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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우주에서 보이는 산호초’는 되살아날 수 있을까?

등록 2022-12-03 17:23수정 2022-12-03 20:12

[한겨레S] 구정은의 현실지구
파괴되는 호주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주의 세계 최대 규모 산호초 군락지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항공기에서 찍은 사진. 신화 연합뉴스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주의 세계 최대 규모 산호초 군락지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항공기에서 찍은 사진.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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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계곡. 박트리아라는 고대 왕국이 지배했던 이곳에는 간다라 불교미술의 찬란함을 보여주는 유적과 성소들이 있었다. 2001년 3월 탈레반 정권은 거대한 불상들을 파괴했다. 2003년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유적지를 ‘위험에 놓인 유산’ 목록에 올렸다. 이라크의 사마라. 바그다드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이지만 한때는 거대한 아바스제국의 수도였다. 아름다운 사원과 ‘바벨탑’ 이미지의 원형이 된 거대한 탑이 있는데, 미군과 수니파 반군의 충돌 와중에 역시 파괴를 겪었다. 유네스코는 사마라도 2007년 ‘위험 유산’에 집어넣었다.

시리아의 팔미라. 고대 셈족에서 시작해 로마·아랍제국, 비잔틴과 오스만튀르크 시대를 거치며 여러 문명과 종교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유적지였다. 2013년 극단조직 이슬람국가(IS)는 팔미라의 신전들을 폭파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시리아 최대 도시 알레포의 구시가지, 수도 다마스쿠스의 오래된 골목들과 함께 팔미라는 2013년 유네스코 ‘위험 유산’으로 지정됐다.

볼리비아의 포토시. 16세기에 ‘세계 최대 산업단지’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흘러나온 은으로 스페인은 세계를 호령했다. 은광을 지탱하던 인공호수와 복잡한 물길, 귀족과 노동자들의 주택단지들이 남아 있는 이곳은 보전에 실패해 2014년 역시 유네스코 ‘위험 유산’이 됐다.

‘위험유산’ 등재 거부한 호주

인류 공동의 자산을 보호해온 유네스코가 ‘위험 유산’ 목록에 올린 곳은 33개국 53개 지역에 이른다. 이 목록이 늘어나는 것은 반갑지 않지만 최소한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보호 의지를 모으는 조처가 될 수는 있다. 그런데 최근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유네스코에 반기를 들었다. 호주 북동부 해안에 있는 세계 최대 산호 생태계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위험 유산’에 올리자는 유네스코의 권유를 호주 정부가 지난 11월에 거부한 것이다.

이 산호초는 호주가 자랑하는 최대의 관광자원이다. 약 35만㎢에 걸쳐 2500여개의 산호섬이 펼쳐져 있다. ‘살아 있는 유기체들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구조물’ ‘우주에서도 보이는 산호초’로 유명하다. 1500종 이상의 물고기, 약 400종의 산호, 4000종의 연체동물, 240종의 새들이 여기에 산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해양오염으로 1995~2017년 사이에만 산호 절반이 죽었다. 그런데도 호주가 ‘위험 유산’에 넣지 말라 하는 것은 관광산업에 타격이 될까 걱정해서다.

호주 편에서 보자면 코로나19 이전에 해마다 200만명이 이곳을 찾았고, 수익이 연간 64억호주달러(5조6천억원)였다. 일자리도 6만4000개가 걸려 있다. 그런데 ‘위험 유산’에 올라가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해당 국가와 협의해 ‘시정 조치’를 하고, 당사국 정부는 보호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유네스코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국가는 국제적인 관심을 집중시키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 등재를 요청하지만, 어떤 나라들은 불명예로 인식해 등재를 피하려 한다”. 전란으로 파괴된 시리아나 이라크의 유적과 자기네 산호초가 ‘같은 등급’이 된다는 것이 마뜩지 않을 수도 있겠다.

유네스코 조사단이 방문한 지난 3월 이 산호초 지대는 바다 기온이 예년보다 낮아지는 라니냐 현상이 일어난 때였다. 산호가 죽어 하얗게 변하는 백화가 심했다. 호주 언론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따르면 지난 6년 새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서 대규모 백화가 네번이나 일어났다. 호주과학아카데미는 지구 기온이 2도 올라가면 이 산호초의 1%만 살아남을 거라고 경고한 바 있다.

호주 정부도 산호초 파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위험 유산’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타니아 플리버섹 환경장관은 “이곳이 위험에 처해 있다면 다른 모든 지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호주가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15년 3월, 호주 정부와 퀸즐랜드주 정부는 산호초를 지키기 위해 ‘리프 2050’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내놨다. 포식성 불가사리를 제거하는 것에서부터 장기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높일 투자를 망라했으나, 정작 근본 문제인 기후변화 대응이 빠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3년 뒤인 2018년 정부는 수질 향상을 추가한 보완 계획을 만들고 거액의 보조금을 책정했으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19~2020년 호주는 초대형 산불을 겪었다. 지구 전체의 기온 상승, 특히 남극지방의 기온이 올라가고 건조해진 탓이 컸다. 그렇게만 보면 호주는 기후변화의 피해자다. 하지만 그간 호주가 펼쳐온 기후정책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다. 2000년대 미국 공화당 정부가 ‘기후변화는 없다’는 극단적인 반환경 정책을 내세우자 거기 발맞춰 글로벌 기후 대응에 찬물을 끼얹었고, 화석연료와 광물 채굴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지난해 영국 언론 <비비시>(BBC)는 호주가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함께 유엔 기후 대응 논의를 방해하려 한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산호초들에게 희망은 있을까?

올해 5월 집권한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의 노동당 정부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보호하기 위해 12억호주달러를 지출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 9월 의회는 ‘2050년 탄소배출 제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중간 단계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보다 43%로 줄인다는 목표를 잡았다. 하지만 이 역시 지구 기온 ‘2도 상승’을 기준으로 한 것에 불과하다.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넘게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국제적인 공감대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1.5도 기준으로 잡으면 호주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70% 줄여야 한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한국은 호주를 비난할 처지가 못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기구가 매긴 한국의 기후 대응 등급은 ‘매우 불충분’이다. 단지 그레이트배리어리프 같은 랜드마크가 없어서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유네스코 ‘위험 유산’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하마와 고릴라들이 사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비룽가 국립공원, 마다가스카르섬의 아치나나나숲, 미국 플로리다의 거대한 습지 에버글레이즈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열대우림 등 자연 구역이 여럿 올라가 있다. 그 명단에 들어간다고 생태계가 살아나리라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희망이 없지는 않다. 카리브해에 면한 중미의 작은 나라 벨리즈는 산호초 지대가 2009년 ‘위험 유산’으로 지정된 뒤 석유 탐사를 금지하고, 해안침식을 막아주는 맹그로브숲을 살렸다. 2018년 벨리즈의 산호초들은 충실히 보호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위험 유산’에서 빠졌다. 유네스코와 갈등하면서 호주의 기후환경정책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호주가 관광 수입과 개발을 포기하지 않은 채로 세계에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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