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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다누리호 가는 곳마다 ‘우리의 우주’ 넓어진다

등록 2022-08-04 19:24수정 2022-08-05 12:34

[심채경의 랑데부]

지구 관측 인공위성의 궤도라니, 거기는 아직 지구다. 더 멀리, 적어도 달까지는 나아가야 우주 탐사선이다.

우리나라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가 오늘, 달까지의 먼 길을 떠난다. 지금껏 우리나라 우주개발에서 ‘우주’란 인공위성 궤도였다면, 이제는 다누리의 발걸음마다 우리의 우주가, 우리의 손길이 가닿는 공간이 넓어지는 것이다.
5일 오전 8시 8분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 미우주군기지 40번 발사장에서 다누리를 탑재한 팰컨-9 발사체가 발사됐다. 연합뉴스
5일 오전 8시 8분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 미우주군기지 40번 발사장에서 다누리를 탑재한 팰컨-9 발사체가 발사됐다. 연합뉴스

심채경 |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미국의 한 민간 기업에서 열기구를 이용하는 우주여행 상품을 내놓았다고 한다. 열기구에 매달린 동체를 타고 위로, 위로 올라가 지구를 내려다보며 이색적인 풍광을 감상하다 오는 것으로, 수시간 동안의 짧지만 강렬한 우주여행이라고 한다. 기술은 어느 정도 확보했다지만 아직 유인 비행 시험을 마친 단계는 아닌데 벌써 예약을 받는다니, 회사도 고객도 대단한 모험을 하는 듯하다. 애초에 그런 모험도 꺼리지 않는 사람들이 우주여행에도 도전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게 무슨 도전이고 우주여행이냐고 코웃음 치는 사람도 있다. 로켓처럼 단번에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듯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내리는 것이므로, 로켓 발사 시의 충격을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우주복을 입지 않아도 되고, 목표한 높이에 다다르면 창문으로 다가가 지구를 내려다보며 어슬렁거릴 수도 있다. 대단한 모험이라기에는 조금 편안해 보인달까.

무엇보다도, 이 열기구는 성층권 중간쯤에 해당하는 고도 30㎞까지 올라가는데, 그 정도 높이는 우주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올해 초 통가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발생한 화산재 기둥이 55㎞ 상공까지 퍼져 올라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걸 상기해보면, 30㎞ 고도에 오르는 여행 상품에 우주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과연 어색해 보인다.

우주는 어디서부터일까? 간단한 질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답변은 각양각색이다. 가장 흔한 답변은 고도 100㎞의 카르만 선으로, 지구 대기권과 우주 공간을 가르는 대표 높이다. 그래서 카르만 선 너머까지 다녀와야 진정한 우주여행객이라고들 한다. 카르만 선 높이의 두배인 고도 200㎞부터는 더 깊은 우주라는 뜻에서 ‘심우주’(deep space)라 이른다.

지구를 관측하는 인공위성은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고도에서 운용한다. 그래서인지 인공위성을 제작할 때, 거기에 실리는 기기나 외부에 설치되는 장비를 위성 본체와 구별하기 위해 본체를 일컬어 ‘우주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태양계 행성을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지구 주위를 도는 인공위성은 우주선이라고 할 수 없다. 카르만 선보다 높은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들도 여전히 지구 중력에 강하게 속박되어 있다. 지구 관측 인공위성의 궤도라니, 거기는 아직 지구다. 더 멀리, 적어도 달까지는 나아가야 우주 탐사선이다. 심우주라는 단어의 문턱도 높아서, 화성 근처까지는 가야 ‘심우주’ 취급을 해준다. 

달 궤도를 돌고 있는 한국의 다누리호 상상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달 궤도를 돌고 있는 한국의 다누리호 상상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별을 연구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까? 그들은 태양계 전체를 한 덩어리로 취급한다. 지구도, 달도, 목성이나 해왕성도, 그저 태양이라는 하나의 별에 묻어 나오는 부수적인 존재다. 그렇다면 은하를 연구하는 사람은 태양을 비롯해 수많은 별이 있는 우리 은하수 전체를 한 덩어리로 볼 것이다.

누가 내게 “당신의 우주는 어디인가요?” 하고 묻기에, “제 우주는 모니터 속이에요” 하고 답했다. 천문학자가 별은 안 보고, 매일같이 모니터만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모니터 속에는 달도 있고 별도 있으니 아주 엉뚱한 대답은 아니다.

사랑에 빠진 이에게는 연인이 온 우주만큼이나 큰 의미를 갖는 것처럼 생각되는 때가 있다. 콜드플레이가 방탄소년단과 함께 부른 곡 ‘마이 유니버스’에서 사랑하는 당신이 나의 우주라고 노래하듯이. 꼭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어린아이에게는 부모가, 반려동물에게는 반려인이 우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옆자리 동료가 외계인 같은 짓만 해서 괴로운 분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누군가에게는 첫 자취방이, 천신만고 끝에 입사한 직장이 온 우주와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우주에 대해 물을 때마다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다.

우리나라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가 달까지의 먼 길을 떠난다. 지금껏 우리나라 우주개발에서 ‘우주’란 인공위성 궤도였다면, 이제는 다누리의 발걸음마다 우리의 우주가, 우리의 손길이 가닿는 공간(space)이 넓어지는 것이다. 혹시 도중에 한발 후퇴하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건 후퇴가 아니라 다른 방향의 길을 밟아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우주가 다시 쪼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또 다른 방향으로도 확장하는 것을 대견해하며 지켜볼 일이다.

다누리와 함께 우리의 지평이, 우주가 매일 조금씩 넓어지기를, 달 탐사의 기쁨과 우주 확장의 즐거움을 온통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바로 오늘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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