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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개 몽덕이의 선물

등록 :2022-05-12 14:59수정 :2022-05-12 19:03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삶의 창] 김소민 | 자유기고가

이상하게 우리 동네 ‘장군’이란 이름을 가진 개들은 다 ‘쫄보’다. 이 토실토실한 포메라니안 강아지의 이름은 장군, 이름답게 할머니 뒤에 숨기 일쑤였다. 내가 장군이에게 간식을 주면 할머니가 그랬다. “장군아, 고맙습니다 해야지.” 헤어질 때도 할머니는 장군이를 꾸짖었다. “안녕히 가세요 그래야지.” 장군이는 14살이고 끝내 인사를 배우지 못할 거 같다.

장군이 할머니는 내 반려견 몽덕이를 산책시키며 오다가다 만난 우리 동네 ‘강아지 공동체’ 사람이다. 무슨 ‘조직’이 있는 건 아니다. 2년 동안 비슷한 시간에 공원에 나오는 바람에 안면 튼 사이다. 다들 서로 개 이름으로 부른다. 본명은 모른다. 직업도 모른다. 대개 개 이야기만 한다. 진돗개는 진돗개, 몰티즈는 몰티즈이니 누구 개가 더 잘난 게 없다. 그렇게 한시간여 앉아 개들 노는 걸 쳐다보다 헤어진다. 개 옷을 물려주고 간식을 나눈다. 동네 개들 안 먹는 간식은 죄다 식탐이라면 소문이 짜한 몽덕이 차지다.

그중에 봉고 할아버지가 나는 무섭다. 그 할아버지를 만나면 동네 뒷산을 타야 한다. 봉고 할아버지가 같이 가자고 하는 건 아니다. 툭하면 길바닥에 드러눕는 과체중 강아지 몽덕이가 홀린 듯 할아버지를 따라간다. 간식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산으로 가면 몽덕이는 그 뒤를 쫓고, 나는 몽덕이를 쫓다 보면 허벅지가 터질 거 같다. 이 할아버지는 산악인인가. 엄청나게 빨리 올라가면서 말한다. “허벅지 근육이 중요해!”

벚꽃이 그새 진 공터 벤치에 장군이 할머니랑 둘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지난해 겨울 무릎관절 수술을 했다. 장군이는 당뇨 탓에 지난겨울 시력을 잃었다. 할머니는 살이 쪽 빠진 장군이를 무릎에 앉히고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이구, 이삐라.” 할머니는 꼭 ‘이삐라’라고 한다. 그 예쁨은 ‘예쁘다’에 다 담지 못할 것처럼. 장군이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허공을 헤맸다.

“할머니, 배가 고파요.” “밥을 먹고 댕겨야지.” “반찬이 없어요.” 할머니는 측은하게 나를 바라봤다. “돈이 없어서 구랴?” 내가 웃자 할머니도 웃었다.

하도 반찬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더니 장군이 할머니, 애니 엄마, 복순이 엄마가 나한테 빈 비닐봉지를 하나 줬다. 지천에 널린 게 반찬이란다. 내 눈엔 다 그냥 풀인데 “이건 냉이, 이건 쑥, 이건 돌미나리”라고 알려준다. “이게 망초 대야. 고추장이랑 계란 넣고 밥 비벼 먹으면 맛있어.”(복순이 엄마) 공터에서 쭈그리고 앉아 망초 대를 꺾었다. 다들 내 비닐에 자기가 딴 망초 대를 넣어줬다. 비닐봉지가 금세 불룩해졌다. 강아지들은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있다. 초저녁 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때 어떤 감각이 넘실넘실 차오르는 걸 느꼈다. 따뜻한 느낌, 그것은 평화.

몽덕이가 내게 오기 전, 나는 이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전세 주기에 맞춰 2년마다 전학을 다녔다. 경기도 구석에 있는 25년 된 아파트로 이사 오고 2년 동안 내가 아는 사람은 편의점 주인밖에 없었다. 아파트는 이상하다. 수백명이 모여 사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하기도 어색하다. 신축인 친구 아파트는 집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수 있다. 그걸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자동차를 타고 대형마트에 간다.

개 몽덕이는 내가 처음 경험해보는 평등하고 느슨한 연대를 선물했다. 싸울 만큼 관심은 없고, 모른 척할 만큼 안 친하지는 않다. 누가 더 잘 사는지, 누구 애가 더 공부 잘하는지 눈치 볼 필요 없다. 땡구 엄마는 동태찌개, 유부초밥, 총각김치를 우리 집 문고리에 걸어두고 가곤 한다. 나물을 캐 비닐봉지에 담아온 날, 요리공포증이 있는 나는 평생 처음 망초 대를 데쳐 먹었다. 계란 넣고 밥 비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포만감이 드니 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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