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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내 오토바이 최고속도는 65 (상)

등록 2022-01-26 16:34수정 2022-02-10 12:38

2021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배달 라이더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배달 라이더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라이더유니온 최고속도65(필명)

오토바이를 타 본 적이 없었지만 플랫폼은 그런 걸 문제 삼지 않았다. 영상으로 보는 안전교육과 기존 근무자와 첫 배달을 함께 해보는 교육 등을 모두 마치고 난 뒤, 나는 곧바로 플랫폼의 톱니바퀴가 되어 달리기 시작했다. 배달 업무는 그동안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나를 인도했다.

벌써 2년이 되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정규직이었던 나는 회사의 ‘비정규직화’ 권고를 거부하다 2019년 12월31일 해고되었다. 내가 채용면접 보고 교육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성실함이 나의 일자리에 영향을 줄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회사는 순전히 인건비를 줄이려고 비정규직을 활용했는데, 내가 맡은 일이 그들의 채용 및 교육이었다. 그러던 중 나 또한 비정규직 전환 대상이 됐다는 통보를 사 쪽으로부터 들었다.

그 뒤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및 해고예고수당 청구 소송을 2년째 벌이고 있다. 1심에서 일부 승소했으나 사 쪽이 항소했다. 2심은 여기서 또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는 문자. 내가 고통받아야 할 시간은 2년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회사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생전 처음 소송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자료를 준비할 때, 재판 진행 상황이 문자로 올 때 심장이 무거워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고용노동부와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법은 약자인 노동자에게 감당하기 힘든 복잡한 절차와 긴 시간을 요구한다. 이 긴 시간이 언제 끝날지 나는 알 수 없다.

2019년 10월 운동 삼아 전기자전거로 배달 일을 시작했다. 배달 플랫폼의 구인광고가 자주 눈에 띄었기에, 나 또한 용기를 내보았다. 까다로운 절차 없이 쉽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어느 날부터 음식 픽업하러 매장에 가면, 기존 배달노동자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안다. 자신들의 일감, 나아가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경계였던 것이다.

2020년 1월, 해고 절차가 매듭지어졌고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전기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갈아탔다. 플랫폼은 오토바이를 리스해주고, 배달 일을 주업으로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절차도 안내해줬다. 간단한 안전교육과 특수고용노동자임을 인정하는 서류에 서명했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그리고 이제는 특수고용노동자로 시동을 걸었다. 오토바이를 타 본 적이 없었지만 플랫폼은 그런 걸 문제 삼지 않았다. 영상으로 보는 안전교육과 기존 근무자와 첫 배달을 함께 해보는 교육 등을 모두 마치고 난 뒤, 나는 곧바로 플랫폼의 톱니바퀴가 되어 달리기 시작했다.

배달 업무는 그동안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나를 인도했다. 건강보험은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에 이름을 올려 해결했고, 국민연금 납부는 중지했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쉼 없이 달렸다. 오토바이로 10시간 넘게 일해도 그때는 힘든 줄 몰랐다. 그러는 사이 나의 몸에는 진동이 누적되며 피로가 쌓이고 쌓였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가족에게 이러한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교통신호도 무시한 채 신나게 달리는 나를 발견했다. 경찰의 단속을 피해 교통신호를 계속 위반하는 기분이 왠지 나쁘지 않았다. 얼마나 자주 신호 위반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신나게 나의 100㏄ 민트색 오토바이는 멈추지 않았다. 여름이 더운지도, 겨울이 그렇게 추운지도 모르고 달렸다. 여름에는 아이스팩을 헬멧에 넣었고, 겨울에는 열선 조끼를 입고 달렸다. 배달은 주말에 일이 더 많아, 가족과 함께하는 평범한 주말의 일상은 포기했다. 마침 교회도 코로나로 문을 닫는 때가 많아 나는 더욱 일에 집중했고 더 많이 달렸다.

코로나19는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고, 한국도 예외일 수 없었다. 많은 자영업자가 폐업했고, 폐업한 사장님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처럼 배달 일에 나섰다. 공유주방 등 매장에서 배달 음식을 만들어냈고, 외출이 어려워지니 배달 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정신이 없었다. 멈출 수도 없었다. 대형 플랫폼의 시스템에서는 경험 많은 라이더라고 해도 신규 배달노동자보다 나을 게 없었다. 처음에는 경험의 차이가 곧 수익 혹은 매출의 차이로 이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차이는 점차 사라졌다. 업무 약관은 수시로 변경되었고, 동의하지 않으면 근무가 불가능했다. 신규 배달노동자 구인광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점점 지쳐갔다. 그날그날의 수익으로 피곤을 이겨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온 것을 느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피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큰 빌딩들은 나를 화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티브이(TV)에서는 오토바이 난폭 운전이 연일 보도되고 플랫폼의 운영 행태를 문제 삼는 기사도 끊이지 않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하편은 다음주에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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