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대신증권 연구원 동행취재
새벽 출근·한밤중 퇴근이 일상
체력은 필수, 마흔이면 전직 고려
“기업 실적 지표 좋아 보여도
직접 공장 방문하면 분위기 달라”
1주일에 2~4회 기업방문 등 외근
담당 종목 업황 좋을 땐 가장 보람
투자자 ‘막말 항의’에 힘 빠져
씨제이이앤엠 정보 유출 사건 뒤
기업·애널리스트 모두 입조심
“쉽게 권하기 어려운 직업이나
능력 펼치며 영감 얻을 수 있는 일”
새벽 출근·한밤중 퇴근이 일상
체력은 필수, 마흔이면 전직 고려
“기업 실적 지표 좋아 보여도
직접 공장 방문하면 분위기 달라”
1주일에 2~4회 기업방문 등 외근
담당 종목 업황 좋을 땐 가장 보람
투자자 ‘막말 항의’에 힘 빠져
씨제이이앤엠 정보 유출 사건 뒤
기업·애널리스트 모두 입조심
“쉽게 권하기 어려운 직업이나
능력 펼치며 영감 얻을 수 있는 일”
주식투자자들에게 애널리스트(증권사 리서치센터 연구원)는 등대 같은 존재다. 애널리스트는 상장사의 사업, 실적, 주변 산업과 경기 예측 등을 통해 현재 주가가 기업의 내재 가치를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 판단하고 향후 주가를 예측한다.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는 많지만, 오늘 저녁 9시 뉴스에서 방송된 ‘내 주식’에 대한 소식이 주가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곧바로 평가해주는 전문가는 애널리스트뿐이다. 투자판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애널리스트의 일상을 지난달 26일 밀착취재했다. 옆자리를 내준 대신증권 이지윤(28) 연구원은 2011년 입사해 3년간의 보조연구원(RA) 생활을 거쳐 2014년부터 독립 연구원(애널리스트)이 됐다. 지금은 한국항공우주·두산인프라코어·현대엘리베이터·대한항공 등 기계·운송 업종의 15개 종목을 담당하고 있다.
애널리스트의 말쑥한 정장에는 장시간 근무, 잦은 출장, 주말 근무라는 고단함이 감춰져 있다. 통상 아침 7시에 출근해 빨라야 저녁 8시, 실적 시즌처럼 보고서를 쏟아내야 할 때는 밤 12시 퇴근이 일상이다. 주식시장이 쉬는 주말에도 다음주 전망을 위해 하루는 출근한다.
지난달 26일 아침 7시. 이지윤 연구원은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 9층 리서치센터에서 30분 뒤 열릴 아침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장이 열리는 오전 9시 전에 오늘의 투자전략을 서로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시각의 회의 풍경은 다른 증권사들도 다르지 않다.
회의에 앞서 연간 사용료(2만4000달러, 약 2900만원)가 웬만한 직장인 연봉에 버금가는 탓에 연구원들 사이에선 “블 대리”로 불리는 블룸버그통신 단말기를 통해 해외 시황부터 확인한다. 이 단말기는 센터에 2대뿐이다. 혹시 회의 때 주제 발표나 전날 시황 변동에 대한 해석을 내놓아야 할 때는 7시부터 전화기를 끼고 “고객”으로 불리는 펀드매니저 등 기관투자자들에게 보고서에 쓴 내용을 전달해준다. 주식을 대량으로 사고파는 펀드매니저는 증권사의 중요한 고객이다. 애널리스트가 보고서 등으로 정확한 분석을 펀드매니저들에게 제때 전달해 신뢰관계를 쌓으면, 이들이 주식을 사고팔 때 해당 증권사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서 얻는 수수료가 증권사 수입의 원천이다.
연구원이라고 해서 종일 사무실 책상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볼 듯하지만 실은 외근이 잦다. 한주에 2~4회는 기업 탐방, 펀드매니저들과의 세미나, 기업설명회(IR) 등에 참석해야 한다. 이 연구원의 이날 외부 일정은 2개다. 오전 10시30분에는 펀드매니저와의 세미나가, 오후 4시 무렵에는 기업설명회에 참석해야 한다. “그나마 오늘은 한가한 편”이란다.
오전 10시쯤 되자 이 연구원을 비롯해 애널리스트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각자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다. 1시간가량의 세미나를 마친 이 연구원은 11시30분께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출근이 일러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기업·고객들과의 미팅으로 활용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저녁식사는 야근이 잦아 주로 회사 식당에서 후다닥 해치운다.
업무에 복귀한 오후에도 오늘 시황 변동이며 기업 주가 전망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일부 개인투자자는 주가가 많이 떨어진 게 “보고서 탓”이라며 욕설 섞인 전화를 하기도 한다. 이 연구원은 “애널리스트는 주가를 맞히는 사람이 아니고 기업 가치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주가가 오르거나 내릴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근거에 대한 비판과 질타는 환영이지만 ‘못 맞혔다’ ‘너 때문에 주가가 떨어졌다’는 비난에는 힘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직접 기업을 방문해 공장 견학과 실무자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숫자로는 실적이 좋았어도 실제 나가 보면 공장 한쪽이 멈춰 있거나 실무자들 분위기가 축 처져 있을 때가 있어요. 탐방은 숫자로 나타난 실적의 진위를 판단하고 향후 전망을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들의 본업은 담당 기업의 주가 평가와 관련한 보고서를 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해당 기업의 실적·사업 전망 등을 근거로 애널리스트가 생각하는 향후 적정주가(목표주가)를 제시하고, 현재 주가 수준으로 봤을 때 해당 주식을 더 사야 하는지(매수), 보유한 채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지(중립), 팔아야 하는지(매도)를 적는다. 그렇다 보니 최대 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업황’이다. 고민도 기쁨도 담당 종목의 업황과 함께 간다. 또 보고서에 제시한 근거대로 상황이 진행되면 지적 만족감과 더불어 업계에서의 인지도가 높아진다. “종목이나 업종이 잘나가야 애널리스트도 생기가 돌아요. 수익률이 좋아야 투자 수요가 많아져 불러주는 고객이 많거든요.”
업황이나 투자자 항의 외에 최근에는 그야말로 “말 못하는” 고충이 더해졌다. 2013년 씨제이이앤엠(CJ E&M) 미공개 정보 유출 사건 이후다. 당시 씨제이이앤엠 공시담당자는 애널리스트에게 실적이 큰 폭 하락했다는 정보를 공시 전 전달했고 애널리스트들이 이를 ‘고객’인 펀드매니저들에게 알려 매도가 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2014년 이 사실이 발각된 뒤 기업과 애널리스트 모두 미공개 정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기자나 투자자의 빗발치는 질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보고서에 쓴 내용을 참조하라”며 방어적으로 전화를 끊는 일이 많아졌다. 다만 이 연구원은 이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본다. “‘고급 정보’라고 칭해지는 것들은 단기적 재료가 많거든요. 불확실한 단기적 재료 대신, 실적과 업황 등 확실한 재료로 장기적 전망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이 연구원은 오후 3시50분께 30분 뒤에 열리는 기업설명회(IR)에 참석하려 다시 자리를 떴다. 이날 설명회를 연 기업은 이 연구원의 담당 종목에 소재를 공급하는 기업이다. 이 연구원은 “이 기업의 연구개발 진척 상황과 전망을 파악하는 것이 담당 종목 분석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 참석합니다. 관련 기업 상황까지 파악해야 하니 사실상 수십개 기업 현황을 주시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근 구조조정 대상이 된 현대상선·한진해운 등의 기업도 담당 회사와 관련이 있는 터라 뉴스를 계속 챙겨보고 있다.
기업설명회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오후 5시30분. ‘본업’인 보고서 작성에 매달릴 수 있는 건 이때부터였다. 상·하반기 산업 전망 보고서 외에도 애널리스트들은 1년에 4번 담당 기업에 대한 실적 프리뷰·리뷰 보고서를 쓰고 뉴스나 발표 등 주가가 변화할 재료가 나오면 수시로 분석과 전망 보고서, 탐방 보고서 등을 낸다. 실적 시즌에는 셀 수 없이 보고서를 쓰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일주일에 1개 이상은 보고서를 낸다고 한다. “업무 강도와 삶의 질 측면만 보면 후배들에게 쉽게 권하기는 어려운 직업”이라는 게 이 연구원의 설명이다. 여느 전문직과 같이 숙련에 끝이 없어 연차가 높아져도 야근엔 예외가 없다.
그럼에도 이 연구원은 이 직업을 좋아한다. “실컷 공부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영감을 얻는 게 좋아요. 어린 나이에 부속품처럼 일하는 게 아니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잖아요.” 이 연구원은 이날도 결국 야근을 하고 만다. 매일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아직 20대인 이 연구원이 꼽는 애널리스트의 첫번째 자질이 “체력”일 정도다.
애널리스트들의 초봉은 평균 4000만원가량이고 이후엔 성과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평가가 좋으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억대 연봉’을 꿈꿀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2억원 이상 연봉자를 초고액연봉자로 본다. 연봉은 높지만 대개 1년제 계약직이고 이직도 잦다. 이 때문에 ‘자기 이름’을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 직업 수명도 짧은 편이다. 40살이 넘으면 전직을 고려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늘 공부하는 직업이지만 이 연구원은 애널리스트는 연구자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한다. “제가 쓰는 보고서와 투자종목을 제시하는 능력은 서비스고 상품이에요. 세미나 등을 통해 고객들에게 제 생각을 알리고 제 의견을 채택해달라고 어필하죠. 애널리스트는 얌전한 연구원이 아니라 영업담당자이자 개인사업자라고 생각해요.”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퇴출·상장사 갑질…애널리스트 수난시대 업황 안좋자 퇴출…5년간 300명 줄어 지난 4월 국내 3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상장사들에 대해 사상 초유의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최근 상장사들이 자사에 불리한 기업분석보고서를 삭제 요구하거나 정보 제공을 거부하는 등의 일이 이어지며 애널리스트의 독립성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고 본 것이다. 올해 들어서만 1월에 대우조선해양, 3월에 하나투어, 4월에 씨제이(CJ)헬로비전에 대해 일부 부정적 전망을 내놓은 보고서를 발간한 애널리스트들이 해당 회사나 대주주로부터 보고서 삭제 요구를 받거나 탐방 금지 통보를 받았다. 센터장들은 “증권사의 조사분석자료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은 가능하지만 투자자들이 시장의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는 원활한 정보의 흐름이 전제돼야 한다”며 반발했다. 센터장들의 단체 성명은 애널리스트들의 ‘낮아진 지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1년부터 5년 넘게 코스피가 박스권(일정한 폭에서 오르내림)에 머물며 수익률이 신통치 않자 주식시장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떠났다. 매매수수료로 돈을 버는 증권사에 매출이 감소하자 증권사들은 ‘비매출부서’인 리서치센터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했다. 금융투자협회의 집계를 보면 애널리스트 수는 2012년말 1399명, 2014년말 1159명, 올해 5월말 기준 1073명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상장사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보고서를 발간하는 입장인 애널리스트가 애초부터 상장사보다 우위에 서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최근 상장사와 기관투자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투자설명회 수요가 늘자, 이를 유치하기 위한 증권사 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애널리스트가 상장사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더 늘었다는 토로도 나온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 보고서 중 해당 주식의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으니 보유 주식을 팔라는 ‘매도 보고서’가 1%도 안 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해부터 증권사별 매도 보고서 비율을 공개하고 있지만, 투자문화 개선 없이 관행이 바뀌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애널리스트는 “경험상 애널리스트와 합리적인 소통을 해 시장 신뢰를 쌓은 기업이 주가 상승 속도가 더 빠르다. 애널리스트가 분석을 포기하게 되면 투자자들의 투자 근거가 사라져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상장사들의 의식 변화를 촉구했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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