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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성난 하마, 동물원을 나와 인간을 공격하다

등록 2023-05-27 07:00수정 2023-05-27 14:41

[한겨레S] 구정은의 현실지구
하마와 공격성

아프리카서 보트 뒤집는 사고 빈발
굶주림·생존 위협으로 공격성 증대
남획된 어금니, 미국·유럽으로 밀수
장식품 vs 인명피해…재난의 불평등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사유지였던 콜롬비아의 아시엔다 나폴레스 농장 호수에 지난해 2월 하마 한마리가 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사유지였던 콜롬비아의 아시엔다 나폴레스 농장 호수에 지난해 2월 하마 한마리가 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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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 아프리카의 말라위에서 하마가 배를 뒤집어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가 난 곳은 말라위 호수에서 발원해 잠베지강으로 합류하는 시레이강. 내륙국가 말라위에서는 가장 큰 물길이지만 수상교통 기반시설은 형편없다고 한다. 배가 전복돼 14명은 어찌어찌 헤엄쳐 목숨을 구했지만 나머지는 숨졌다.

하마 때문에 사람이 희생되는 일이 드물지는 않다. 2014년 니제르에서도 하마가 배를 뒤집어 13명이 숨졌다. 수컷 하마들 중에 큰 놈들은 체중이 3톤에 이른다. 해마다 아프리카에서 하마에게 목숨을 잃는 사람이 500명은 된다고 한다. 지난해 4월 우간다의 카트웨에서는 하마가 두살 아이의 몸통 절반을 삼켰는데 다행히 지나가던 남성이 돌을 던져 아이를 구한 일도 있었다.

코끼리와 코뿔소에 이어 육상 포유류 중 세번째로 큰 하마는 대체로 풀을 뜯지만 굶주리면 다른 동물의 사체를 먹기도 한다. 어른 팔뚝 길이의 송곳니에 엄청난 덩치를 가진 하마는 특히 식량이 모자라거나 서식지를 위협받을 때 공격적으로 변한다. 올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하마들이 사자를 몰아내는 장면이 영상에 잡혔다. 수사자 한마리가 강 가운데 바위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순간 다가온 하마 떼, 급기야 한마리가 입을 벌리고 사자를 덮친다. 혼비백산한 사자는 물에 뛰어들어 간신히 달아난다.

사자도 공격하는 거대 포유류

하마. ‘강에 사는 말’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말이 아닌 우제목(소목)에 속한다. 코뿔소가 기제목(말목)인 것과 반대다. ‘나일하마’라고도 불리는 보통의 하마와 피그미하마 두 종류로 나뉜다. 20~30마리씩 떼지어 사는데 큰 수컷이 반경 300m 정도의 영역권을 확보하고 무리를 지킨다. 영역권을 침해당하면 공격에 나선다.

이달 중순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의 존 볼 동물원에서는 영양 한마리가 피그미하마에게 공격받고 죽었다. ‘자하리’라는 이름의 이 하마의 생애도 따지고 보면 기구하다. 피그미하마는 세계에 3천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은 희귀동물이다. 자하리는 2014년 피그미하마 살리기 계획에 힘입어 켄터키주 루이빌의 동물원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피츠버그 동물원으로 옮겨져 자랐고, 올 3월 존 볼로 이사했다. 동물원 쪽은 6월 초 피그미하마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겠다며 록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서 따온 ‘히포팔루자’라는 행사까지 계획했다.

하지만 자하리의 새 서식지에는 늪지대에 사는 영양이 먼저 거주하고 있었다.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샌디에이고의 사파리공원을 거쳐 미시간에 정착했던 불쌍한 영양은 결국 죽었다. 두 동물 모두 인간에게 위협받는 종이었고 인간에 의해 이 동물원, 저 동물원을 떠도는 처지였는데 하나는 가해자, 하나는 피해자가 됐다.

‘하마는 왜 화가 나 있을까.’ <사이언스 에이비시(ABC)>에 올라온 기사 제목이다. “하마는 영역권을 지배하려는 본능이 강한 동물이고, 수컷은 빠르면 7살부터 영역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이고 과시적인 행동을 한다”는 설명이 붙었다. 코끼리도 사자도 하이에나도 하마의 세력권 안에 들어갈 때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하마와 늘 맞닥뜨려야 하는 동물이 있다면 바로 악어다. 서식지가 겹치기 때문이다. 악어가 깨무는 힘이 동물들 가운데 1등이라고들 하지만 하마는 몸집이 클 뿐 아니라 피부가 두껍고 단단해 악어 이빨도 통하지 않는다.

하마가 유일하게 무서워해야 할 상대는 코끼리, 그중에서도 새끼를 지키려는 본능으로 무장한 공격적인 암컷 코끼리라고 동물학자들은 말한다. 지난해 10월 희귀동물 영상 업체가 공개한 동영상에는 코끼리와 하마가 개울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이 담겼다. 아마도 하마와 싸움이 붙자 성난 코끼리가 물속으로 따라 들어갔고, 흙탕물 속으로 하마를 밀어넣어 쫓아낸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에스코바르의 하마들’ 이야기는 꼭 판타지 우화 같았다. 1980년대 콜롬비아를 공포로 몰아넣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노아의 방주’를 만들겠다며 대도시 메데인 외곽에 농장을 만들고 미국에서 하마 4마리를 밀수해왔다. 1993년 에스코바르가 보안군에 사살된 뒤 내팽개쳐진 하마들은 야생으로 달아나 적응해버렸다. 주변을 흐르는 마그달레나강 일대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생태 환경과 비슷했다. 아프리카에서는 가뭄이나 서식지 파괴로 마릿수가 줄고 있지만 뜻밖에 콜롬비아에서 이상적인 환경을 만난 덕에 수가 불었다. 세자릿수로 늘어난 하마들이 자동차와 부딪치거나 농작물을 먹어치우고 송아지를 공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2009년 ‘페페’라는 하마가 주민들을 위협하자 당국은 사살령을 내렸다. 그러나 페페의 죽음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 전국에서 항의가 들끓었고 2012년 하마 도살 금지법이 통과됐다. 그사이 개체수는 계속 늘었다. 지난해 콜롬비아 정부는 하마를 더 이상 보호해줄 수 없다며 ‘외래 침입종’으로 규정했고, 올해 들어서는 외국으로 보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하마가 많아 고민하는 곳은 오직 콜롬비아뿐이다. 하마와 인간의 조우는 오래됐다. 도살된 하마 뼈가 16만년 전의 지층에서 발견됐고 4천~5천년 전의 사하라사막 유적지에서는 하마 사냥을 보여주는 유물이 발굴됐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하마를 나일강의 무시무시한 서식자로 여겼고, 중앙아프리카의 요루바족은 이 동물을 ‘물에 사는 코끼리’라 불렀다. 하지만 지구상의 대부분 사람들에게 하마는 강이 아니라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다. 최초로 하마를 잡아다 전시한 것이 기원전 3500년 이집트의 히에라콘폴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니 말 다 했다. 현대 동물원에 등장한 최초의 하마는 1850년 런던동물원에 갇힌 ‘오베이시’였다. 미국 하원은 루이지애나 늪지대에 하마를 들여오기 위해 1910년 ‘하마법’까지 도입했다.

나일강의 하마들은 7세기 아랍인들의 도래와 함께 인구가 늘자 살 곳을 잃었다. 마다가스카르의 ‘말라가시하마’는 인간들 때문에 1천년 새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이후로는 아프리카 남쪽 끝의 서식지도 없어졌다. 이제는 남아공 일부 지역에서부터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 탄자니아, 케냐, 에티오피아, 수단으로 이어지는 하천계에서만 위용을 뽐낼 뿐이다.

하마가 가른 불평등의 경계

구글 검색을 해보면 하마와 연관된 질문에 ‘공격성’이라는 단어가 뜬다. 하지만 늘 그렇듯 가해자는 결국 인간이다. 콩고의 비룽가 국립공원에 사는 하마 수는 1970년대 약 2만9천마리에서 2000년대 중반 한때 1천마리 아래로 떨어졌다. 내전 때문이었다. 2017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하마를 멸종위기종 목록인 ‘레드리스트’의 ‘취약’ 카테고리에 넣었다. 이때만 해도 세계의 야생 하마 수는 11만5천~13만마리로 파악됐지만 지금은 서식지 3분의 2에서 마릿수가 30~50%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레드리스트는 ‘10년 새 개체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생물종을 멸종위기로 구분하는데, 하마에게도 언제 ‘위기’ 딱지가 붙을지 모른다.

살 곳이 줄어드는 것과 함께 남획과 밀거래도 하마를 위협한다. 코끼리들이 상아 때문에 죽어나가듯, 하마의 어금니는 하마를 죽이고 있다. ‘멸종위기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하마 혹은 하마의 신체 부위를 거래하려면 누구든 허가를 받고 각국 세관에 보고해야 하지만 온전히 지켜질 리 없다. 밀렵꾼이 ‘수확’한 하마의 이빨과 가죽은 미국과 유럽으로 가서 장식품이 된다.

<비비시>(BBC)는 최근 영국 정부가 하마와 바다코끼리, 범고래 등 5종의 이빨 거래를 금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아프리카 10개국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하마 부속품 거래를 불법화하라고 촉구했을 때 유럽은 거부했다. 지난 2월15일 ‘세계 하마의 날’에 미국 환경단체들은 하마를 멸종위기종 보호법의 보호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소송을 걸겠다며 미국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환경단체들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8년 사이 10년간 하마 이빨 9천여개, 가죽 5천여점, 트로피와 세공품 3700여개 등이 미국으로 수입됐다. 부자나라 사람들의 장식품과 병따개·기념품으로 수천~수만마리 하마가 희생되는 동안 말라위에서는 하마에 배가 부딪쳐 사람들이 죽는다. 기후의 역습뿐 아니라 동물의 반격에서도 재난의 불평등이 재생산된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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