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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300배의 복수?…‘테러와의 전쟁’ 20년, 끔찍한 대차대조표

등록 2021-09-21 20:48수정 2021-09-21 21:17

[테러와의 전쟁 20년 결산]
탈레반 축출로 시작해 탈레반 복귀로 마무리
이라크전쟁까지 번지며 희생자 규모 눈덩이
전체 90만명 사망, 미국은 8조달러나 지출
세계는 안전해졌나, ‘필요한 희생’이었나
전쟁 의미와 효과 놓고 미국 안팎 갑론을박
탈레반 병사가 9·11 테러 20돌인 지난 1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을 순찰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탈레반 병사가 9·11 테러 20돌인 지난 1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을 순찰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20년 전 9·11 테러 뒤 쫓겨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윤회라도 한듯 돌아온 것으로 ‘테러와의 전쟁’은 사실상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미국인들은 탈레반 정권 축출로 시작한 전쟁이 탈레반 정권 복귀로 끝났다는 사실과 철군 과정의 혼란상에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테러와의 전쟁’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성공이라면 무엇이 그렇고 실패라면 왜 그런가? 지금 미국 안팎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한마디로 답하기는 쉽지 않다. 입장에 따라,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거기에 ‘테러와의 전쟁이 없었다면’, ‘전쟁이 그런 양상이 아니었다면’이라는 가정까지 섞는다면 질문의 난도는 더 올라간다. 하지만 막대한 인명과 비용이 희생되고 수십 개 나라가 휘말린 이 국제전에 대한 평가는 피할 수 없는 주제다. 미국 안팎에서 벌어지는 ‘테러와의 전쟁’ 대차대조표 논쟁의 핵심 포인트들을 짚어본다.

“미국은 안전해져” vs “세계는 더 불안해져”

전쟁이 쓸모가 있었다는 긍정론의 강력한 논거는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는 것이다. 9·11 테러의 공식 사망자 수는 약 3천명(2977명)이다. 이 테러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들에 의한 세계 전체 사망자 수 그래프를 확 끌어올렸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에 희생당한 미국인은 107명에 ‘불과’하다. 그러니 언뜻 비교해봐도 미국이 안전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 선 이들은 그냥 안전해진 게 아니고 미군이 알카에다 등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라덴이 도주 중에도 미국에 대한 또다른 대형 테러를 계획했다는 정보도 있었다. 빈라덴은 2011년에야 사살됐지만, 그 전에도 알카에다는 미군의 공격 때문에 세를 불리거나 대규모 테러를 기획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대니얼 바이먼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인터넷 매체 <복스> 인터뷰에서 “과거 알카에다는 아프간에서 수천명을 모집해 훈련시킬 수 있었다”며, 미군의 아프간 침공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국장도 언론 기고에서 “큰 틀에서 우리는 방어에 성공했으며, 아프간에서 목숨을 버린 이들을 포함해 안보에 기여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알카에다가 대량살상무기를 손에 넣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추정까지 고려하면 아프간전을 비롯한 ‘테러와의 전쟁’은 더욱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시각도 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의 뉴욕 세계무역센터 잔해. AFP 연합뉴스
2001년 9·11 테러 직후의 뉴욕 세계무역센터 잔해. AFP 연합뉴스

반면, 미국 영토 안에서의 테러 위협 감소만 따질 게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미국이 중동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통해 자국과 자국 시설에 대한 위협을 상당한 정도로 잠재웠을지는 몰라도 중동이나 유럽에서 테러 위협은 오히려 강화됐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제압한 데 이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지적이 많다. 알카에다 이라크지부나 이슬람국가(IS)는 미국의 공격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나 수많은 인명으로 살상으로 이어졌다. 이라크는 내전의 수렁에 빠졌고, 2015년 전후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가 발호하면서 중동과 유럽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번에 미군 철수 과정에서 카불 공항 자살폭탄 테러로 17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슬람국가 호라산’은 이슬람국가의 아프간지부 격인 조직이다.

이런 평가는 미국보다는 동맹인 유럽 쪽에서 많은 편이다. 메리 칼더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는 <가디언> 기고에서 ‘테러와의 전쟁’ 여파로 극단주의가 중동과 아프리카에 만연해졌다며 “아프간 침공 20년 후,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이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통신사 <아에프페>(AFP)도 ‘테러와의 전쟁’ 20년 총평 기사에서 마찬가지 이유로 “완전한 실패”라고 규정했다. 아프간과 이라크 주재 영국대사를 역임한 윌리엄 패티는 “극단적 이슬람주의의 위협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며,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시엔비시>(CNBC)에 말했다.

미국이 ‘제2의 9·11’을 겪지 않은 게 전쟁 덕분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접근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대형 테러를 겪은 뒤 테러분자 감시와 정보 수집 등 전쟁 이외의 대테러 활동을 크게 강화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9·11 직전 테러 가능성을 탐지하고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데는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사이의 장벽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3000 vs 900000

긍정적 또는 부정적 평가와 관련해 계량적 측면도 따져봐야 한다. 전쟁 목적 달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인명과 비용이 소모됐는지도 판단 요소나 배경으로 삼을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해 미국 브라운대의 ‘전쟁 비용 프로젝트’ 통계가 광범위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 프로젝트가 이달 1일 발표한 것을 보면, 20년간 ‘테러와의 전쟁’ 무대에서 죽어간 사람은 89만7천~92만9천명으로 추산된다. 지역별 사망자는 △이라크 27만5천~30만6천 △시리아/이슬람국가 26만6천 △아프간 17만6천 △예멘 11만2천 △파키스탄 6만7천 △기타 1천명이다. 신분별로는 △미군 7천 △미군 계약 업체 8천 △현지 군경 20만 △민간인 36만4천~38만7천 △미군의 적대 병력 등 29만7천~30만2천 △언론인과 구호기관 등 1500명이다.

사망자들이 전부 미군이나 그 동맹군과의 직접 충돌 과정에서 숨진 것은 아니다. 해당 국가의 정파적 대립이나 테러에 희생된 이들도 많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죽음들은 ‘테러와의 전쟁’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또 무력 사용에 의한 것으로 확인된 인원만을 집계한 것이어서, ‘테러와의 전쟁’과 결부된 죽음들 중 누락된 인원이 있다.

이런 숫자의 의미는 몇 가지 점에서 분석해볼 수 있다. 우선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민간인 희생자 비율이 높다. 전후방이 따로 없는 교전 양상 속에 게릴라전, 무차별 보복, 테러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적대 세력 사망자 비중은 약 3분의 1이고, 미군의 동맹인 현지 군경이나 민간인 사망자가 3분의 2에 육박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11일, 20년 전 탑승객들이 납치범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추락한 유나이티드항공 93편 사고 현장인 펜실베이니아주 섕스빌 추모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섕스빌/EPA 연합뉴스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11일, 20년 전 탑승객들이 납치범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추락한 유나이티드항공 93편 사고 현장인 펜실베이니아주 섕스빌 추모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섕스빌/EPA 연합뉴스

여기서 ‘테러와의 전쟁’이 왜 시작됐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본토에서 상상할 수도 없었던 끔찍한 테러로 약 3천명이 희생당하자 미국 지도자들은 “어디까지든 쫓아가 징벌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전쟁이 20년을 끄는 동안 그보다 더 많은 미국인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고, 전쟁과 관련된 전체 사망자는 9·11 테러의 300배에 이른다. 미국 입장에서는 테러분자들이나 테러 위협을 발본색원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비례의 원칙’이 심하게 무너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희생 규모가 커졌지만 아프간이나 이라크 등 어느 쪽도 제대로 ‘안정화’하지 못한 데는 이라크 침공이 결정적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 정보를 앞세운 네오콘의 선동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겠다며 이라크를 치기로 결정했다. 그 효과로 아프간의 탈레반이 생존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또 이라크에서는 수니-시아파 내전이 촉발됐고, 권력을 잃은 수니파 세력이 알카에다로 갔다가 다시 이슬람국가를 만들었다. 미국이 이라크전을 시작할 때, 중동에서 시아-수니파의 투쟁이 본격화하면 신-구교 충돌로 수백만명이 희생된 17세기 유럽의 30년전쟁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바 있다. 9·11 직후 테러 관련자 조사를 이끈 당시 연방수사국 요원 알리 수판은 <슈피겔> 기고에서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재조직되던 시기에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 준비를 위해 중요 자원들을 빼돌리면서 이미 2002년 가을에 우리는 아프간에서 패배했다”고 말했다.

브라운대 조사팀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비용은 총 8조달러(약 9392조원)로 추산했다. 현지 작전 비용이 2조1천억달러, 이자 1조800억달러, 국내 테러 예방 및 대응에 1조1200억달러, 전쟁에 따른 해외 기지 추가 비용 8800억달러, 2050년까지 참전 군인을 위한 지출 2조2천억달러 등이다.

‘테러와의 전쟁’ 규모와 방식에 찬성한다면 ‘필요한 지출’이었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쪽은 ‘그 돈을 다른 데 썼다면…’이라며 날려버린 기회비용을 생각할 것이다. 알카에다 제거에만 집중하거나, 아프간 너머로 전쟁을 확대하지 않고 보다 건설적이고 평화적인 프로젝트에 돈을 썼다면 나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명백한 승자는 따로 있다?

막대한 돈이 중동의 사막 한가운데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돈은 수많은 명목으로 지출됐고, 누군가의 주머니를 불렸다.

무기 등 군수물자를 대는 방위산업체들이 전쟁 확대와 장기화로 재미를 본 것은 당연하다. 또 전쟁 실패와 관련해 자주 지목되는 게 현지인들의 부패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소련군과 싸우는 아프간 군벌들에게 거액의 ‘연봉’을 줬다. 그 뒤로도 군사적 목적이나 재건을 위해 돈을 주면 그대로 착복하거나, 원가를 부풀려 차익을 챙기는 행태는 반복됐다. 아프간 정부와 정부군의 부패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게 탈레반 정권의 복귀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1060억달러어치 미국 국방부 계약을 검토한 회계 감사관이 그 돈의 약 40%가 현지 관리나 군벌, 범죄적 조직의 배를 불린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전했다. 미군이 탈레반을 축출한 직후인 2001년 말부터 2014년까지 아프간 대통령을 역임한 하미드 카르자이도 부패의 한 축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2019년 <에이피>(AP) 통신 인터뷰에서 미국의 현금이 아프간 관리들을 부패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갔을까?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아프간이나 이라크 재건에 큰 돈을 썼다지만 결국 큰 몫은 건설업체 등 서구 기업들에게 돌아갔다. 부시 행정부 때는 그와 친분이 있는 기업들이 계약을 따냈다. 2002~2021년 미국이 제공한 재건 비용의 12%만이 아프간 정부에 할당됐다. 이라크 정부에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계약한 업체의 직원이 단 1명뿐이었고, 그는 다름 아닌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의 남편인 경우도 있었다. 최근 <뉴욕 타임스>의 한 칼럼은 “누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나”라고 물은 뒤 “미국의 국방 관련 계약자들”이라고 자답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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