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미-중의 경제패권 경쟁, 냉전보다 길고 거친

등록 2021-08-31 00:49수정 2021-08-31 02:36

박현의 G2 기술패권 _01
2013년 6월8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휴양시설 서니랜즈에서 넥타이를 하지 않은 셔츠 차림으로 함께 산책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미-중 불신이 쌓이던 국면에서 이뤄진 ‘세기의 회담’으로, 양국에 나쁘지 않은 결과를 도출했다. 하지만 두 정상의 ‘약속’은 이후 지켜지지 않았다. 랜초미라지/AP 연합뉴스
2013년 6월8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휴양시설 서니랜즈에서 넥타이를 하지 않은 셔츠 차림으로 함께 산책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미-중 불신이 쌓이던 국면에서 이뤄진 ‘세기의 회담’으로, 양국에 나쁘지 않은 결과를 도출했다. 하지만 두 정상의 ‘약속’은 이후 지켜지지 않았다. 랜초미라지/AP 연합뉴스

박현 경제팀 선임기자

2013년 6월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휴양시설 서니랜즈.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3개월 전 임기를 시작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회담을 하기 위해 초청한 곳이다. ‘세기의 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하루 전에 현지에 도착한 기자는 왜 이곳에서 회담을 하는지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모하비사막에 자리 잡은 이곳은 한낮에는 기온이 43℃까지 올라갈 정도로 사막의 폭염이 작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룻밤이 지나서야 이곳을 회담 장소로 선택한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막의 열기에 몸과 마음의 긴장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정상은 이곳에서 밤에는 시 주석이 가져온 마오타이주를 마시고, 아침엔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바람으로 산책을 하며 1박2일 동안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이 회담이 있기 전 미-중 간에는 전략적 불신이 차츰 쌓여가고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집권 첫해인 2009년 중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모색했으나 2010년부터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비롯한 주요 이슈에서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면서 긴장이 높아졌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선언하고 아시아 지역에 대한 군사력 증강에 나섰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이 중국 포위 전략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정상이 과연 불신을 털어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공표된 회담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두 정상은 새로운 미-중 관계를 함께 모색한다는 데 합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지속적으로 평화적인 부상을 하는 것이 미국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시 주석에게 강조했다”며 “시 주석과 나는 미-중 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이끌 기회를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 것을 고무적으로 생각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도 “오바마 대통령과 나는 중국과 미국이 과거 강대국 간의 불가피한 대결 및 갈등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발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는 두 나라가 신형 대국관계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면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특히, 미국의 첨단무기와 기업 기밀에 대한 중국의 사이버 해킹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해킹의 발원지가 중국이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며 “미국 재산에 대한 이런 직접적인 절도 행위가 계속된다면 경제관계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시 주석은 “중국도 사이버 공격의 희생자”라며 미국 쪽의 주장을 부인했다.

오바마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새로운 관계 설정이라는 두 정상의 ‘약속’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중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서니랜즈의 언약에도 백악관이나 국무부 관리들은 ‘신형 대국관계’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는 걸 꺼렸다. 중국의 부상이 필연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아래에서 이를 용인한다는 생각이었던 셈이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중 관계는 큰 변곡점을 맞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반중국 정서를 선거 승리에 이용하기 위해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집권 이후에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공식 규정하고,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중국 기업 제재 등을 지지도 유지를 위해 적극 활용했다. 이에 시 주석은 단호하게 대응했다. 그는 2017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기념비적인 연설을 했다. 무려 3시간24분 간에 걸친 연설에서 그는 2050년까지 중국이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서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도광양회의 시대를 끝내고 세계 지도국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일부에선 올해 초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유화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난 지금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때보다 더 독하다는 게 전반적 평가인 것 같다. 트럼프와 같은 거친 언사는 사라졌지만 제재의 방식이 더 치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때 취했던 관세 부과, 기업 제재 등의 조처를 풀기는커녕 오히려 범위를 확대하고, 동맹국들과 연합해 핵심 기술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전략을 착착 실행에 옮기고 있다.

시 주석의 대응도 심상치가 않다. 바이든은 올해 2월 취임 이후 첫 전화통화에서 “중국의 강압적이고 불공정한 경제적 행태와 홍콩 탄압, 신장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대만을 포함한 역내에서 중국이 갈수록 공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시 주석은 “중·미가 화합하면 서로에게 유리하고, 싸우면 모두가 다칠 수밖에 없다”며 “협력이야말로 양국의 유일한 선택지이며, 중·미가 맞서 싸운다면 양국은 물론 세계에도 재난이 될 것”이라고 맞받았다. 8년 전 서니랜즈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상당히 직접적인 경고의 메시지다. 한달 뒤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양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기어코 사고가 터졌다. 양국 외교 최고책임자들이 기자들 앞에서 공개 설전을 벌인 것이다. 두 나라 간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음을 방증한다.

최근 10년간 관계 개선의 시도가 있었음에도 두 나라가 이렇게 빠르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양국이 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들었음을 보여준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그 전쟁이 부상하는 신흥 세력(아테네)에 위협을 느낀 패권국(스파르타)의 두려움 때문에 발생했다고 설명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중국이 커진 국력에 맞게 새로운 관계 설정을 요구하고, 이에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낀 미국이 중국에 강경한 정책들을 꺼내 들고 있는 현재 상황에 딱 들어맞는 용어로 여겨진다. 미국 하버드대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1500년 이후 신흥 강국이 패권국에 도전하는 사례가 16차례 있었고, 이 가운데 12차례가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양국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많은 이들이 20세기 미-소 간 냉전을 떠올리지만 그때와는 다를 것이다. 미-중 간 경쟁과 대립이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군사·외교·경제·이데올로기 전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냉전 때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거대한 경제규모와 세계 경제와의 통합 정도는 경쟁의 양상이 많이 다를 것임을 예고한다.

지난 1세기 동안 어느 경쟁국도 미국 경제규모의 60%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전 일본과 독일 두 나라를 합쳐도, 그리고 냉전 때 소련도 그 선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2014년 60%를 넘어선데다 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에는 70%를 넘었다. 앞으로 10년 내에 미국 경제규모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차이를 고려한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는 이미 미국을 앞섰다. 또한 소련은 당시 세계 무역체제인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 가입한 바 없고 자본주의 경제체제와는 별도의 경제생태계를 구성했다. 반면에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서 이미 세계 최대 무역국이자 수출국이다. 서방 국가들이 소련을 상대로 했던 봉쇄 전략이 구조적으로 먹혀들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미-중 패권경쟁의 승패는 어느 나라가 체제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에서 앞서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외교·군사적 갈등도 빚어지겠지만 첨단기술 경쟁력을 둘러싼 경쟁이 그 중심에 자리할 가능성이 높다. 첨단기술에서 우위를 장악한 국가가 결국 경제패권은 물론 군사패권, 나아가 글로벌 헤게모니까지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5G,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슈퍼컴퓨터 등은 모두 민군 겸용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중국은 이미 5G, 드론 등 상당수 기술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어 미국의 초조함이 더해지는 형국이다.

아울러 중국은 달러패권이 유지되는 한 중국의 세력 팽창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일대일로 참여 국가들을 중심으로 디지털통화를 매개로 위안화 결제망을 확대함으로써 달러패권 체제에도 균열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두 강대국의 경쟁은 40여년간 진행된 냉전보다도 더 긴 장기전의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 복싱 경기가 아닌, 마라톤 경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미·중 모두에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수십년간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 연재는 두 강대국 간 경제패권 경쟁의 양상을 진단함으로써, 한국이 찾아야 할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