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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화이자, 코로나 백신 팔며 주권면제 포기 등 심각한 불공정 계약

등록 2021-10-20 13:42수정 2021-10-20 13:59

미 소비자단체, 9개국 비밀계약 내용 공개
지식재산권 침해 부담은 상대국 떠넘기고
허락 없이는 백신 기부받지도 못하게 막아
“선택지 없는 쪽서 특권 뜯어내는 행태”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화이자 본사 입구에 있는 설치된 회사 로고. AFP 연합뉴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화이자 본사 입구에 있는 설치된 회사 로고. AFP 연합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제조사인 미국 화이자가 과점적 지위와 각국의 다급한 사정을 이용해 맺어온 일방적으로 상대방에 불리한 계약의 실태가 공개됐다. 그동안 과도한 비밀 유지 요구 등이 일부 알려졌지만, 이번 자료는 화이자가 일반적 계약 관행을 뛰어넘는 강압적 행태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미국 소비자 단체 퍼블릭 시티즌은 화이자가 알바니아·브라질·콜롬비아·칠레·도미니카공화국·유럽연합·페루·미국·영국과 맺은 비밀 계약 내용을 입수해 다수의 불공정한 조항을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퍼블릭 시티즌이 보고서에서 지적한 대표적으로 심각한 부분은 주권면제 적용 배제다. 주권면제는 ‘한 국가의 결정은 외국 법원의 재판관할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국제 관습법상 원칙이지만, 화이자는 브라질·칠레·콜롬비아·도미니카공화국·페루와의 계약에서 법적 분쟁 때 이를 포기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들 정부와의 계약에 대금 미지급에 대한 중재 결정과 관련해 각국 자산에 대한 주권면제를 “명확하고 변경 불가능하게”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이다. 이 국가들 중 페루를 제외한 곳들과는 가압류도 주권면제 포기 대상이라고 못박았다. 정식 법원이 아니라 화이자 본사가 소재하는 미국 뉴욕주 법률을 적용해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재판소에서 분쟁을 다룬다는 내용도 여러 계약에 넣었다. 로런스 고스틴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에 대해 “기업이 미국에 대해 그랜드캐니언을 담보로 걸라고 요구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화이자는 자사 백신을 제3자로부터 사거나 공여받는 것도 금지시켰다. 브라질과의 계약에서는 자사 허락 없이는 화이자 백신을 다른 곳에서 구매하거나 제공받을 수 없다고 했다. 브라질 정부는 화이자의 허락 없이는 백신을 다른 나라로 반출하거나 수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조건을 어기면 화이자는 계약을 파기할 수 있으며, 브라질 정부는 공급받지 못한 나머지 백신 대금까지 지불해야 한다는 조항도 계약에 있다.

지식재산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부담을 상대에 떠넘긴 것도 상식적이지 않은 부분이다. 화이자는 콜롬비아 정부와의 계약에서는 자사 백신의 개발, 제조, 판매와 관련해 제3자가 지식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면 콜롬비아 정부가 그에 대응하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자사가 제3자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장할 수 없다는 내용도 있다. 이는 백신 기술을 공개해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응에 힘을 보태라는 요구에 지식재산권 보호를 이유로 버티는 화이자의 태도와는 모순된다.

공급 차질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도 일반적 계약 관행과 어긋난다. 브라질, 콜롬비아 등과의 계약에는 “어떤 공급 계약 변경에도 동의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밖에도 여러 나라와의 계약에 화이자의 법적 책임을 면제하거나 최소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화이자는 여론의 반발이나 경쟁사들을 의식해서인지 이런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브라질 정부는 계약에 대해 어떤 내용도 공표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화이자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과도 가격이나 공급 물량 등을 공개하지 않도록 비슷한 합의를 했다. 이 때문에 화이자가 맺은 계약들 중 민감한 대목을 뺀 부분적 내용만 공개돼왔다. 브라질 정부 등은 “불공정하고 권력 남용적인” 계약은 부당하다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런 내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안전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약품을 신속하게 공급하려면 어느 정도 법적 책임 면제가 필요하다며 제약사 쪽을 옹호하는 시각도 있다. 화이자는 이번 보고서에 대해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도 외교, 군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자산에 간섭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퍼블릭 시티즌은 화이자가 각국 정부를 “협박”했다고 했다. 이 단체의 피터 메이바덕 국장은 “화이자는 각국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며 “대다수는 가족과 친구들을 지켜주려고 거리두기 등을 하며 희생하지만, 화이자는 희소한 백신을 이용해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는 이들로부터 특권을 얻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퍼블릭 시티즌은 “주권국들에 대한 화이자의 우세는 팬데믹 대응에 근본적 도전이 되고 있다”며, 미국 정부가 화이자의 과도한 시장지배력 행사를 제어하고 백신 기술 공개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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