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GM)의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자동차 디자인에서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왼쪽부터 민아영 선행디자인팀 차장, 길보빈 익스테리어디자인팀 대리, 심보람 컬러앤트림팀 사원, 김민철 인테리어디자인팀 사원. 한국지엠 제공
일터 l 직업의 세계
차 내·외부 디자인 평균 2년 걸려
엔지니어 등과 커뮤니케이션 중요
아이디어와 감성 깨어있어야
험난한 과정 거친 만큼 보람 커
차 내·외부 디자인 평균 2년 걸려
엔지니어 등과 커뮤니케이션 중요
아이디어와 감성 깨어있어야
험난한 과정 거친 만큼 보람 커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경기도 부천을 지나 4~5㎞ 서쪽으로 더 가면 한국지엠(GM) 부평공장에 닿는다.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이다. 가로·세로 1㎞ 정사각형 공장 터의 남동쪽 구석엔 한국지엠이 자랑하는 디자인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디자인센터 넓이는 1만6640㎡에 이른다. 전체 공장 터의 1.7%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한국지엠의 두뇌에 해당한다.
지난 17일 오전, 삼엄한 보안검색을 거쳐 한국지엠 디자인센터 2층 회의실에서 젊은 자동차 디자이너 4명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민아영(32) 선행디자인팀 차장과 익스테리어디자인팀의 길보빈(31) 대리, 인테리어디자인팀 김민철(30)씨, 컬러앤트림팀 심보람(29)씨였다. 이들과 인터뷰가 성사되기까지 한달 하고도 보름이 걸렸다. 그만큼 자동차회사에서 디자인 분야의 업무는 기밀 사항이다.
“각각 어떤 일을 하는지”부터 물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어를 되뇌었다. “선행 디자인은 종합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향후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마켓, 경쟁사 동향 등을 더 앞서서 생각하고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디자인 콘셉트를 설정하죠. 시장 가능성이 있는 스케치를 바탕으로 연구가 시작되는데, 안팎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합니다.” 민 차장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다. 예측이 실패하면 그대로 결과로 이어진다”며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행 디자인에서 만들어진 밑그림은 익스테리어·인테리어·컬러앤트림팀에서 구체화된다. 특히 익스테리어팀은 본격적으로 스케치가 이뤄지는 곳이다. “스케치로 시작해서 3D(입체) 데이터로 구체화하고 그걸 다시 실제차 크기의 클레이(점토) 모델로 만들어요.” 클레이 모델로 만드는 시점부터 “엔지니어들이 개입해 교통법규나 예산 같은 실제상황들을 적용해 디자인을 조절하게 된다”고 길 대리는 설명했다.
“인테리어도 익스테리어와 함께 갑니다.” 김민철씨는 “다만 사용성이 더 부각된다는 점이 익스테리어와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자동차는 겉모습이 무척 중요하지만 요새는 인테리어 역시 주목받고 있다. 익스테리어는 소비자가 처음 만나는 지점이고, 인테리어는 줄곧 접촉하며 사용해야 할 공간이어서 “인체공학적 요소를 더욱 고려해야 한다.” 손으로 또는 말로 스마트폰을 조작하듯, 자동차 역시 전자부품이 많아지면서 직관적이고 편리한 조작이 더욱 중요해졌다.
컬러앤트림팀에서 자동차는 옷을 입는다. 차량의 색상과 인테리어 재질 등을 결정하는 팀이다. “더더욱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단계”라고 신보람씨는 설명했다. 제너럴모터스의 글로벌 차량 개발에 한국지엠 디자인센터가 참여하고 있어서 그렇다. 지엠이 보유한 쉐보레, 뷰익, 캐딜락 등 다양한 브랜드들은 각각 고유한 색상과 소재의 범위가 정해져 있다. “각 마켓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 지엠의 전세계 디자인센터와 협업해야 할 일이 많아요.”
자동차는 제품이지만, 디자이너들에겐 작품을 지향하는 제품일 터다. 민 차장의 말마따나 자동차 디자이너는 “그림을 그리되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창의성 역시 지켜내야”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이 ‘균형’이다. 민 차장은 “호기심과 성실함이 모두 다 중요하다. 상반된 두가지를 갖추고 매일매일 밸런스(균형)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직업이 자동차 디자이너”라고 말했다.
특히 아이디어와 감성을 일깨우는 것이 자동차 디자이너에겐 필수적이다. 평범한 직장인의 성실한 삶을 유지하면서도 ‘느낌’을 끄집어내어 표현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각자 나름의 방법들을 갖고 있었다. 대개는 영화나 음악 등이 주요한 ‘브레인 스토밍’의 수단이 되고 있었다. 김민철씨는 “자동차 디자인하면 자동차만 봐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고정관념을 못 벗어나게 된다. 저는 영화도 좋고 견학이나 전시 등을 통해서 다른 디자인 이미지를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 역시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했다. 길 대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다른 분야에서 디자인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민 차장은 여행을 주된 영감의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했다. “자동차는 이제 글로벌 마켓이에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안되죠.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하는데, 부평에서 그림을 그리면서도 글로벌 마켓을 생각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들은 자동차 디자인은 ‘점을 찍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선행 연구를 거쳐 콘셉트를 정하고 전략을 설정하고 스케치를 하고 여러 차례 경쟁을 거쳐 디지털 모델을 만들고 또 다시 경쟁과 선택을 거듭해 클레이 모델을 만든 뒤에 또 다시 선택을 하는 과정으로 이뤄지는 디자인 작업은 2년 이상의 기나긴 ‘토너먼트’다. 디자이너로선 극심한 경쟁 탓에 긴장과 피로의 연속일 법하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 외에 엔지니어와 재무 등 다양한 부문과 협의와 토론이 오가야 한다. “한 점을 찍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하는 작업”이라고 민 차장이 자동차 디자인을 규정하는 이유다.
험난한 과정을 거친 만큼 결과물을 대할 때 이들의 기쁨과 보람은 쉽게 설명할 수 없어 보였다. “프로토타입(양산 직전에 제작되는 시제차량)이 나오면 무척 뿌듯하죠. 오랜 시간 고생하고 노력해서 나온 결과물이니까요. 해외 모터쇼에 가면 전세계 디자이너들을 만나서 교류를 할 수 있어 좋죠.” 민 차장은 “디자이너들은 모터쇼에 게스트(손님)로 참여해 구경하는 게 아니라 호스트(주인)로 참여한다. 결과물을 모아놓은 곳이라 보람이 많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모두들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만족감이 무척 높았다. “친구들을 보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자동차 디자인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경우입니다.” 민 차장은 “스트레스는 다 같겠지만 상대적으로 내가 더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미래도 자동차에 초점을 맞춰 꿈꾸고 있었다. “은퇴 때까지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싶다. 그때까지 몇대의 차를 해볼 수 있을까 싶지만….”(길보빈) “재규어의 디자이너 이안 칼럼처럼 전체 브랜드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김민철)
인천/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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