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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석기의 과학풍경] 폐경기 안면홍조 치료제, 뇌에서 실마리 얻었다

등록 2023-05-23 18:25수정 2023-05-24 02:39

미국 국립보건원이 지원하는 연구비의 질환별 분포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위쪽은 여성이 많이 걸리는(환자의 60% 이상) 질환이고 아래는 남성이 많이 걸리는 질환이다. 원 크기는 환자 규모이고 가로축은 연구비다. 파란색이 짙을수록 환자 대비 연구비가 많고 주황색이 짙을수록 적다. 예를 들어 여성 환자 비율이 높은 편두통은 환자 1인당 연구비가 평균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남성 환자 비율이 높은 에이즈(AIDS)는 15배에 이른다. 네이처 제공
미국 국립보건원이 지원하는 연구비의 질환별 분포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위쪽은 여성이 많이 걸리는(환자의 60% 이상) 질환이고 아래는 남성이 많이 걸리는 질환이다. 원 크기는 환자 규모이고 가로축은 연구비다. 파란색이 짙을수록 환자 대비 연구비가 많고 주황색이 짙을수록 적다. 예를 들어 여성 환자 비율이 높은 편두통은 환자 1인당 연구비가 평균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남성 환자 비율이 높은 에이즈(AIDS)는 15배에 이른다. 네이처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지난 4일 학술지 <네이처>에 특이한 분석 자료가 실렸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2022년 생의학 분야 지원비 450억달러(약 60조원)가 어떤 질병 연구에 쓰였는가를 본 것이다. 여기서 특이하게도 특정 성별의 환자가 많은(60% 이상) 질병을 뽑아 두 그룹으로 나눠 배치했다.

여성 환자 비율이 높은 두통, 편두통, 만성피로증후군 등은 환자 수 대비 연구비가 턱없이 적었지만, 남성 환자 비율이 높은 에이즈는 평균의 15배에 이르렀다. 분석에 따르면 각 질환의 연구비가 지금의 2배가 될 때 여성이 얻는 건강수명과 기대수명 연장 효과가 남성의 2~3배에 이른다. 앞으로 연구비를 늘릴 때 여성 환자 비율이 높은 질병에 우선권을 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구의 4분의 1이 일생에서 한 시기 수년에 걸쳐 겪으면서도 위의 분석에는 실리지도 않은, 즉 연구비가 미미한 질병이 있다. 여성만이 겪는(따라서 인구의 절반이나 된다!) 폐경기 안면홍조다. ‘얼굴 좀 붉어진다고 그게 병인가?’ 남성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면홍조는 폐경을 전후해 수년 동안 진행되면서 하루에도 여러번 열감이 오르는 불편한 증상을 수반한다. 아울러 낮에는 기분 저하, 피로, 대인관계 기피를, 밤에는 수면장애를 동반하며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호르몬 대체 요법이 있지만 심혈관계 질환이나 유방암 위험성이 높은 여성은 쓸 수 없고 부작용을 걱정해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12일 미 식품의약국(FDA)은 최초의 비호르몬 안면홍조 치료제인 페졸리네탄트(fezolinetant)를 승인했다. 임상시험에서 중증 이상의 안면홍조를 겪는 폐경기 전후 여성이 이 약물을 복용할 경우 60%가 유의미한 증상 완화를 보여 효과가 인정됐다. 이 약물의 표적이 월경과 관련된 난소나 자궁이 아닌 뇌라는 점이 특이하다.

1990년대 초 우연한 발견이 출발점이다. 미 애리조나대 신경병리학자 나오미 랜스는 폐경기를 전후해 여성의 뇌에서 특정 뉴런(신경세포) 무리가 커진 걸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이 뉴런 무리는 체온을 조절하는 시상하부에 존재했고 후속 연구 결과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폐경기로 호르몬이 줄면서 뉴런 활성이 커져 거칠게 체온 조절을 하면서 안면홍조가 생기고 뉴런이 새 환경에 맞춰질 때까지 수년 동안 증상이 계속된다. 이번에 승인받은 약물은 이 뉴런의 활성을 낮춰 안면홍조 증상을 개선한다. 랜스를 비롯한 소수 과학자의 30여년에 걸친 노력이 결실을 봤다.

최근 학술지 <임상 내분비학&대사 저널>에 페졸리네탄트 3상 임상시험 결과를 담은 논문이 나왔다. 읽어보니 미국·캐나다 등 서구권 7개 나라 146개 기관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이라 우리나라에서 별도의 시험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마음 같아선 ‘패스트트랙’으로 승인해 안면홍조로 고생하고 있는 여성들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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