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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일관계 정상화? 앞으로 일어날 일들

등록 2023-03-21 18:25수정 2023-03-22 02:38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이 철거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일본 총리의 한국 방문이 논의되긴 어렵다.’

일본 정부가 이렇게 요구한다고 가정해보자. 실제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이후 일본 내부 분위기는 ‘한국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였다. 지금, 그대로 돼가고 있는 건 아닐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6일 한국 정부는 일본의 사과도 기금 참여도 없이 한국 쪽 재원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자국 법원의 판결을 무력화하는 조치를 한 셈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줄기차게 ‘한국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주장한 일본의 비상식적 요구는 눈앞의 현실이 됐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외교, 국내 정치, 피해자 세 측면에서 살펴보자.

먼저 외교. 대통령실은 ‘한-일 관계의 새로운 시대’라고 홍보하지만 ‘어음’이 아닌 ‘현금’은 받은 게 없다. 만약 일본이 관계 정상화에 추가 조건을 건다면? 한국 정부로서는 수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피해자들이 20년 넘게 싸워 비로소 손에 쥔 강제동원 판결을 무력화시켰는데 한-일 관계마저 다시 찬바람이 분다면? 그야말로 국격의 자살이다.

이 상황을 잘 아는 일본은 치밀했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내용을 하나씩 언론에 흘리고 있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행, 레이더·초계기 갈등,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요구에 독도 언급까지. 일본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 한국 언론은 한국 정부에 사실인지 묻고, 한국 정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거나 부인하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나라 꼴이 참 우습게 됐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행은 일본이 가장 적극적으로 요구할 쟁점이다. 기시다 후미오 현 일본 총리는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직접 낭독한 외무상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도록 노력’한다고 공표했다. 외교적 지렛대를 모두 포기한 채 선의의 호응을 기대하며 백기투항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일본은 이 기회에 하나하나 정리하자고 벼를 것이다.

다음으로 국내 정치. 외교 참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허위사실 유포를 포함한 총공세가 이어질 것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0일 “민주당의 논리대로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본의 하수인이 되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7년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는데, 윤석열 정부의 안과 동일한 대위변제를 담고 있지 않냐는 논리다. 사실이 아니다. 이 법은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인도적 위로금 지원을 규정했을 뿐이다. 대위변제는 채무자를 대신해 제3자가 채권을 소멸(변제)시키는 절차다. 위로금 지원과 채무 변제는 법적 성격이 전혀 다르다.

박근혜 정부 시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지원단체를 사찰하고 몰아붙였던 국면이 재현될 수도 있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8일 언론 인터뷰에서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말들은 좀 더 조심스럽게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피해자들을 직접 공격하기는 어려우니 그 주변을 공격하는 식이다. 익숙한 논리다. 2019년 또 다른 제3자 변제안이었던 ‘문희상 안’을 두고 반대가 이어지자,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실은 ‘반대하는 단체 중 강제동원 피해자가 대표인 단체는 없다’며 지원단체의 정체성을 비꼬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윤석열 정부에서도 피해자 쪽은 일관되게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는데, 권력은 그 요구를 ‘피해자가 아닌 이들의 요구’로 깎아내리고자 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갈라치기는 심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정부안에 반대하며 끝까지 일본 기업으로부터 배상과 사과를 받겠다고 밝히신 분들이 있다. 이제 그분들은 판결을 빼앗고자 하는 한국 정부와 맞서 판결을 지키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립되실 것이다. 미래지향적 국가발전에 반하는 사람들,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들이라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이게 우리가 추구하는 한-일 관계 정상화인가. 피해자의 권리를 빼앗고, 허위사실로 정치갈등을 극대화하고, 수평적·호혜적 외교가 아닌 일방적·종속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정상화란 누구의 정상화인가. 도대체 그것이, 정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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