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한 베이스 캠프(해발고도 5200m)에 도착한 마쓰오가 오토바이 위에 올라가 만세를 부르고 있다. <마쓰오 여행 사진첩에서>
82개국 오토바이로 누빈 마쓰오 기요하루
“세계의 끝을 보고 싶다.” 이런 각오로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지구촌을 누벼온 일본인 마쓰오 기요하루(63)가 20일부터 사이타마시 자택 부근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다. 1500㏄ 혼다 오토바이와 세계 각지의 풍경을 담은 사진 200여장을 전시해놓았다. 그는 4년9개월에 걸쳐 82개국의 땅을 밟았다. 달린 거리는 25만㎞.
오토바이 세계일주의 뜻을 세운 것은 57살이던 2000년. 몸이 건강할 때 해보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어올랐다. 반대하던 부인도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던 철도회사 제이아르(JR)에 사표를 내고 그해 10월 긴 여정에 올랐다.
출발점은 유럽대륙. 네덜란드에서 시동을 걸었다. 당시 그가 할 줄 아는 영어라고는 ‘라이트’ ‘레프트’ ‘커브’ 등 야구용어가 전부였다. 길을 물을 땐 이런 단어와 몸동작으로 모두 해결했다. 식당에선 소와 닭의 그림을 그려 보이며 음식을 주문했다.
지나가던 남자가 주는 비스킷을 무심코 받아 먹었다가 봉변을 당한 적도 있다. 안에 마리화나가 들어 있었다. 의식은 몽롱해졌고, 돈을 모두 털렸다. 오토바이를 빼앗기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년 만에 유럽대륙과 중동을 도는 데 성공했다. 이후 네차례 일시귀국을 하긴 했지만, 남미·북미·중앙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를 차례로 주파했다. 알래스카에선 자동차에 부딪혀 헬리콥터로 200㎞ 떨어진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늑골 골절 등 전치 두 달의 중상이었다. 미국 동시테러가 발생한 2001년 9월11일 그는 일시귀국 길에 뉴욕 케네디공항에 있었다. 테러로 비행기 탑승이 금지되자, 두 시간을 걸어가 참사 현장을 눈으로 확인했다.
마쓰오는 여행을 통해 사람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외국은 무섭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람들은 따뜻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키스탄 오토바이 가게에서 만난 30대 남성이 현지 안내는 물론 식사 대접까지 해준 일화를 소개하면서 “가난한 사람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친철을 베푸는 데 정말 놀랐다”며 미소를 지었다.
마쓰오는 1963년 실업고를 졸업한 뒤 국철(제이아르의 전신)에 들어갔다. 노조원으로 민영화에 반대하던 그는 차장에서 잡무직으로 부당 전직을 당했다. 이후 15년 동안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법정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오토바이 세계일주라는 더 큰 꿈을 위해 그 투쟁을 접었다. 퇴직금을 여비(약 800만엔)로 썼다. 그는 마지막 남은 대륙인 아프리카의 최남단까지 질주할 날을 열망하며 여행 자금을 모으고 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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