 영향이 큽니다.”

―‘수요’가 꺾이지 않는 다른 원인을 찾아야겠군요.

“가계의 소득 수준, 물가 변동 등 뭘 고려해도, 지금 집값을 합리적이라고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집값이 꺾이지 않으니, 전망하는 사람은 무력감, 자괴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기린목 장세’라는 표현을 썼겠습니까. 기린은 다리에서 어깨까지 길이보다 어깨에서 머리까지가 더 길더라고요. 비이성적 과열이 연장되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요즘 주택 매입 구성에서 젊은이들의 ‘영끌 빚투’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왜 기린목 장세가 연출되고 있는지도 살펴보셨을 것 같은데요.

“엠제트 세대는 엑스(X) 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습니다. 우선 자본주의적 욕망에 훨씬 충실한 것 같습니다. 우리 세대만 해도 갭투자를 하는 것은 자칫 세입자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해서 죄의식을 가졌는데, 엠제트 세대는 갭투자를 그저 포트폴리오의 일환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엠제트 세대를 ‘용감한 대리’라고 부르는데, 부채를 보는 관점도 다른 것 같습니다. 글로벌 자산 배분 같은 건 배우고 싶지만, 무모하다 싶은 걸 보면 조마조마하기도 합니다.

또 옛날에는 ‘주토상’이라고 해서, 주택·토지·상가 순서로 부동산을 산다고 했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그런 것 없습니다. 오직 아파트입니다. 그 중에서도 도심 아파트에 매달립니다. 아파트 키즈, 콘크리트 키즈들은 아파트를 부동산과 동일시합니다. 저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도 ‘안전’을 중시하는 이 세대들의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고 봅니다.”

부동산 불패 신화, 즉 부동산 투자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사람들 사이에 강하게 형성돼 있는데, 돌이켜보면 과거에도 큰 폭으로 조정을 겪은 일이 있습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200만호 공급 쇼크가 일어나면서 그해 9월부터 집값 하락이 시작돼 조정기가 한 5년 이어졌습니다. 전세는 집값보다 4∼5개월 앞서 떨어졌고요. 1998년 외환위기 때도 집값이 떨어졌고,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계기로, 2012년 이른바 하우스푸어 사태, 이렇게 큰 변동이 네번 정도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집값은 오를 때는 생각보다 많이 오르고, 내릴 때는 생각보다 많이 빠진다” 그런 분석을 내놓으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데, 하락세로 한번 돌아서면 조정 폭이 클까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기실현적 기대에 빠지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성적 패턴과는 다르게 움직이니까 단정적으로 언제 조정이 시작될 거라고 말하는 건 무리한 일입니다. 지금 거래량이 줄고 있는데,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도 향후 주택 가격 흐름에 큰 변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집값이 비정상이고, 하락세로 돌아서면 생각보다 큰 폭으로 떨어지는 건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상승기에는 집값이 8년 만에 2∼3배로 올랐습니다. 그래서 영끌 빚투만은 말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세대의 ‘하우스푸어’ 사태에 이어, 또 한번 그런 일을 겪을까 걱정하는 겁니다.”

―집값이 앞으로 떨어지더라도 지금 사겠다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충고가 있습니까?

“저는 집을 사려면 세가지 조건을 살펴보라고 충고합니다. 첫째, 직장생활이 15년 이상 남았느냐, 즉 노동소득으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느냐입니다. 50대이거나 은퇴를 앞둔 사람이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는 거라면 조심하라는 겁니다. 둘째, 중저가 주택은 괜찮지만, 고가 주택은 피하시라. 셋째, 세상엔 예기치 못한 일이 언제라도 생기는 법인데, 사고 난 뒤 떨어져도 마음에 버퍼가 있는가 생각해보고 사시라. 무엇보다 단기급등 지역은 피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이 23일 오후 서울 을지로 국민은행 사무실에서 &lt;한겨레&gt;와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자신의 사무실 앞에 선 박 위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이 23일 오후 서울 을지로 국민은행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자신의 사무실 앞에 선 박 위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전셋값도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집값이 오른 것을 따라가며 갭을 메우는 과정이기도 한데, 임대차 3법의 부정적인 영향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보유세 강화, 임대차 3법, 임대사업자 신고제도 등은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반전세가 늘어나는 방식으로 전세 소멸 과정이 이어질 텐데, 저는 월세화 속도를 좀 늦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빌라 가격도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집값이 큰 폭으로 조정을 거친다면, 후유증도 생기지 않을까요?

“깡통 전세(대출금을 뺀 주택 가격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전세 보증금을 밑도는 경우), 깡통 주택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요.”

―자산 시장에 정부가 개입해서 방향을 바꿔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불붙은 시장에서는 잘 먹혀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택 정책 가운데 정부가 일관되게 해야 할, 핵심 정책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임대주택 확대라고 봅니다. 정부가 임대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재고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요새 세입자들은 주거 수준에 대한 기대가 높습니다. 양질의 임대주택이 필요합니다.”

―정부 정책을 시장에 내보내는 신호체계가 고장 났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 신호가 가장 중요할까요?

“월세 전환 속도를 늦추고, 양질의 임대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 공급 신호를 시장에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그 신호를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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