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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우한 봉쇄 1년, ‘영웅’ 리원량의 SNS에 모여드는 중국 사람들

등록 2021-01-22 17:40수정 2021-01-22 21:47

중국의 ‘공론장’이 된 리원량 웨이보
1년 전 닮은꼴 중국 코로나19 상황
불안한 마음이 모이는 리원량 웨이보
하루 수백·수천건씩 올라오는 사연
“기억한다. 잊지 않겠다” 다짐도
중국 우한의 코로나19 상황을 가장 먼저 경고했다가 경찰 조사까지 받은 안과의사 리원량이 코로나19 감염으로 숨진 지난해 2월7일, 그가 근무했던 우한시중심병원에 그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추모 카드와 꽃이 놓여있다. 우한/EPA 연합뉴스
중국 우한의 코로나19 상황을 가장 먼저 경고했다가 경찰 조사까지 받은 안과의사 리원량이 코로나19 감염으로 숨진 지난해 2월7일, 그가 근무했던 우한시중심병원에 그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추모 카드와 꽃이 놓여있다. 우한/EPA 연합뉴스

코로나19 최초 발생지인 후베이성 우한 봉쇄 1주년을 하루 앞둔 22일, 지구촌은 어디나 불안하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덧없이 세월만 흘렀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이날 집계해 발표한 전날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모두 103명, 무증상 감염자(발열 등 증세를 보이지 않는 진단검사 양성 판정자)는 119명이다. 헤이룽장·지린·허베이 등 최근 확진자가 집중되고 있는 3개성의 일부 지역은 여전히 봉쇄된 채다. 경제 중심지인 상하이에선 시내 한복판 황푸구에서 지난해 11월23일 이후 처음으로 확진자 6명이 나오면서, 주변 지역이 ‘중급 위험지구’로 지정됐다.

수도 베이징에선 북부 순이구에 이어 남부 다싱구에서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다. 전날 3명이 추가 확진된 데다,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가 있다고 알려져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확진자가 다녀간 시내 시청구에선 주민 전수검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 별로 다시 출입자 신분 확인이 강화됐다. 우한이 봉쇄됐던 1년 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한은 지난해 1월23일 오전 10시를 기해 봉쇄됐다. 같은 해 4월8일 0시에 봉쇄가 해제될 때까지 인구 1100만명의 대도시가 76일, 1814시간 동안 외부와 철저히 차단됐다. 봉쇄 전날인 지난해 1월22일 하루 중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31명이었다. 다시, 불안이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

“세월 참 빠르네요. 1년 전 이맘 때 우한이 봉쇄됐었죠. 올해는 춘제 때 집으로 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오늘 아파트 단지 전체 주민이 핵산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하얼빈의 상황이 지난해보다 안좋은 것 같아요. 모두 무사하기를….”

불안한 마음이 모이는 곳은 뜻밖의 장소다. 2019년 12월 말 코로나19 상황을 가장 먼저 경고했다가 경찰 조사까지 받아야 했던 우한시중심병원 안과의사 리원량의 웨이보 계정(@xiaolwl)이다. 그는 진료 도중 코로나19에 감염돼 지난해 2월7일 새벽 2시58분께 34살 젊은 나이에 끝내 세상을 등졌다. 그는 숨지기 6일 전인 같은 해 2월1일 오전 10시41분께 병상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이런 글을 올렸다. 생전에 남긴 마지막 글이다.

“오늘 핵산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 이제 의구심은 사라졌다. 결국 확진이다.”

리원량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사람들은 이 글에 애도의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봉쇄가 길어지면서, 잠들지 못한 이들이 모여 들었다. 답글의 내용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일상의 고민과 소소한 사연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는 게시판이 된 셈이다.

지난 2019년 12월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코로나19 상황을 처음으로 경고한 안과의사 리원량의 웨이보 계정. 그가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올린 글에는 오늘도 수많은 답글이 달리고 있다. 웨이보 갈무리
지난 2019년 12월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코로나19 상황을 처음으로 경고한 안과의사 리원량의 웨이보 계정. 그가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올린 글에는 오늘도 수많은 답글이 달리고 있다. 웨이보 갈무리

“여보, 천당에서도 보셨나요? 당신이 남긴 마지막 선물이 오늘 세상에 나왔습니다. 제가 잘 돌볼 게요.”

지난해 6월2일 리원량의 부인 천쉐지에가 둘째를 출산했다. 다시 한번 그의 웨이보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답글은 100만건을 훌쩍 넘겼다. 이후 그의 웨이보 마지막 글의 답글은 ‘100만+’로 표기돼 있다. 하루 24시간, 불과 1~5분 간격으로 매일 수백에서 수천 건씩 답글이 이어지고 있다.

“리 선생님, 그곳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희 할머니도 작년 2월에 그리로 떠나가셨습니다. 기분좋게 마작도 하시고, 저희들 걱정은 많이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영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쉽게 화도 나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웨이보에 오는 순간 편안해져요. 원량형, 고마워요.”

사람들은 그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그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했다. 리원량 개인의 웨이보는 그렇게 ‘공적 영역’이 됐다. 누군가 리원량의 웨이보 마지막 글을 ‘인터넷판 통곡의 벽’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절망과 슬픔만이 아니다. 기쁨과 환희의 순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러니 ’통곡의 벽’이 아니라 ‘수동’(樹洞·나무에 생긴 구멍)이다. 누리꾼들이 익명으로 비밀을 털어놓거나, 고민을 상담하는 게시판을 뜻하는 웨이보 용어다.

“어제 오후 미열이 있었습니다. 핵산검사를 했고, 오늘 저녁 결과가 나올 예정입니다. 당신을 떠올립니다. 거기선 잘 지내고 계시겠죠?”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새해가 된 뒤로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나요. 2019년에서 2021년으로 바로 옮겨온 것 같습니다. 마치 2020년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요. 2020년이 없었다면, 선생님은 지금쯤 뭘 하고 계실까요?”

지난 2019년 12월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코로나19 상황을 처음으로 경고한 안과의사 리원량이 2020년 2월3일 병원에서 산소 마스크를 낀 채 코로나19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019년 12월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코로나19 상황을 처음으로 경고한 안과의사 리원량이 2020년 2월3일 병원에서 산소 마스크를 낀 채 코로나19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중국 당국은 △‘코로나19 방역 선진 개인’(3월5일) △‘열사’ 칭호(4월2일) △제24기 ‘중국 청년 5·4 메달’ 등을 리원량에게 추서했다. 하지만 나라 밖의 관심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지난해 7월2일 중국 외교부는 홍콩·신장·코로나19 상황 등 모두 37개 항목에 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반박하는 자료를 냈다. 이 가운데 14번 항목에서 “리원량은 ‘내부고발자’가 아니며, 구금된 일도 없다. 공산당원이었던 그를 체제에 대항한 ‘영웅’이라 부르는 건 불경”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 누리꾼들은 오늘도 리원량의 웨이보를 찾았다. 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의 표시이자, 소통이 차단된 현실을 뛰어넘기 위한 통로로 삼은 모양새다.

“그곳에서도 뉴스를 보시나요? 산둥성 치샤 광산의 무너진 갱도에서 결국 한분이 돌아가셨답니다. 벌써 열흘이 더 됐는데, 아직 아무도 구조를 못했습니다. 걱정돼 죽겠어요. 세상에, 사고를 30시간이나 늦게 보고했다니….”

“세월이 지나니 잘 알려진 일을 희석시키고, 심지어 비방까지 하려 합니다. 당신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도시가 봉쇄됐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한인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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