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활용·제3자 위탁 사전동의 의무 완화
비식별화 개인정보는 산업적 이용도 허용
원격진료·케이블카 ·의약품 편의점 판매 확대 등 논란거리 수두룩
비식별화 개인정보는 산업적 이용도 허용
원격진료·케이블카 ·의약품 편의점 판매 확대 등 논란거리 수두룩
정부가 빅데이터 활성화 등 서비스산업 육성을 내세워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대폭 완화할 예정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산업 간 융복합을 촉진하는 데 현재의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과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 전 주요 신용카드사에서 고객 정보가 대량 유출되는 등 기업의 개인정보 관리가 부실한데다 불법 판매 공방 등도 적지 않았던 터라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5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서비스경제 발전전략’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 방안은 7대 유망 서비스업을 지정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다고 정부가 판단한 핵심 규제 46건의 완화와 폐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여기엔 개인정보 보호 규제 완화 방침도 담기는 등 규제 목록 상당 부분이 민감한 공공성 영역과 충돌해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는 개인정보를 활용하려는 사업자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개인정보 주체에게 사전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를 올 하반기부터는 갤럭시기어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나 사물인터넷(IoT) 장치 등으로 고객 정보를 수집할 때는 사전에 수집항목·수집방법·제공처 등에 대해 ‘포괄적’ 동의를 받거나, 일단 수집한 뒤 사후에 정보 제공을 거부할 권리를 주는 쪽으로 바꾸기로 했다. 웨어러블 기기나 사물인터넷 서비스는 생체·위치정보 등 민감한 개인정보와 관련돼 있는데다 빅데이터 기업이 민감한 개인정보를 입맛대로 수집·활용할 여지가 커져서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또 사업자가 개인정보 이용 명세를 고객에게 주기적으로 전자우편 등을 통해 개별 통지해야 하던 부담도 크게 줄이기로 했다. 고객이 이런 내용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누리집 시스템을 갖추면, 1년에 한 차례 이같은 공지 사실을 통지하는 것으로 개별 통지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같은 규제 완화 가운데 상당수는 법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르면 9월께 개인정보보호법 등 각종 법개정을 추진할 예정인데, 20대 국회 회기중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앞서 행정자치부가 세부 내용을 마련해 발표한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도 이번 방안에 포함돼 있는데, 논란의 여지가 크다. 비식별화란 개인정보의 일부를 가리거나 바꾸어 개인을 특정하지 못하게 하는 기법으로, 행자부는 지난달 30일 비식별화의 개념·기법·절차·수준 등을 명시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비식별화한 개인정보는 추가 동의절차 없이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을 튼 것이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정책활동가는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을 식별할 개인정보가 이미 무분별하게 노출된 한국 현실에서 이름을 가리는 수준의 비식별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의 개정 없이 비식별화한 정보를 이렇게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는 논란이 진행중인 사항이다. 대한약사회 산하 민간기관인 약학정보원은 4400만명의 병원 처방정보를 ‘비식별화’를 거쳐 팔아넘긴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지난해 기소돼 재판이 진행중이다.
논란의 대목은 이밖에도 다양하다. 정부는 의료법제를 개정해 섬이나 벽지 등 의료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편의점 등에서 판매할 수 있는 안전상비의약품도 소화제·파스·감기약·해열진통제 등 현행 13개 품목에서 좀더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런 규제 완화는 국민 편의를 지원하는 측면도 있으나, 무분별하게 확대될 경우 의료 영리화나 약품 오남용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교육 분야에서는 제주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의 운영 이익금을 국외로 송금(과실송금)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개정을 재추진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제주도교육청은 “학교 교육에 시장 원리가 적용돼 교육주권이 약화하고, 일부 부유층 자녀만을 위한 학교가 확산될 우려가 크다”며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등 찬반 논란이 거세다.
산악·해양관광 활성화 역시 어느 정도 자연환경 훼손을 수반할 수밖에 없어 추진 과정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산악·해안 지역에 중첩 적용되고 있는 규제를 일괄 완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산악관광진흥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지난달 20일 이미 국회에 제출했다.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팀 맹지연 국장은 “산악관광 사업은 이미 타당성이 없다는 정부 조사 결과도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실제 경제성이 없어서 실행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정부의 규제 완화엔 몇몇 개발사업자의 민원을 해결하려는 의도가 감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게임산업과 관련해선 미성년자의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선택적 셧다운제’를 완화하기로 해서 사회적 찬반 공방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또 인터넷전문은행의 대기업 지분 보유 한도를 늘리겠다는 금융 분야 규제완화에는 ‘은산분리 원칙’이 훼손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개인정보 활용 우려는) 비식별화 조치가 전제되면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게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에 앞으로 2년간 중점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김경락 노현웅 진명선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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